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기다리며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기다리며
  • 조민조 UBC 울산방송 PD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2-02-16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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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내가 다니는 방송사 건물의 1층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종종 들러 일회용 종이컵에 테이크아웃을 하곤 했다. 단 며칠이면 사무실 내 자리엔 동료들의 컵까지 꽤 많은 일회용컵이 쌓이는데 이 컵들을 모아 1층 커피숍으로 다시 가져가면 개당 100원. 내가 그 종이컵에 대해 받은 보증금이다.

이것이 바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을 중심으로 시행되었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다. 소비자가 일회용 종이컵에 음료를 담아가면 50원~100원의 컵 보증금을 음료값과 함께 지불하고, 그 컵을 다시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테이크아웃 문화가 퍼지던 시점에 맞물려 시행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2008월 폐지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도'가 2022년 6월 부활한다. [사진=Pixabay 이미지]
2008월 폐지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도'가 2022년 6월 부활한다. [사진=Pixabay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의 하나는 ‘종이컵은 종이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종이컵은 액체가 종이에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 폴리에틸렌(PE)이라는 물질이 컵 안쪽에 코팅이 되어있다. 이 코팅 때문에 종이컵은 종이와 함께 수거되었을 때, 오히려 종이의 재활용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PE 코팅이 되어있는 종이컵만 따로 수거하면 된다. 코팅을 해리(解離)하는 전문 재활용업체로 가게 되면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일회용컵을 따로 모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할 수 있겠다.

2008년 3월에 폐지된 이 제도의 최대 회수율은 38%. 일회용컵 10개 중 4개 정도가 돌아온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나 언론들은 이 정도 수준의 회수율을 실패라고 규정짓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일회용 문화가 지배적이지 않았고,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리 크지도 않았다. 나조차도 컵을 반납한 이유가 환경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공돈같이 느껴지는 보증금을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회수율 38%는 제도를 폐지할 정도로 절망적인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제도를 재정비하고 확대할만한 긍정적인 수치로 해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폐지된 이듬해, 4억 3천만 여개였던 일회용컵 사용량은 불과 3년 만에 6억 9천만 여개로 폭증한다(17개 프랜차이즈 업체 조사/환경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회용컵을 사용할까? 놀라지 마시길. 2018년 기준, 한 해에 28억 개의 일회용컵이 한 번 쓰고 버려졌다. 보증금 제도가 없으니 별도로 모아졌을 리는 만무하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거나, 종이류에 함께 배출돼 애꿎은 종이 재활용률만 떨어뜨렸을 테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진정으로 실패하게 만든 것은 섣불리 실패라고 단정 짓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었다.

이제는 조금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3년 전부터 컵 보증금제가 부활할 수도 있다는 반가운 예상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민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2017년 한 설문조사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에 대한 지지가 81.9%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시민 1,000여 명 대상/여성환경연대, 녹색연합).

거기에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우리 스스로가 이 편리하면서도 불안한 일회용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됐다. 의식의 변화는 행동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리고 폐지된 지 14년 만인 올해 6월, 마침내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부활한다.

재정비를 거쳐 새롭게 선보이는 2022년판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여러 면에서 변화를 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보증금 액수다. 기존 개당 50원~100원 사이었던 보증금은 300원으로 대폭 올랐다. 소비자 입장에서 좀 더 쉽게 반납할 수 있도록 음료를 구입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닌 다른 종류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반납이 가능하다.

환경부는 오는 5월에 보증금을 계좌이체로 받을 수 있는 앱도 배포할 예정이다. 그리고 어쩌면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보증금 관리를 위해 ‘자원순환 보증금 관리센터’를 만들어, 미반환 보증금을 투명하게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부활을 앞두고 언론사들이 저마다 내놓은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길거리 컵도 관리하라니…일회용컵 보증금제에 점주 '한숨' ▲“남의 쓰레기도 치워야 하나”…'일회용 컵 보증금제'에 와글와글 ▲“1회용 컵 보증금에…손님 빼앗길라”…속타는 프랜차이즈 카페 사장님들 ▲재시행되는 일회용품 사용금지에 불만 속출...

제도 자체가 아직 완벽히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라는 패를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불편함을 지나치게 드러내기보다는,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어떤 점들이 보완되어야 하는지, 어떤 의식의 공유가 필요한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가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보증금을 내고 편하게 일회용을 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렵게 부활한 이 제도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일회용 대신 다회용을 쓰는 문화 정착’이 아닐까. 새롭게 선보이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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