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배달국의 선도제천과 천인합일 수행

1. 제천신격 : ‘마고삼신-삼성’의 사상적 역사적 의미

1980년대 이후 요서지역 상고문화가 집중적으로 발굴되면서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일대의 흥륭와(興隆窪)문화(B.C.6200년~B.C.5200년경) 백음장한(白音長汗) 유형에서 출토된 모신상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학계에서는 이를 동북아 후기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모신상으로 주목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모신상 전통은 후기 구석기 이래 동·서 유라시아사회에서 두루 나타나 신석기문화로 이어진 것이었다. 동북아 신석기문화에서는 근래 흑수백산(黑水白山) 지구 오소리 강변의 소남산문화(小南山文化) 소남산유적 제2기층(B.C.7200년~B.C.6600년경)의 문화가 오히려 요서지역 흥륭와문화나 홍산문화의 원형인 것으로 밝혀졌으니, 흥륭와문화를 동북아 모신문화의 중심으로 바라본 기왕의 견해는 수정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 요서지역 흥륭와문화기 이래의 모신상 전통을 살펴보게 된다.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흥륭와문화기의 마고모신상 전통은 조보구(趙寶溝)문화(B.C.5000년~B.C.4400년경)로 계승되었다. 대체로 흥륭와문화기 모신상이 두손을 모은 채 집자리 바닥 중앙에 꽂힌 모습으로 다리가 표현되지 않았던데 비해 조보구문화기 모신상은 준거좌(蹲踞坐, 쭈그려 앉은 자세) · 의좌(依坐, 기대앉은 자세) 등 좌식으로 다리가 표현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는데,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선도수행과 관련한 표현이 시작되었던 점이다. 곧 조보구문화기 모신상에서는 척추선이 표현되고 정수리 중앙에 구멍을 뚫거나 상투머리가 표현되었는데 이는 인체의 척추선에 자리한 단전 시스템을 표현한 것이었다. 특히 정수리 중앙에 구멍이 뚫린 것은 선도수행을 위한 핵심 혈자리인 정수리 중앙의 백회혈(百會穴) 표식으로 상단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었다. 조보구문화기 모신상에 백회혈 자리를 표시하거나 상투머리를 강조하는 표현법은 홍산문화기로 이어졌다.

또한 홍산문화기에는 소조 기법이 크게 발달, 양적인 면에서 인물 소조상의 제작이 급증하고 질적인 면에서도 사실성과 예술성 방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이는 동시대 중원지역과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홍산문화 후기에는 모신상과 함께 남신상이 함께 제작되는 변화도 나타났다. 이러한 남신상들은 당시 선도제천의 주재자 겸 통치자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는 홍산문화 후기에 이르러 선도제천이 제천의 신격인 마고모신상 중심에서 제천의 주재자 겸 통치자인 남신상을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단초를 보여주었다.

홍산문화 후기 소조 마고모신상 및 남신상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백회혈·인당혈 표식 외에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한 채 두 손으로 배 하단전을 감싼 모습이 나타났던 점이다. 이는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다시 상단전으로 생명력이 회복되어가는 수행 과정을 표현, 이즈음 선도제천의 수행적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흥륭와문화기 이래의 마고모신상은 대체로 다리 표현없이 양손을 가슴에 모은 형태로, 선도제천이 애초 신앙적 방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시사해주었다. 그러다가 조보구문화기가 되면서 선도수행과 관련한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홍산문화 후기 즈음에 이르러서는 반가부좌형 마고모신상 및 남신상까지 등장하였다. 요서지역의 선도제천은 애초 신앙적 방식에서 시작되었다가 홍산문화 후기에 이르러 선도수행적 방식으로 귀결되었음을 알게 된다.(자료1)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홍산문화 후기 마고모신상에는 선도적 세계관인 선도기학(仙道氣學)까지 표현되었다. 선도기학으로 바라볼 때 마고모신은 근원의 생명력인 ‘일기·삼기’를 의미하지만, 흥륭와문화기 이래 발굴된 실제 모신상에서 기학적 상징이 표현된 사례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홍산문화기에 이르러 3명의 모신이 합체된 형상의 ‘마고3모신상’, 또 우하량 모신묘의 인체 3배·2배·등신대 크기로 등급화된 7기의 모신상이 십자형(十字形)으로 배치된 ‘마고7모신상’과 같이 선도기학적 상징에 의한 모신상이 등장하였다.

먼저 ‘마고3모신상’이다. 홍산문화 후기 오한기(敖漢旗) 지역 흥륭구(興隆溝) 유적 등지에서 발굴된 ‘마고3모신상’의 경우 3명의 모신이 분리됨없이 하나로 엉켜있는 형상으로, 일기의 세 차원인 천·지·인 삼기의 불가분리성을 표현하였다.

다음은 ‘마고7모신상’이다. ‘마고3모신상’도 그렇지만 선도기학의 핵심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한 경우는 우하량 모신묘의 ‘마고7모신상’이다. 우하량 모신묘는 십자형 구조였으며 모신상 또한 인체의 3배·2배·등신대 크기로 구분된 7모신상이 십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모신묘와 모신상에 반영된 십자형은 선도기학의 세계관인 ‘삼원오행론’을 표현한 것이었다.

선도문화에서는 근원의 생명력인 일기·삼기가 ‘물질화(현상화)’하는 단계를 신화형태로 설명하는 전통이 있어왔다. 곧 일기·삼기를 ‘마고모신(하느님·삼신, 마고·삼신)’으로 표현하고, 또 일기·삼기가 나뉘어 물질화(현상화)하는 단계적 과정을 마고가 궁희·소희를 낳고 다시 궁희·소희가 4천녀·4천인을 낳으며, 또 4천녀·4천인의 단계가 되면서 드디어 기·화·수·토가 어우러진 물질세계(현상세계)가 창조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마고나 궁희·소희, 4천녀와 같은 모신은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4대 기본원소 기·화·수·토의 눈에 보이지 않은 차원, 곧 물질화되기 이전의 단계까지에 대한 상징이다. 또한 이러한 일기·삼기의 분화 과정은 ‘입체 십자형, 실제로는 입체 구형(球形)’으로 표상화되었다. 이상 ‘마고신화’에 나타난 선도기학은 ‘삼원오행론(일·삼론, 일·삼·구론, 천부조화론, 기·화·수·토·천부론)’으로 정리된다.

이렇게 마고신화(삼원오행론)을 이해할 때 모신묘의 7모신이 마고신화(삼원오행론)의 ‘마고7모신’에 대한 표현임을 알게 된다. 곧 ‘1기·3기(마고)’는 모신묘의 주실 중앙에 놓인 인체 3배 크기의 모신으로, ‘2기(궁희·소희)’는 모신묘의 동·서 측실에 놓인 인체 2배 크기의 두 모신으로, 또 ‘4기(4천녀)’는 모신묘의 주실 네 둘레에 자리한 등신대 크기의 네 모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에 모신묘의 7모신을 ‘삼원오행형 마고7모신’으로 명명해보게 된다. 이처럼 선도기학이 표현된 홍산문화기의 모신상들은 당시 선도제천이 선도수행의 방식으로 깊어져갔던 근저에 선도기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모신묘의 ‘마고7모신’이 일기·삼기의 단계적 분화에 의한 물질화(현상화) 과정중 물질화되기 이전의 단계에 대한 상징이라면, 마고7모신은 생명(기)의 차원일 뿐 물질(현상) 차원의 특정 인격신이 아니다. 곧 선도제천은 특정 인격신을 신앙하는 종교의례가 아니며 우주의 근원적 생명(기)과 사람속의 생명(기)의 합일을 지향하는 신인합일·천인합일·인내천의 수행의례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요서지역 홍산문화기의 마고모신상-남신상을 통해 이즈음 선도제천이전형적인 선도수행형의 방식으로 깊어져가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흥륭와문화기 이래 홍산문화기에 이르기까지 선도제천의 이러한 변화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국측의 선도사서에 자세하다. 한국측 선도사서들에 나타난 한국 상고사 계통 인식은 아래와 같다.(자료3)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동아시아 상고시기 선도문화의 종주였던 환국·배달국·단군조선 삼대(三代)의 주역은 역대의 환인·환웅·단군이었다. 이들은 통치자이기 이전에 당대 최고의 선인(仙人)이자 스승으로서 선도문화의 본령을 전수해나간 ‘스승왕(사왕師王)’적 존재들이었다. 역대 스승왕들의 선도문화권 경영의 방식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갔다. 대체로 환국의 역대 환인들은 열악한 물질 조건의 개선을 우선, 선도문화의 문명적 기초를 닦았다.(조화造化·부도父道) 배달국시기 역대 환웅들은 스승과 군왕으로서의 두 역할 중 상대적으로 스승의 역할에 치중, 선도문화의 본령을 널리 알려 나갔다.(교화敎化·사도師道) 단군조선시기 역대 단군들은 상대적으로 군왕 역할에 치중, 강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선도를 정치·사회적으로 제도화하였다.(치화治化·군도君道)

이상의 역사인식과 요서지역의 고고문화를 배대해보면 흥륭와문화·조보구문화기는 환국시기, 홍산문화는 배달국시기에 해당한다. 환국시기 선도제천문화의 보급을 위한 기반 조성, 또 배달국시기 본격적인 선도제천문화 보급이라는 선도문화의 성격 차이가 앞서 살펴온 흥륭와문화기의 신앙형 자세의 마고모신상, 또 조보구문화~홍산문화기의 수행형 자세의 마고모신상·남신상이나 선도기학이 반영된 마고모신상의 차이로 나타났음을 알게 된다.

또한 홍산문화기의 선도제천문화를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로 바라볼 때, 홍산문화 후기에 등장한 남신상이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를 주관하던 스승왕, 특히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를 개시했던 초대 ‘거발환 환웅’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게 된다. 거발환 환웅 이하 배달국의 역대 환웅들은 통치자이기 이전에 수행의 경지에 오른 선도스승으로서 제천을 집전하고 수행을 가르친 존재로 나타난다. 선도사서에서는 본격적인 선도제천문화의 개시라는 시각에서 배달국 개창을 ‘개천(開天)’으로 표현하며 거발환 환웅을 ‘개천 시조’로서 극히 존숭한다. 이러한 높은 위상으로 인해 거발환 환웅상이 마고모신상에 버금가는 남신상의 형태로 제작·숭앙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고모신상 및 거발환 환웅상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요서지역은 배달국의 양대 중심지인 백두산 서편 천평天坪 권역(신주神州·신시神市, 현 길림성 통화를 중심으로 하는 압록강·혼강 일대)과 대릉하 청구(靑邱) 권역(현 조양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교래하·노합하·대릉하 일대) 중 청구 권역에 해당하였다. 배달국 개창시 배달국 최고의 소도제천지인 백두산 신시가 자리하고 있는 천평지역이 도읍으로 정해졌지만 배달국의 선진문명이 뻗어나가는 대외 창구는 청구 권역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달국의 선진문명이 점차 중원지역을 위시하여 유라시아 일대로 뻗어나가면서 청구지역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져갔고 급기야 배달국 말기 14대 치우천왕대에는 청구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이러할 때 요서지역 홍산문화 후기에 등장하는 반가부좌 선도수행형의 마고모신상 및 거발환환웅상, 또 선도기학을 반영하고 있는 마고3모신상 및 마고7모신상은 배달국 청구지역에서 펼쳐졌던 배달국의 난숙한 선도제천문화를 현시하는 유물이 된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홍산문화기에는 선도제천문화가 본격화되면서 마고모신상 외에 선도제천의 주관자인 남신상(거발환환웅상)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남신상(거발환환웅상)의 등장은 후대 한국사회의 제천문화에 나타난 마고모신과 삼성(환인·환웅·단군) 또는 단군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곧 1980년대 이후 동북아 상고문화에서 마고모신상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 제천문화의 상징은 삼성(또는 단군)일 뿐이었고 한국문화의 기층에 자리한 마고삼신과 제천문화와의 관계, 또 삼성과 마고삼신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전무하였다. 그러던중 1980년대 이후 동북아 상고문화에서 마고모신상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마고모신상 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남신상이 등장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선도문화에 대한 인식의 진전으로 마고모신상과 남신상의 관계, 곧 제천의 신격과 제천의 집전자라는 관계도 밝혀졌다. 비로소 마고삼신과 삼성의 관계가 풀린 것이다.

한가지 더, 후대 한국사회의 삼성신앙은 환웅에 국한되지 않고 환인·환웅·단군 삼성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렇게 환웅이 삼성으로 확대된 문제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홍산문화 후기에 등장한 남신상은 당연히 배달국 스승왕의 대표격인 초대 거발환 환웅천왕이었지만, 배달국 이전의 스승왕으로 거발환 환웅에게 천부삼인을 전수해주었던 환국의 환인천왕, 또 배달국의 스승왕 전통을 계승한 단군조선의 스승왕 단군천왕까지 더해보면 삼성이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선도 전통에서는 환국·배달국·단군조선 삼대를 선도제천문화의 이상기로 바라본다. 물론 배달국시기에 이르러 선도제천문화가 본격화되었기에 스승왕에 대한 본격적인 신앙은 환웅에서 비롯되었지만 선도제천문화의 기반을 닦았던 역대 환인, 선도제천문화를 강화시켜갔던 역대 단군까지 포함하여 삼성 환인·환웅·단군에 대한 신앙으로 확대되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