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중의 반역

2. 역사 수준의 상승(하)

모든 인간이 주권자라는 법적 이상, 또는 이념이 평균인 즉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평등권 등의 권리들은 내면적인 예속 상태에 있는 인간의 영혼을 벗어나게 하여 주인의식과 존엄의식을 불어넣었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평균인이 스스로 자신과 자기 인생의 주인이자 소유자, 지배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제 이루어졌다. 이렇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는데 30년 전의, 즉 19세기의 자유주의자, 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 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원치 않은 결과도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 평균인, 즉 대중의 모습을 오르테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평균인은 스스로 행동하고 온갖 유희를 즐긴다. 자신의 의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모든 예속을 거부하며 누구에게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자신과 자신의 여가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의복에 신경을 쓴다. 이러한 것은 주인의식에 항상 수반되는 영구적인 속성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속성들이 평균인과 대중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이처럼 전에는 상위 소수자만의 전유물이던 “중요한 활동”이 오늘날 평균인의 삶을 이루고 있다. 지리에서 고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해수면이라면 역사에서 그 역할을 평균인이 한다. 평균인의 삶 수준이 과거에 귀족들만이 도달했던 높이까지 오늘날 상승했다면 이는 역사의 수준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격히 단번에 한 세대만에 상승했다.

오르테가는 이같이 “인간 생활이 전반적으로 상승하여 오늘날의 사병은 장교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인류라고 하는 군대는 이제 장교들만로 구성된 셈이다.”라고 비유하였다. 사병이 없는 장교만 있는 군대.

그런데 왜 오르테가는 “현재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등장할 모든 선과 악의 원인이자 근원이 이 역사수준의 전반적인 상승에 있다”고 하였을까?

1장에서 기술한 것처럼 대중은 특별한 자질이 없는 평균인으로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도 기존의 자신을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고, 자기완성에의 노력을 하지 않고 매순간 물결을 따라 표류하는 부표 같이 표류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중요한 활동”을 그런 대중이 하게 되니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인류라는 군대로 돌아가면 “의식과 자질은 사병인데, 계급이 장교”인 상태라고 오르테가는 보는 듯하다.

생활 수준의 상승,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경제적 번영의 결과

평균인의 삶의 수준 상승과 관련하여 오르테가는 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을 지적한다. 즉 오늘날 삶의 평균 수준이 과거에 소수가 누리던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것은 유럽에서는 새로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당연한, ‘헌법’에 명시된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의 구체적인 사례로 오르테가는 “법 앞에 평등”이라는 의식을 든다. 자신이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는 의식과 다른 모든 개인과 평등하다는 심리상태는 이전에 유럽에서는 탁월한 집단만이 갖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18세기 이래 언제나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즉 신생 미국은 건국 때부터 대중사회였다.

두 번째로 오르테가는 “유럽의 미국화” 문제를 지적한다. 법 앞에 평등,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평균인의 심리상태가 등장하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상승하자 유럽의 생활양식과 분위기가 모든 면에서 미국의 그것과 외관상 유사해졌다. 그래서 모두 “유럽이 미국화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게 유럽의 변화를 표현한 것을 두고 오르테가는 “이것은 매우 미묘하고 놀라운 심각한 문제를 하찮아 보이게 만들었다”며 “유럽은 미국화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큰 영향을 받은 적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니 미국인과 유럽인 모두 잘못된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대중의 승리와 그에 따른 엄청난 생활수준의 상승이 유럽에 나타난 것은 내부적인 요인, 즉 두 세기에 걸친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그와 병행한 사회의 경제적 번영 덕분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유럽인의 생활이 미국인들의 생활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일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의 평균적인 사람들의 도덕적 상태(정신상태)가 이처럼 일치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유럽인은 미국인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 유럽인에게는 미국인의 생활은 수수께끼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유럽이 대중사회가 되어가면서 미국의 대중사회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꾸준한 진보적인 대중교육을 실시하고 그와 함께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에서는 유럽처럼 대중의 승리와 그에 따른 생활수준의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유럽 이외의 국가에서 대중사회가 출현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대중의 반역, 생명력과 가능성의 엄청난 확장

오르테가는 미국이 유럽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별다른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 ‘평준화(nivelación)’ 문제라고 본다. 그는 유럽인은 삶의 평균 수준이 구대륙보다는 미국이 더 높다고 막연하게 항상 생각해왔다는 데 이는 검토된 적이 없는 강력한 직관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사실은 평준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재산이 평준화되고 다양한 사회계층의 문화가 평준화되고, 남녀의 차이도 평준화된다. 그리고 대륙간의 차이도 평준화된다. 유럽은 전에는 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 평준화를 통해 얻은 것이 더 많았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중의 반란이 함의하는 바는 생명력(vitalidad)과 가능성의 엄청난 확장이다.”

대중의 반란은 삶의 수준의 전반적인 상승을 가져오고 그 결과 생명력과 가능성이 엄청나게 확장했다. 이는 대중의 반란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런데 ‘유럽의 몰락’에 관해 너무나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오르테가는 비판한다. 특히 생명력에 대해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라고 강조한다. 즉 30년 전에 비해 오늘날 평균적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독일인의 생명력은 북미인이나 아르헨티나인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이 사실을 미국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오르테가는 지적했다.

그런데 오르테가가 말하는 생명력은 어떤 의미인가? 오르테가는 1921년 펴낸《척추없는 스페인》에서 생명력은 단지 창조의 힘을 의미한다며 이를 유기체의 삶 자체라고 말했다. 생명력은 한 건강한 세포가 다른 세포를 낳는 힘이고 또한 큰 역사적 권력을 낳는 보이지 않은 힘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대중의 반역은 창조력의 확장을 가져왔다.

이제 '2 역사 수준의 상승'을 요약해보자.

유럽에서는 18세기부터 두 세기에 걸친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그와 병행한 사회의 경제적 번영으로 대중이 완전한 사회권력의 자리에 앉는 승리를 거두었고, 그에 따라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대중은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기본인권, 시민권 등 일부 소수밖에 갖고 있지 않던 것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갖게 되었다.

오늘날 대중은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과거에 대부분 소수자의 전유물로 여기던 것들이다. 둘째, 동시에 이 대중은 소수자에 온순하지 않다. 이들은 소수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따르지 않으며 존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소수자를 밀어내고 그들을 대신한다. 이것은 대중 반역의 결과이자 특징이다.

또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우리는 평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재산이 평준화되고 다양한 사회계층 간의 문화가 평준화되고, 남녀 간의 차이도 평준화되었다. 그리고 대륙간의 차이도 평준화된다. 유럽은 전에는 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 평준화를 통해 얻은 것이 더 많았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중의 반란이 함의하는 바는 생명력(vitalidad)과 가능성의 엄청난 확장이다. 

대중의 지배는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전반적인 역사 수준의 상승을 가져왔으며 또한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더 향상되게 하였다. 

 

2. 역사 수준의 상승(상) : 우리 시대 공포의 원인은 대중의 폭력적인 도덕적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