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중의 반역

3. 시대의 높이(상)

“대중의 지배는 역사적 수준 전체의 상승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을 보여주며, 오늘 평균적인 삶이 어제 걸고 있던 지점보다 더 높을 곳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준다. 이것은 삶에는 여러 가지 높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보통 ‘시대의 높이’라는 말을 별 의미 없이 하는데, 실은 그것이 많은 의미를 지닌 단어임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이 점을 좀 더 상세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가장 놀라운 특징의 하나를 특정하는 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오르테가는 1부 3 시대의 높이에서 이 ‘시대의 높이’를 깊이 검토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놀라운 특징의 하나를 특정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살아있는 시간

먼저 오르테가는 ‘우리 시대’가 어떤 의미인지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각 시대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연대기(年代記)에서 말하는 평면적인 추상적 시간이 아니고 생(生)의 시간, 삶의 시간이다. 이 삶의 시간은 항상 어떤 높이를 갖고 있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높아지거나 같은 높이를 유지하거나 낮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몰락(decadencia)’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떨어진다’는 이미지는 이러한 직관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각 시대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높이와 자신들의 삶과 관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현재의 방식에 충분히 만족하고 살고 있는 사람은 현대의 높이와 과거의 여러 시대의 높이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 오르테가가 검토하려는 것이 이 관계이다.

먼저 각각의 역사적 시대는 삶의 높이를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모든 시대가 자신을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높이가 낮다고 느낀 것도 아니고 과거보다도 뛰어났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각각의 역사적 시대는 삶의 높이라는 기묘한 현상에 대해 감정을 다양하게 표명해왔던 것이다.”

오르테가는 이처럼 명백하고 중요한 사실에 사상가와 역사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대는 자신들의 시대가 과거의 시대보다 수준이 더 높다고 보지 않고 기억 속의 희미한 과거를 더 나은 시대, 더 충실한 삶이 있는 더 나은 시대로 상정하는 게 더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시대가 ‘황금시대’ ‘아르체닌가(꿈의 시대)’이다.

황금시대를 동경한 시대

​오르테가는 시대의 높이에 관해 먼저 과거 시대를 더 높이 평가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스 로마의 지적 유산에 의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의 좋았던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하고, 호주의 선주민인 아보리지니는 ‘아르체닌가’(꿈의 시대)라고 불렀다.

황금시대를 보면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인류 역사를 다섯 시대로 구분했다. 황금의 종족,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영웅의 종족, 철의 종족의 시대가 그것이다. 헤시오도스의 시대 구분은 ‘종족’이란 말을 빼고 간단히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 등으로 줄이기도 한다. 헤시오도스는 인간의 시대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사악해지는 것으로 보았다. 로마의 황금기인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BC 43~AD 18년?)도 《변신이야기》에서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시대, 철의 시대로 구분하여 황금시대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호주 선주민 아보리지니 신화에 따르면 조화주가 나타나서 대지를 만들고, 구릉, 강, 연못 등의 지형을 만들고, 인간도 포함한 동식물을 만들어 생명을 주고, 제도를 정해서 세계를 조직화했다. 토지, 인간, 그리고 다른 생명체는 일체의 것으로, 그 사이에는 명료한 구별없이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인간은 특정 토지에 깊게 관계되며, 동물이나 식물을 선조로 가지는 경우도 있다. 자연과 문화가 동시에 형성된 시대를 ‘Alcheringa’ 드림타임(꿈의 시대)이라고 한다.

오르테가는 과거에 ‘황금시대’ ‘꿈의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들 삶의 맥박이 활기가 다소 떨어지고 쇠약하여 혈관에 피가 가득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전’의 시대를 자신들 시대의 삶보다 훨씬 풍요롭고 더 나아가 완전하다고 보고 과거의 시대를 동경했다. 그러한 더 가치가 있는 시대들을 돌아보고 상상할 때, 그들은 그러한 시대들을 능가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시대가 그에 못 미치는 훨씬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야만인들에게 의존하고, 인구가 감소했다.

실제 서기 150년 이후 로마제국에서는 생기가 위축되고, 쇠약해지면서 맥박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점차 늘어났다. 그로부터 2세기 후에는 로마제국 전체에 백부장의 직책을 감당할 용맹스런 이탈리아인이 충분하지 않아, 그 때문에 먼저 달마티아인(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 연안 지방), 나중에는 다뉴브 강과 라인 강 지역의 야만인들(바르바로스)을 고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여성들은 자녀를 낳지 않게 되어 이탈리아의 인구가 감소했다.

자신들의 시대 높이가 과거의 시대 높이보다 낮다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 사회는 결국 몰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여기는 활력이 넘치는 시대를 보자. 오르테가는 이를 규명해볼 필요가 있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보았다. 오르테가는 자신들의 시대를 선진, 절정기라고 여긴 시대를 분석한다.

자신들의 시대를 절정기로 본 시대

오르테가에 따르면 역사 가운데에는 자신의 시대가 최종적인 높이에 올랐다고 생각한 시대들이 있었고,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하여 숙원을 이뤄내고 희망을 달성했다고 생각한 시대들이 있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시대의 절정’과 역사적 생명의 완전한 성숙이다. 오르테가는 먼저 로마제국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을 소개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는 속주 총독인 플리니우스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밀고를 근거로 기독교인을 박해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이렇게 썼다. “그것은 우리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nec nostri saeculi est.”

트라야누스 황제(53?~117, 재위 98~117년)는 로마제국 오현제(五賢帝)의 한 사람으로 로마제국 사상 영토를 최대 판도로 넓혔으며, 도로를 건설하여 상업과 교통의 발달을 꾀하였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 로마는 융성기를 지나 전성기, 절정기였다. 그 시절 황제도 그런 의식이 있어 최고조에 달한 우리 시대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했다.

​오르테가는 이어 30년 전의 시대, 즉 19세기를 절정기의 사례로 분석한다. 당시 정치인들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했던 말을 한다.

"30년 전 정치인들은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 정부의 이런저런 시책, 이런저런 어리석은 행위를 비난하면서 항상 ‘그것은 선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30년 전 유럽인들은 인간의 삶이 도달해야 할 높이와 여러 세대에 걸쳐 열망해온 수준, 앞으로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절정기는 오르테가에 따르면 “그것은 여행의 최종목적지에 도달하였다고 믿었던 시대, 옛날부터 오랫동안 바라던 것을 얻고, 희망으로 가득 찬 시대이다.” 이는 ‘시대의 절정’(시대의 충만)이며 역사적인 생의 완전한 성숙이다.

절정에 이른 시대는 과거를 준비 시대, 곧 절정이 이르지 못한 열등한 시대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며 완전히 성숙한 시대는 그런 시대들을 딛고 세워진 것이라 여겼다. 19세기는 중세를 이런 식으로 본다. 중세라는 준비 시대를 거쳐 절정기라는 19세기를 맞이한 것이다. 오르테가는 이것이 우리 부모와 그들이 살아간 세기 전체가 자신들의 삶에 가진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19세기는 대만족의 시대

그러나 19세를 절정기로 보는 견해에 오르테가는 동의하지 않는다. ​

“역사를 평생 공부해오고, 시대의 맥박을 현실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그러한 환상, 절정의 시대이라는 견해에 현혹될 수 없다.”

그는 이 절정의 시대를 ‘자기만족의 시대’로 보았고, 19세기는 대만족의 시대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만족과 성취의 시대는 실은 그 내부가 죽어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생의 절정, 충실은 만족, 성취, 도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세르반테스가 “여행길이 여관보다 언제나 좋은 법이다”고 말한 것처럼.

절정기의 내부가 왜 죽어 있는가?

“자신의 소망, 이상을 달성한 시대는 그 이상 바라는 바도 없고, 소망의 샘이 말라버린다. 즉 그 훌륭한 절정이 실은 하나의 종말인 것이다.”

오르테가는 이를 수벌의 밀월여행에 비유한다.

“역사에는 운좋은 수벌이 허니문에서 돌아온 뒤 죽어가듯이, 자신의 소망을 새롭게 할 줄 몰라 만족한 가운데 죽어버린 세기도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절정의 시대가 항상 의식의 깊은 곳에서 매우 특수한 비애를 느낀다는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유래한다.”

꽃이 피어 절정에 달하면 곧 시들어 사라진다. 시대도 절정에 달하면 쇠퇴하게 되니 절정을 기뻐하면서도 내심 쇠퇴할 것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것이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