작가 박윤경의 작업에서 쉬폰이나 실크, 샤워 커튼 등의 투명한 재질 위에 그리는 행위를 차곡차곡 기록하며 회화에는 시간에 따른 중첩된 색채가 나타난다. 캔버스 프레임은 그 자체로 화면에 드러나게 되고 그 위에서 선, 붓질 등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단순히 보조역할에 그쳤던 프레임은 회화의 주체로 드러난다. 2차원의 회화를 ‘벽’이 아닌 ‘공간’에 설치 구성하여 3차원의 회화로 보여줌으로써 평면 회화 전시가 보여주던 권위를 해체하는 동시에 모든 요소가 평등한 관계를 맺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드로잉과 페인팅이 화면에 반복되며 쌓여가고 3차원적으로 공간에 설치되며 회화의 객체와 주체가 사라진 평등한 회화를 선보인다. 이 작업을 볼 전시가 열린다. 

박윤경 작가는 Gallery BK Hannam(서울 용산구)에서 3월 11일부터 4월 8일까지 개인전 “Restoration of relationships”전을 개최한다. 눈길이 가는 것은 작품의 추상성이다. 이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노오력(Endeavor),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 wooden frame, 116.7x91.0cm, 2022. [사진=갤러리BK 한남]
노오력(Endeavor),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 wooden frame, 116.7x91.0cm, 2022. [사진=갤러리BK 한남]

작가는 “화면에서의 추상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영역처럼, 문자가 전달할 때 잃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통의 완충지에 대한 단상이다”고 말한다. 

박윤경 작가는 불통(不通)의 문제를 언어와 문자가 아닌 태도의 문제로 바라본다. 캔버스 위에는 알파벳, 한글 나아가 인터넷 신조어나 한자를 선택해 추상적인 형태로 탈바꿈하여 읽히는 기능을 잃은 문자는 결국 추상적인 이미지로서 관객에게 던져지고, 문자 이미지를 마주한 관객은 개개인만의 감상과 추론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의 무의미함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소통과 대화는 태도의 문제이지, 언어와 문자의 문제는 아님을 나타낸다.

부서지며 길들여지는(Breaking to Be Tamed),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 wooden frame, 224.0x145.5cm, 2022. [사진=갤러리BK한남 제공]
부서지며 길들여지는(Breaking to Be Tamed),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 wooden frame, 224.0x145.5cm, 2022. [사진=갤러리BK한남 제공]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관계의 경계. 경계의 영역은 좁지만 절대로 넘거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하므로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하여 더욱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박윤경 작가노트 中')

작가는 회화 자체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관객, 회화 그리고 공간 이 모든 요소를 주체로 만든다. 더불어 관객에게 계속해서 소통을 제안하며 작업의 과정 자체를 온전히 공유하고 이는 작품과 관객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장치가 된다. 더는 문자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문자 너머의 세계를 보는 상상력이 관람의 즐거움을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