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갤러리구조(Gallery KUZO)에서는 2월 15일부터 열린 ‘Semi-Improvisation’ 展은 박성욱 작가, 캐스퍼 강 작가의 통제된 우연성에 주목한 전시이다. 전시 제목 Semi-Improvisation의 의미 ‘즉흥성이 반’은 ‘통제된 우연성’을 반영한 것이다. 도예작가와 디자이너 출신 작가는 각자의 작업에서 어떻게 ‘통제된 우연성’을 얻었을까?

먼저 도예작가 박성욱은 ‘덤벙 분장기법’으로 분청사기에 현대성을 부여한다. 덤벙 분장기법은 도자기를 백토물에 담갔다가 꺼내는 방식이다. 흘러내리는 백토물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 특유의 추상성과 비정형적인 조형미를 띄게 된다. 이런 기법적 특성으로 인해 대호(大壺, 50cm 이상의 항아리)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도예작가 박성욱이 통제된 우연성을 얻는 방식은 이것이다.

박성욱, 편(片)-무리, Ceramics, 88.5x147cm, 2022. [사진=갤러리 구조 제공]
박성욱, 편(片)-무리, Ceramics, 88.5x147cm, 2022. [사진=갤러리 구조 제공]

박성욱은 덤벙 기법을 활용해 백자 대호에 모더니티를 부여하고 이를 확장하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흙으로 빚은 조각에 덤벙 기법으로 입힌 편(片)을 평면에 재배열하고 고정하여 회화적 형태로 완성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편들은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색과 질감을 갖고 하나의 조형으로 완성되며 담담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캐나다 동포로 2004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는 캐스퍼 강은 한지를 다채롭게 실험해 새로운 회화적 조형미를 완성하는 작업을 한다. 한지를 그을리거나 태우고 표백하고 찢거나 겹겹이 쌓아 올린다. 이렇게 한지는 물성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고 독특한 구조적 가치를 갖는다.

캐스퍼 강, 곤,  burnt hanji & ottchil hanji by 전북한지 on linen lemp 300x600cm, 2022. [사진=갤러리 구조]
캐스퍼 강, 곤, burnt hanji & ottchil hanji by 전북한지 on linen lemp 300x600cm, 2022. [사진=갤러리 구조]

특히 한지를 태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형상들을 화폭에 옮긴 그의 작품은 한지를 통제하며 우연히 나타나는 흔적들의 미학이며,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조형이 결정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작가 캐스퍼 강은 198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오타와 캐나다 칼튼 대학에서 건축학 학부(B.A.S.)를 마쳤다. 그 후 2004년 서울로 이주하여 약 2년간 건축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한국에 궁금한 것이 많았고 한국 문화에 애착이 갔다. 작가로 활동하며 문창살, 수석, 쌀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활용한 설치 작품을 작업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지에 매혹된 듯하다.

‘Semi-Improvisation’ 展 전시 모습. [사진=갤러리 구조 제공]
‘Semi-Improvisation’ 展 전시 모습. [사진=갤러리 구조 제공]

 ‘Semi-Improvisation’ 展은 두 작가의 작업 방식에서 나타나는 통제성과 우연성에 주목한 전시다. 각각 흙과 한지로 대표되는 질료의 본성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통제적 작업을 진행하지만 결과물은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성으로 완성된다.

통제와 우연 사이에서 만들어진 깊이 있는 미학적 가치를 느끼게 하는 ‘Semi-Improvisation’ 展에서는 박성욱 작가의 대표작인 ‘분청 달항아리’, ‘편(片)-무리 2022’ ‘분청 입호’ 등 작품 32점과 캐스퍼 강의 ‘곤, ‘별117’ 등 작품 37점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는 4월 16일까지 열리며 관람은 무료. 갤러리구조 누리집에서 네이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