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 벌에 담긴 환경 이야기”
“옷 한 벌에 담긴 환경 이야기”
  • 조민조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1-12-21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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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광활한 땅 위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선명하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저마다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옷들이 널브러져 산을 만들었고, 그 ‘옷 산’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버려진 옷들이다. 이곳은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 중국이나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진 옷이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소비된 후 도착한 종착지다.

우리가 매일 걸치는 옷이 환경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현대사회에서 누가 그런 걸 생각한단 말인가. 편하게 택배로 배송된 옷을 입어보고서는, ‘아차, 사이즈가 맞지 않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본 것과는 이미지가 다르잖아!’,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런 마음으로 옷장 속에 넣어둔 옷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단순히 그런 이유들로 옷을 사놓고도 입지 않고 버리지만, 그 옷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산되지 않는다. 옷을 만들기 위해 지구촌 물의 20% 정도가 사용되는데, 티셔츠 한 장에는 950리터, 청바지 한 벌에는 7,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옷에 색을 입히는 작업에는 수많은 화학 약품들이 들어간다. 그뿐일까?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22%가 옷에 필요한 면화를 만들기 위해 쓰인다. 옷을 만들고 폐기하는 데 배출되는 탄소는 연간 120억 톤으로, 이는 국제선 비행기나 선박에서 발생하는 탄소보다 많은 수치다. 패션산업은 이토록 복잡하고 거대하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버려진 옷 무덤들. [사진=KBS 방송 갈무리]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버려진 옷 무덤들. [사진=KBS 방송 갈무리]

한껏 부풀어진 패션산업에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계속해서 바람을 불어넣는다. 전 세계 인구가 70억 명 정도인데, 한 해 생산되는 의류는 1,500억 벌에 달한다. 1인당 21벌 이상 ‘생산되는’ 셈. 여기서 ‘생산되는’ 것은 ‘사는’ 것과 ‘입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유명 브랜드들의 옷은 팔리지 않으면 시장에 나오지 않은 채 그대로 소각된다. 희소성을 가져야 가치가 올라가는데 헐값에 팔려버리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소각장으로 향하는 이유다.

구매한 옷 또한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따져볼까? 하루 평균 의류 폐기물은 2016년 기준 260톤에 달했는데, 8년 전에는 그 무게가 거의 절반이었다(출처: 환경부). 그러니까 쉽게 생산되고, 쉽게 사고, 쉽게 버리고, 쉽게 폐기되는 문화가 패션산업에 공고히 자리 잡은 것이다.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 유통시키는 의류’. 사전에 풀이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정의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의 저변에는 유니클로, H&M, 자라, 갭, 포에버21 등으로 대표되는 ‘스파(SPA)’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들은 옷 한 벌을 생산할 때 기획-디자인-생산-유통의 모든 과정을 망라한다.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해 생산원가가 절감되니 저렴한 가격에 옷을 공급하는 게 가능하다. 거기다 최신 유행 상품이라니, 누군들 쉽게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으랴.

용감하게도 이 유혹을 떨쳐내고자 과감히 움직인 사람들이 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옷을 교환함으로써 옷의 수명을 늘리고, 의류 쓰레기를 줄이고자 활동한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하는 활동 중 하나가 ‘21프로 파티’다. 여기서 ‘21%’는 사놓고도 옷장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옷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이름에 파티의 의미가 오롯이 담겼다고 할 수 있겠다.

2020년부터 11번의 파티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약 700여 명, 모인 옷은 1,500벌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교환이 이뤄진 옷은 700벌 이상이다. 거기다 파티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이 20~30대라고 하니, ‘중고 의류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杞憂였다. 최근에는 ‘다시입다연구소’의 자문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국 곳곳에서 같은 이름을 딴 파티가 열린다는 훈훈한 소식도 들려온다.

나도 울산에서 두 차례 열린 ‘21프로 파티’에 참석한 바 있다. 파티의 호스트에 따라 조금씩 방식은 다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우선 자신의 옷을 기증할 참가자들을 받는다. 필요한 옷은 약 다섯 벌 정도. 참가자들의 선의를 믿기에 옷 상태를 검수하지는 않고, 다만 ‘친구에게 입어보라고 권할 수 있는 수준의 옷’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파티 당일에는 일찍 도착하여 옷에 붙일 택(tag) 종이를 받는다. 그 종이에는 “00아, 내가 너를 00년에 만났는데 00 이유로 너를 떠나보낸다. 00 사람에게 가면 좋을 것 같아.”라고 쓰여 있다. 빈칸을 채우다 보니 마치 이별 편지를 쓰는 기분이다. 이후 옷 개수만큼 받은 교환권으로 이별 시장에 나온 옷들을 고를 수 있다. 이별이 이렇게나 유쾌할 수도 있다니!

하지만 중고 의류를 교환하는 것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패션산업의 완벽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8,000개의 의류 공장이 밀집해있다는 방글라데시의 운하는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들과 버려진 옷들로 가득하다. 충분히 입을 수 있음에도 버려진 옷들이 칠레 사막에서 산을 이루고 있다. 사실 재활용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전 세계의 옷 재활용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출처: 유엔환경계획 UNEP). 즉, 교환하고 재활용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옷이 쏟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 철 유행이 지나면 관심에서 사라지니, 문제의식을 느끼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흘러간다. 그 사이 지구는 우리가 버린 유행이 지난 옷들을 겹겹이 껴입고 있다. 온도는 올라가고, 불필요하게 입은 옷들은 더더욱 숨을 죄어오는 격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옷 한 벌에 담긴 환경의 가치를 떠올리는 힘이 아닐까. 그 힘을 기를 때 비로소 ‘패스트 패션’이라는 숨 가쁜 호흡을 늦출 수 있다. 필요한 옷을 사고, 오래 입는 것. 언뜻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행동이, 지구를 구하는 하나의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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