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금동반가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금동반가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은 본관 2층에 국보로 지정된 금동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만을 전시한 ‘사유의 방’을 지난 11월 12일 일반에 공개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하는 ‘사유의 방’ 가이드북을 바탕으로 ‘사유의 방’ 여정을 시작한다.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명패를 지나 어둡고 고요한 안으로 향하면 파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이 맞이한다. 전시실 미디어아트로 작가 장줄리앙 푸스의 작품 ‘순환’ ‘등대’이다. ‘순환’은 끝없는 물질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순환’의 프리퀄로 제작된 ‘등대’에서 반가사유상은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한 희망의 불빛으로서 제시되었다.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본산 2789. [사진=김경아 기자]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본산 2789. [사진=김경아 기자]

 

 이어 어두운 ‘사유의 방’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멀리 1,40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려 우리를 맞이하는 두 반가사유상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 반가사유상에 가슴이 뛰는 듯한 느낌이 전해온다.

‘사유의 방’은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전시한 공간으로 건축가 최욱 원오원아키텍스 대표가 설계하였다. 최욱 건축가는 반가사유상의 에너지와 공간이 일체화한 느낌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소극장 규모로 전시실을 구성했다. 관람객은 어둠을 통과하는 진입로,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반짝이는 천장 등 추상적이고 고요한 전시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에 오로지 집중하여 감상할 수 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멀리서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앞뒤 좌우를 360도 천천히 걸어가며 보고, 상하를 내려보고 올려다보아야 한다.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사진=김경아 기자]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사진=김경아 기자]

 반가사유상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무슨 생각에 저런 미소를 지었을까? 저 순간을 포착하여 반가사유상으로 표현해 낸 이 또한 저런 경지를 경험한 구도자가 아니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반가(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를 말한다.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낸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 반가의 자세로는 알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이처럼 반가사유상은 깊은 생각에 빠진 석가모니의 모습이며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전시실 왼쪽의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제작되었다.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 화려한 장신구와 정제된 옷 주름 등이 특징이다. 전시실 오른쪽 반가사유상은 이보다 조금 늦게 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단순하고 절제된 양식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세 개의 반원으로 이루어진 보관(寶冠)의 행태와 두 줄의 원형 목걸이는 간결함을 더해준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의 최첨단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주조 후 거푸집을 고정했던 장치나 못을 제거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니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작 당시에 보수했거나 후대에 수리했던 흔적이 두 점의 반가사유상에 남아 있지만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사진=김경아 기자]

아쉽게도 이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고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발견했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전시실 오른쪽 반가사유상은 1912년 이왕가(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 가지야마 요시히데에게 2,600원이라는 큰 돈을 주고 구입했다. 전시실 왼쪽 반가사유상은 그해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후치가미 사다스케에게 4,000원을 보상해 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다. 1945년 국립박물관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하였고, 1969년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이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국보 반가사유상 관람료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