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내’ 챌린지를 응원하며
‘용기내’ 챌린지를 응원하며
  • 조민조 UBC 울산방송 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2-01-17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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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분식이 당기는 날이다. 집 근처 분식집을 가기 전 몇 개의 용기를 챙긴다. 오늘의 메뉴는 튀김, 김밥, 그리고 떡볶이. 가게에서 주문을 하며 용기를 꺼내 이야기한다. “여기에 담아주세요”

집에서 가져간 용기에 포장한 분식. [사진=조민조PD]
집에서 가져간 용기에 포장한 분식. [사진=조민조PD]

내가 최근에 한 이 같은 행동은 겉으로 보면 참으로 간단하다. 그저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생각한 뒤 그에 맞는 용기를 가지고 가서 담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행동을 ‘용기내 챌린지(도전)’라고 부른다. 여기서 ‘용기’는 그릇을 담는 용기容器이면서, 동시에 겁내지 않는 자세를 일컫는 용기勇氣를 뜻한다. 한 마디로, ‘용기내 챌린지’는 ‘용기容器를 내는 용기勇氣를 가진 이들의 도전’인 셈이다.

용기내 챌린지를 처음 접한 것은 약 2년 전, 그린피스 캠페인에서였다. 류준열 배우가 구매한 과일상자를 펼쳐보며 “사과 껍질 위에 또 (플라스틱 비닐)껍질, 바나나 껍질 위에 또 (플라스틱 비닐)껍질”이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비슷한 시기 그의 SNS에는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본 사진이 올라왔고 그는 여기에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를 산적은 없었는데 #플라스틱’

장을 본 후 따라오는 비닐과 플라스틱. [사진= 배우 류준열 SNS 갈무리]
장을 본 후 따라오는 비닐과 플라스틱. [사진= 배우 류준열 SNS 갈무리]

필요한 것을 사면 거기에는 늘 플라스틱이 따라온다. 이미 플라스틱 포장은 우리 사회에서 디폴트값(기본적으로 설정된 기본값)이 된 지 오래다. 없으면 이상한 것, 없으면 비위생적으로 느껴지는 것, 그것이 지금 플라스틱 포장의 위대한 위상이랄까. 그러나 집으로 물건을 가져온 순간, 포장재는 말 그대로 처치하기 귀찮은 쓰레기가 된다. 내가 산 건 아주 조금인데 포장재의 부피가 더 클 때가 많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코자 하는 실천의 발로가 바로 ‘용기내 챌린지’다. 즉, 포장 없이 알맹이만 사는 소비 방식인 것이다.

어느 마트의 반찬 코너에는 자기 용기를 들고 오면 몇 퍼센트를 할인해준다고 한다. 또 어느 마트에서는 다 쓴 세제 통에 세제만 담아갈 수 있도록 자판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곡물류도, 화장품까지도. 기존 용기에 알맹이만 담아가는 방식이 전국 곳곳에서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좋은 변화다.

나는 여기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나가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화들이 기업이나 정부차원의 움직임이라면, 지금 이야기할 사례들은 우리 동네 차원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찌 보면 소소하고 잔잔하지만, 그렇기에 생활에 밀착해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내가 사는 울산에는 ‘용기낸 식당’이라는 지도가 있다. 이 지도를 만든 사람은 지구에서 무해하게 살고자 하는 평범한 울산 시민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알맹이만 사는 용기내 챌린지를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 도전을 할 때마다 소비자로서 주저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용기를 내밀었을 때 가게 사장님이 선뜻 받아줄까?’하는 고민이었다. 때때로 귀찮은 티를 내거나, 애써 가져온 용기대신 일회용 용기를 고집하는 업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 상할 데가…. 이런 경험이 계속 쌓이면 용기는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녀는 반대로 개인용기를 환영하는 가게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중순쯤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18개의 가게가 동참했다. 빵집, 커피숍, 밥집, 케이크 전문점, 횟집 등 업종도 다양하다. SNS에 띄운 공지를 보고 먼저 연락해 온 업주들이 많은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거기다 할인 제안에 선뜻 응해주시니, 자기 용기를 들고 무언가를 사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용기낸 식당을 신청한 한 디저트 가게는 이미 그 전부터 개인용기를 들고 오는 손님에게 자체 할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지도 덕분에 같은 생각을 가진 업주들이 많다는 것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도를 만든 이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고자 하는 진심들이 모여 서로 힘을 받고, 나아가 이런 움직임이 더욱 커졌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울산시민이 기획한 '용기낸 식당' 지도. 자기 용기를 가져와 포장하는 것을 환영하고 혜택을 주는 식당들이 참여했다. [사진=용기낸 식당 SNS 갈무리]
울산시민이 기획한 '용기낸 식당' 지도. 자기 용기를 가져와 포장하는 것을 환영하고 혜택을 주는 식당들이 참여했다. [사진=용기낸 식당 SNS 갈무리]

같은 마음으로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의미 있는 행보가 있다. ‘유어보틀위크’라고 이름 붙여진 이 움직임은 처음엔 서울 연희동의 7개 동네 카페에서 시작됐다. 단 일주일. 참여카페에서는 일회용 빨대와 일회용 컵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테이크아웃은 어떻게 하냐고? 전국 각지에서 모은 텀블러를 살균 소독하여 커피를 담아주고, 그것을 가지고 간 소비자는 가까운 참여카페에 반납하는 형식을 취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 없는 카페에 호응을 해줄지, 누구도 해보지 않았기에 우려는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4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걸 말해준다. 그것도 훨씬 큰 규모로 말이다.

두 번째 해부터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변화’라는 슬로건으로 카페에 분식집이나 음식점, 참기름집들이 가세했다. 일주일이 짧다는 의견을 수렴해 기간은 2주로 늘어났다. 세 번째 해에는 3주로 늘어났고, 동네에서 참여하는 가게만 해도 40여 곳에 이르렀다. 이 기간 동안 손님들은 자신의 용기를 가게로 가져가 알맹이만 구입함으로써 이 소소한 축제에 참여한다. 네 번째 해였던 지난해는 연희동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 서촌과 인천 배다리 일대에서도 진행됐다. 무려 80여 곳의 가게가 함께 했는데, 특히 이번에는 무가지와 재사용 리본으로 포장하는 꽃집과 비닐을 거절할 수 있는 세탁소가 동참했다. 불필요한 포장을 거절하는 선택지가 좀 더 넓어진 것이다.

‘유어보틀위크’를 진행해온 정다운 대표는 시작의 경험을 중요시한다. 플라스틱을 줄이는 실천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한 번쯤 겪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해보니 나쁘지 않네’, ‘할 만 하네’ 이런 생각이 드는 경험에서 지속가능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몇 주 간의 ‘유어보틀위크’가 가지는 의미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해까지 4년째 이어온 '유어보틀위크' 캠페인. [사진=유어보틀위크 SNS 갈무리]
지난해까지 4년째 이어 오는 '유어보틀위크' 캠페인. [사진=유어보틀위크 SNS 갈무리]

용기내 챌린지에서 용기낸 지도, 그리고 유어보틀위크까지의 일련의 흐름을 짚어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인식의 공유’가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포장이 너무나도 많다는 인식,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일상에서도 일회용 없이 무언가를 포장해갈 수도 있다는 인식,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자기 용기를 가져와 알맹이만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인식, 그런 소비자를 언제든지 환영하는 업주가 있다는 인식.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함께 공유될 때 우리는 많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

이것은 결코 상상의 나래가 아니다. 인식이 공유될 때, 실제로 가능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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