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영산재, “너도 깨닫고 나도 깨닫고 현세가 극락이어라”에 이어)

현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학과장인 법현스님은 영산재의 세계화와 인재양성, 그리고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위한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산재를 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 영산재 의식을 배우려면 최소한 15년 정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첫째 스님이어야 하고 둘째 춤과 노래, 악기연주를 모두 섭렵해야만 하니 배우기가 쉽지 않죠.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입니다. 수행하지 않으면 노래 잘하는 꾀꼬리, 무용수와 다를 바 없죠.

봉원사에 50여 분의 스님이 계신데 송암스님을 비롯해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수행한 지 50년 가까이 되지만 한참 못 미칩니다. 잘난 체나 교만함, 아상我想을 벗어던지고 정진해야 합니다. 수많은 어려움 때문에 영산재뿐 아니라 불교음악의 길이 굉장히 험난하죠. 전 세계에서 불교음악을 가르치는 4년제 대학은 동국대학교가 유일합니다.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학과장인 법현스님은 깨달음의 예술 영산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학과장인 법현스님은 깨달음의 예술 영산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불교음악의 글로벌화를 위해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와 글로벌사이버대학교가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고.

- 방탄소년단(BTS)대학으로 알려진 글로벌사이버대학 이승헌 총장님은 가장 한국적인 홍익인간 정신과 문화를 글로벌화해서 전 세계인과 공감하는 문화로 전파하는 데 이미 앞서나가고 계시잖아요. 이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차용하면 1, 2단계를 거치지 않고 3, 4단계에서 서로 함께 융합해 그다음 5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2020년 11월 MOU 체결 후 학교 간 교류를 하면서 우리 대학에 ‘글로벌 공연예술’이라는 커리큘럼을 올해 새롭게 신설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를 가지고 세계로 나갈 수 있게끔 이론과 실기를 접목시켜서 안목을 넓혀줄 것입니다. 세계시장에 나아가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나가야 승부가 될 수 있죠.

한국적인 콘텐츠에 주목하셨는데 지금 한국의 문화적 소프트파워가 무한대로 확장 중입니다.

- 산업혁명 이후 서구 물질문명이 세계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뒤바뀌고 있어요. 앞으로 200~300년 동안 동양의 정신문명이 세계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들 합니다. 한국은 홍익사상도 있지만, 유교와 불교 사상도 융합되어 있습니다. 여러 정신세계에 대해 열려 있는 것이죠. 열려있기 때문에 진실하게 느껴지고 세계에 통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반만년 역사가 있고, 불교가 들어온 것도 2천 년 가까이 됩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DNA에 섞여 있으니 한국인의 끼가 통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인다움은 과연 무엇이라고 보는지.

- 한마디로 정情, 인간 본연의 정이죠. “내 심정을 네가 알아”라고 하잖아요. 정은 마음이죠. 마음으로 대하고, 마음으로 베풀어주는 거거든요. 손님 온다고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물 한잔이라도 내놓는 마음도 마찬가지죠.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고 가족이라고 여기니 상대방을 용서해주고 배려하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홍익도 정이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하나로 합하면 정이죠. 우리말에 미운 정, 고운 정, 슬픈 정, 아쉬운 정 등 너무나 많은데 이런 단어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죠. 정감 있는 언어를 사용해 표현하기 때문에 한국인만이 가진 독창성,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것이 한국인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정을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세계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영산재 법고춤을 공연하는 법현스님. [사진=봉원사 영산재보존회 제공]
영산재 법고춤을 공연하는 법현스님. [사진=봉원사 영산재보존회 제공]

영산재가 세계인에게 통하는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은 어떨지.

- 유럽에서 하는 공연은 성당에서 많이 초청하는데 성당에 머물며 공연을 합니다. 또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도 성당에서 일요예배에서 범패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요. 짧은소리는 3~5분, 길면 30분~1시간씩 악보도 없이 범패를 하면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신의 소리’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국내에서는 관심이나 지원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는데, 해외 공연을 하면서 세계인의 관심은 높다는 걸 실감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해외에서 더욱 각광받는 콘텐츠로 거듭날 것입니다.

영산재 이스라엘 공연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 2011년 7월, 이스라엘 정부의 초청을 받아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관음종 등 여러 불교 종단 지도자와 함께 3개 도시에서 영산재를 공연했습니다. 세계적인 전쟁 발발지역에서 진행한 5일간의 대장정은 세계평화와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납치되어 5년간 구금된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의 석방을 위한 것이었죠. 공연을 마치고도 3~4만 명의 관객이 떠나지 않고 30분 넘게 커튼콜을 외치며 열광했어요.

당시 현지 언론에서 ‘우리 이스라엘은 한국의 불교문화예술 영산재를 통해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것’라고 보도했지요. 그해 10월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 간 합의로 길라드 병사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1,027명이 풀려났습니다.

이스라엘 공연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 공연과 함께 텔아비브대학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 유대교 정신적 지도자 랍비님들과 의견교환을 하고 한국 불교음악 관련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때 랍비님들과 1시간 가까이 대화했는데 그분들 생각도 사랑이든 자비든 깨달음은 똑같다는 거예요. 산을 오를 때 직진하는 사람, 지그재그로 오르는 사람, 헬기를 타고 가는 사람 등 각자 정상에 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꼭짓점은 같다는 겁니다. 거기서 서로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어요.

두 번째는 종교 간 화합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가 있듯 100년이 걸리더라도 지금 누군가 시도하고 노력하면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다음 사람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겠죠. 이런 노력이 조금씩 축적되어 세계가 하나가 되는 소통의 시대, 융합의 시대가 되지 않겠습니까?

2011년 7월 세계 평화와 포로 석방을 위해 이스라엘 3개 도시에서 영산재 공연을 했다. 당시 이스라엘 현지신문 보도. [사진=봉원사 영산재보존회 제공]
2011년 7월 세계 평화와 포로 석방을 위해 이스라엘 3개 도시에서 영산재 공연을 했다. 당시 이스라엘 현지신문 보도. [사진=봉원사 영산재보존회 제공]

지금도 대부분의 분쟁이 종교로 인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 혹자는 21세기, 22세기 종교 간 전쟁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고 지금이 굉장히 위험한 시대라고 하거든요.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사태도 마찬가지고, 지금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어요. 인류가 종교를 만들었는데 그 종교로 인해 서로 싸우는 현재를 다시 돌아보고 종교 지도자들이 할 일이 뭔지 찾고 행동해야 하죠.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는 것뿐만 아니라 물질을 통한 베품도 있어야 하고요.

종교 간 통섭과 화합을 위한 한국 불교계의 첫 시도가 이스라엘에서 개최한 영산재 공연과 유대교 지도자와의 세미나였죠. 2012년에는 로마 바티칸, 중국 홍콩의 도교 및 불교, 한국의 유교 등 각계 지도자들과 함께 2012 세계 평화 서밋(World Peace Summit 2012)을 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종교 지도자 협회가 결성되어 매년 1~2번 씩 회의를 개최하는데, 한국 스님도 많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2006년에 교류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매년 각 종교계 인사를 수천 명씩 초청해 2박 3일간 재승공양을 하고 있죠. 100년, 200년 앞을 내다보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교류 공간을 제공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며,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합니다. 중국에 정신세계와 관련한 핵심 본부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법현스님은
법현스님은 "하늘에 떠 있는 지구가 하늘나라이고 우리가 신선이다. 천상세계에 살고 있고 깨달음이 소중한 사람인데 우리가 자신을 잘 모른다. 모두가 깨닫는다면 이 세상이 극락"이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종교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승려 생활을 몇 십 년 한 저부터 가르치는 것 외에 사회를 위해, 인류를 위해 정신을 깨워줄 수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가장 쉬운 것부터 실천하자는 마음으로 절에서 크리스마스 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인근 교회의 목사님을 초청해 좋은 말씀을 부탁드리죠. 저도 교회에 가서 강연합니다. 열린 마음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죠.

지금은 지구촌 시대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곳곳과 연결되었는데 점점 더 인종이 섞이고 나중에는 지구가 하나의 나라가 될 겁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늘에 떠 있잖아요. 달리 보면 지구가 바로 하늘나라이고, 우리가 신선입니다. 천상세계에 살고 있고 깨달음이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자신을 모르는 거예요. ‘물질적인 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거다, 윤택하게 해줄 거다’라고 엉뚱한 데서 답을 찾으니까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깨달아야만 하는 시점에 와 있어요. 모두가 깨닫는다면 이 세상이 극락이 아닐까요?

(3편 “세계 최초로 각필악보 발견, 우리 소리의 역사를 바꾸다”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