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선생의 <단군교포명서> 발표 100 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동북아역사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는 일본강점기 홍암 나철을 위시한 오기호·정훈모·이기·김인식·김윤식 등 우국지사들이 『단군교포명서』를 통해 단군교 중광을 선포하고 단군의 역사정신을 만천하에 알린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사) 국학원과 (사)국학연구소는 지난 5월 21일 동북아역사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단군교포명서』 발표 100주년을 기념해 ‘포명서에 나타난 역사인식에 대한 검토’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국학원 장준봉 상임고문은 개회사를 통해 “단군교포명서 선포는 단군신앙의 부활이라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단군구국론(檀君救國論)을 재확인시키고 항일운동 본산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총체적 저항의 사표를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는 100주년을 맞으며 우리 역사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조상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일본 중국의 한국사 찬탈 앞에 왜 속수무책인가에 대해 냉철하게 자문해야 한다.”며 이번 학술회의의 취지를 밝혔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박성수(전 국제뇌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창수(고려문화재단 이사장) 등 우리 상고사 학계의 원로학자를 비롯한 많은 학자가 참석했다. 서영대 인하대 교수의 사회로 김성환 경기도실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임찬경 국학연구소 연구원,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서굉일 한신대 명예교수,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이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자로는 박성수 교수, 동국대 윤명철 교수,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 교수, 이동언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김탁 전통문화연구소 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학술회의 주제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배달족 후예라는 민족계보  세워

김성환 박사(주제:단군인식) “포명서가 일제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인식과 연계되어 있다. 만주와 일본 일부를 포함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대황조단군의 역대 유풍(遺風)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도 역사 문화적 측면에서 단군교의 범위를 보강하여 전 조선인의 대동단결을 위한 것이다.”

임찬경 연구원(주제:고구려 인식) “단군을 계승한 민족으로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민족계보를 밝히고 있다. 단군교가 國家史보다는 민족사를 복원하고 ‘배달족의 후예’라는 민족사를 구성하고자 한 이유는 오랜 병폐로 망국의 원인이 된 사대주의(事大主義)를 극복하려면 민족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단군과 배달, 부여를 이어 단군교, 즉 단군의 사상을 가장 잘 계승 발전시키고 현실적으로 방대한 국가를 경영한 고구려에서 그 정통성을 찾는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단목(檀木)을 ‘단군께서 처음 내려오신 신령한 나무’라며 활을 취하고 동부여 탈출 시 강을 앞두고 ‘나는 천제의 자손이요.’라고 한 것은 주몽이 어렸을 때부터 단군의 사적(事蹟)을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단군을 계승하는 ‘천손’이라는 자각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정영훈 교수(주제: 사상사적 의의) “포명서는 한국사 속에 오랫동안 존재해오며 ‘민족’의 방향으로 역사를 견인해온 단군 민족주의가 망국 전야의 민족적 위기상황을 맞은 한 말에 들어오면서 언론과 지식계를 비롯해 대중화하는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사대 모화사상에서 벗어나 4천 년을 이어온 단군의 자손으로의 민족정체성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단군을 천신이자 국조, 민족수호자로 부각하며 단군-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대륙중심 역사관을 제시한다. 홍암 나철의 단군교-대종교로 이어가며 민족운동의 구심점으로 기여했다. 단군교가 당시 위기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서굉일 교수(주제:항일민족운동) “국조 단군을 구심점으로 하는 민족종교로 중광된 단군교는 일본제국의 침략에 맞서 밖으로 무장독립운동과 안으로 민족문화 수호운동을 일으켰다. 창립부터 순수한 종교 단체라기보다 일종의 독립운동 단체로서 일제탄압을 피해 상해와 만주로 망명, 무장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대한독립군단의 서일, 홍범도, 김좌진 등이 해당한다. 또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주시경, 최현배, 정인보, 신채호, 박은식 등을 중심으로 국어와 국사를 지키는데 혼신을 다하였다.”

김동환 연구원(주제:단군신앙체계) “일본 천황에게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고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는 독립운동을 하던 홍암 나철은 백두산 사람인 백봉신사를 비롯한 33인에 의해 재수습된 단군신앙을 이어받았다. 후일 나철은 단군신앙의 성지인 백두산의 북쪽에 총본산을 두고 만주, 연해주, 중국, 한반도, 일본 등에 교구를 두었다. 단군신앙 교리는 권선징악, 선복악화에 집중된 선악관념이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