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실하 |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중국 요하를 중심으로 발달한 유적지가 밝혀지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문명의 탄생이 황하문명에서 출발했다는 기존 원칙을 바꾸었다. “요하 일대는 신화시절부터 황제 족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요하 일대를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함께 최근 백두산문화의 주체가 한(漢)족이라고 주장하는 ‘장백산(=백두산)문화론’도 제기하고 있다.

예로부터 한족은 ‘북방한계선’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야만인이라고 여겨온 북방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계를 두었다. 그러다 1980년대 요하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1천여 년 먼저 발달한 대규모의 신석기문화가 발굴되자 중국은 ‘대(大) 중화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전략으로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내세우고 ‘하상주 단대공정→중화문명 탐원공정→동북공정을 거쳐 홍산문화(紅山文化) 우하량 유적지를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정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고대사를 송두리째 중국역사로 편입하려는 요하문명론은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하는 엄청난 주장이다. 요하는 우리가 잘 아는 만주지역으로 신석기시대의 소하서(小河西)문화와 흥륭와, 사해, 부하, 조보구, 홍산문화 등 약 3,500년에서 9천 년 전까지의 유적지가 밀집된 곳으로 앞으로도 계속 발굴됨에 따라 연대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

요하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중국은 1973년 황하유역 앙소문화보다 약 1000년 앞서는 장강의 하모도문화(서기전 5000년)발굴을 계기로 ‘중화문명의 기원지’를 이원화했으나 1980년대 요하문명 유적 발굴로 또다시 “기원지가 다원화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중국고고학자들은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전욱과 고신씨(高辛氏) 제곡의 두 씨족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지역에 살면서 모든 북방민족의 시조가 되었으며, 만주의 홍산문화는 고양씨 전욱 계통에 의한 문명으로 귀결시킨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만일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이 최근 논의하는 요하문명론이 정리되면 신석기시대 이래로 만주일대는 황제족 영역이며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는 모두 중화민족 역사로 속하게 된다. 서기 전 2333년의 단군도 당연히 황제 후예가 되고 그 후의 부여, 고구려, 발해는 물론, 우리 대한민국역사도 중국의 방계역사로 전락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보는 새로운 역사해석이 중국역사를 단번에 5천 년 이전으로 끌어올린 반면, 우리나라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아직도 단군시대를 사실로 인정하기를 주저한다. 국가는 청동기시대가 되고 문자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이론에 매여 있다.  문자 없이도 문명을 이루고 세계를 제패한 나라도 있다. 몽골의 역사서 ‘몽골비사’는 유목민들이 자신의 조상이야기를 구술로 전해 온 것을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이나 이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약 5500여 년 전, 홍산 우하량(牛河梁)유적지에서 대규모의 종교의례 상징인, 제단(壇), 사당(廟), 무덤(塚)과 각종 옥기(玉器), 대형 여신상, 곰과 새의 상 잔해가 출토되었다.  사람의 실제 크기와 2배 크기, 3배가 되는 3개의 여신상은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대고 반가부좌로 앉은 모습이다. 3의 기원을 짐작케 하는 3수 문화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그 의미가 크다. 더구나 3개의 여신상 좌우에 있는 곰과 새 모형은 곰 토템 족 웅녀와 삼족오를 연상케 하고 3층으로 된 제단은 피라미드의 원형으로 유난히 3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주의 빗살무늬 토기와 치를 갖춘 석성, 비파형 동검, 일반 적석총과 피라미드형 적석총은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만주 일대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피라미드는 고구려와 백제를 거쳐 일본까지 뻗어 있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4가지, 거석문화와 채도문화, 빗살무늬(=즐문)토기문화, 세석기(細石器)문화 모두가 수용되고 융합되는 지역도 만주지역과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이것은 만주지역의 토착문화 위에 신석기 4대 문화권이 전래 전파되어 결합하고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주변국과 역사전쟁을 해야 하는가? 역사와 문화는 흐름이다. 수 천 년 전 요하문명이 탄생할 때에는 중국도 한국도 없었다. 21세기 동북아의 상생문화를 가꾸는 것이 시대적 과제인 만큼, 국가나 민족을 따지지 말고 새롭게 드러나는 요하문명을 동북아 모든 국가의 ‘공통시원문명’으로 연구하다 보면 그 주체가 선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