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10정자 중 ‘관어정觀魚亭’은 조선 숙종 때 축조한 ‘박지朴池’라는 저수지 한 가운데 인공 흙섬을 조성해 그 위에 지어진 ‘물 위의 정자’라는 점이 남다르다.

관어정이 있는 나산마을로 가는 길. (시계방향으로) 마을입구, 배롱나무에 핀 붉은 백일홍, 마을 길 좌우로 펼쳐진 논,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산. [사진=강나리 기자]
관어정이 있는 나산마을로 가는 길. (시계방향으로) 마을입구, 배롱나무에 핀 붉은 백일홍, 마을 길 좌우로 펼쳐진 논,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산. [사진=강나리 기자]

전남 담양군 수북면 나산리에 있는 관어정을 찾은 때는 태풍 ‘오마이스’가 한반도를 지나던 8월 하순이었다. 초록빛 벼들이 자란 너른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멀리 보이는 산 위로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함을 안겨 주었다.

나산마을 중앙에 있는 관어정을 둘러싼 저수지에는 푸른 연잎들이 가득했고, 백련들은 거센 비바람에 쓰러져 이제 막 지고 있었다. 이곳의 연꽃은 2007년부터 조성한 것으로, 2년마다 짝수 해에 마을 청년들이 소소하게 준비한 연꽃축제가 열린다. 환한 달빛 아래서 흰 연꽃이 가득한 박지를 거닐며 연인들은 사랑을 고백한다.

8월 관어정을 둘러싼 저수지 '박지'는 흰 연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8월 관어정을 둘러싼 저수지 '박지'는 흰 연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연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는 반짝이는 햇빛 아래 가물치와 잉어, 콩잎붕어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자로 가기 위해서는 연꽃밭 저수지 위를 가로질러 설치된 철교를 지나야 했다. 박지는 조선 시대에 조성되었지만. 정자 자체는 1953년 계사년에 마을 주민의 합심으로 주민들의 휴식처로 처음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쇠락했던 것을 2006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다시 세웠다고 하니 역사가 길지는 않다.

저수지 주변을 따라 걷다 보니 ‘풍취라대風吹羅帶’라고 적힌 비석이 서 있다. 직역하면 “도포를 매는 비단 띠가 바람이 불면 날린다”라는 뜻으로, 풍수지리상 고귀한 사람이 관복을 입고 비단 허리띠를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이기 때문에 자손 중 높은 벼슬에 오를 인물이 나온다는 명당자리를 뜻한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을 유래를 적은 비석이 있는데, 나산마을이란 이름도 풍취라대에서 유래했다고 적혀있다. 고인돌 1기가 이곳에서 서남쪽에 있다니 고대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자 인재가 배출될 명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관어정이 있는 나산마을에 세워진 '풍취라대' 비석. 풍취라대는 풍수지리상 높은 벼슬에 오를 인재가 나오는 명당을 가리킨다. [사진=강나리 기자]
관어정이 있는 나산마을에 세워진 '풍취라대' 비석. 풍취라대는 풍수지리상 높은 벼슬에 오를 인재가 나오는 명당을 가리킨다. [사진=강나리 기자]

기록상 조선 숙종 때 마을 중앙에 저수지 '박지'를 조성한 인물은 함양 박씨가문의 박문서朴文瑞이다. 그는 이 저수지에 연꽃도 가꾸고 농업용수로도 사용하다가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임명되어 떠나면서 마을에 박지를 기증했다. 마을에서 관리하던 박지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주는 역할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힘든 농사일을 하다 잠시 땀을 식히는 곳이 되었고, 아이들에게는 여름철 헤엄치는 물놀이터이자 겨울철 꽁꽁 언 얼음 위에 썰매를 지치는 놀이터가 되었다.

동행한 조효순 문화해설사는 “예나 지금이나 돌에 이름을 새겨 공치사하는 게 유행처럼 되었는데, 이름을 높이 날려도 많은 사람이 편히 쉬고 즐기며 함께하는 공간으로 정자를 남겼다.”라고 설명했다.

관어정을 가기 위해서는 연꽃 가득한 저수지 '박지'위에 설치된 철교를 지나야 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관어정을 가기 위해서는 연꽃 가득한 저수지 '박지'위에 설치된 철교를 지나야 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전국에 조선 시대 관찰사, 목사들이 부임지를 떠날 때마다 마을사람들이 세운 송덕비, 공덕비가 눈에 띈다. 그중 진정 붙잡고 싶을 만큼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세운 것은 얼마나 될까? 가난에 허덕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 비용과 노동을 부담시켜가며 세운 것이 많다고 전한다.

하지만 박문서는 자신의 땅에 조성한 저수지이지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쓰고, 이 마을을 떠나면서 주민들에게 주고 떠났다. 그의 마음은 훗날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밝힌 진정한 목민牧民의 마음일 것이다.

한편, 담양에는 ‘관어대觀漁臺’라는 정자도 있다. ‘죽녹원’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손꼽히는 ‘관방제림’을 마주한 곳에 있으며, 정자 밑으로 담양천이 흐른다.

조선시대 철종 때 담양부사 황종림이 고을 백성을 위해 땅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직단이 있던 자리였다. 그는 철종 8년(1857)에 고을 사람들의 양로와 교육을 목적으로 남쪽에는 남희정南喜亭, 북쪽에는 관어대를 건립했다. 두 정자는 학문을 닦고 연구하며, 향약鄕約을 시행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또한, 관어대 난간에 걸터앉아 흘러 들어온 맑은 담양천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보거나, 낚시를 하기도 하고, 고을 선비들이 시가를 읊으며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이곳 관어대 또한 백성과 함께 나누고 즐기는 올바른 목민의 마음이 깃든 장소라 할 수 있겠다.

담양 죽녹원과 관방제림을 마주한 곳에 '관어대'가 있다. [사진=담양군청]
담양 죽녹원과 관방제림을 마주한 곳에 '관어대'가 있다. [사진=담양군청]

그렇다면 관어정, 관어대 현판에 적힌 ‘관어觀魚’는 무엇일까? 관어는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거나 물고기를 보고 즐기는 민속놀이였다. 우리나라에서 관어의 역사는 먼 옛날로 올라가지만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난다.

≪고려사≫ 세가 권14에는 “예종 경자14년(1120) 8월 왕이 대동강에 가서 배를 타고 물고기를 구경했다”라고 기록했고, 열전 권 48, 49에는 신우 10년 12년 7월과 4월에 동강과 호곳, 귀법사, 남천, 해풍군 중방지 등에서 관어를 한 기록이 나온다. 그중 중방지 기록에는 “우왕(고려 32대 왕 1374~1388 재위, 공민왕의 아들)이 비와 우박이 내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보다가 발가벗고 물에 들어가 고기잡이를 하였다.”라고 하니 관어를 몹시 즐겼던 모양이다.

'관어'는 오랜 전통의 민속놀이로써 고려 시대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사진=강나리 기자]
'관어'는 오랜 전통의 민속놀이로써 고려 시대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사진=강나리 기자]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관어의 기록이 보이고, ≪세종지리지≫에는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관어대 기록이 나온다. 현재 영해면 괴시 2동에 관어대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관어를 즐긴 전통은 조선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춘추좌씨전≫에 “은공이 도읍을 떠나 멀리 상裳에 까지 나가서 고기 잡는 연장을 갖추고 낚시질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하자, 장희백이 간언하였다”라고 하여 관어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관어정은 조선 숙종때 박문서가 장단부사로 임명되어 떠나며 마을에 기증한 저수지 '박지'에 조성된 정자로, 저수지 한 가운데 인공 흙섬 위에 거목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관어정은 조선 숙종때 박문서가 장단부사로 임명되어 떠나며 마을에 기증한 저수지 '박지'에 조성된 정자로, 저수지 한 가운데 인공 흙섬 위에 거목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재미있는 우화도 있다. 장자 외편 제17편 추수秋水 제8장에는 '물고기의 즐거움'이라 하여 호수 위 돌다리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나온다.

장자가 "물고기가 나와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 아닌가"라고 했다. 이에 혜자는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지 어찌 알 수가 있는가"라고 답했다.

혜자의 논리대로라면 타인이 될 수 없으니 나 자신 말고 어느 누구의 마음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장자와 같이 다른 이의 입장이 되어보며 공감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타인은 물론 물고기의 마음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관어정을 둘러싼 저수지와 인근에 핀 꽃들. [사진=강나리 기자]
관어정을 둘러싼 저수지와 인근에 핀 꽃들. [사진=강나리 기자]

이렇듯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즐겼던 관어는 ‘은둔한 선비의 즐거움’을 뜻하기도 한다. 물 밖으로 나올 생각 없이 물속을 유유하게 헤엄치며 자유로운 물고기를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배웠다. 아울러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는 고기가 뛰어노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달관의 경지에서 도를 깨닫는 평안을 바라며 정자의 현판에 ‘관어’를 썼던 것이다.

대중교통으로 관어정을 가려면 담양종합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 42-1, 322-2를 타고 나산2구 정류장에 내리거나 농어촌버스 40-1, 2, 4번, 333번을 타고 고성리 정류장에서 내려 20분 정도 도보로 가면 된다. 다음은 스승 조광조의 죽음 이후 고향인 담양에 칩거한 소쇄처사 양산보가 평생을 거쳐 조성한 한국 최고의 원림 소쇄원瀟灑園으로 가자.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