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생각하는 중고의 재발견
환경을 생각하는 중고의 재발견
  • 조민조 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1-11-1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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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어느 잡지의 작은 기획코너에 눈길이 갔다.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것 중 가장 오래되고 낡은 물건을 소개하는 페이지다. 이제는 희미하게 바랜 골드스타 로고가 적힌 선풍기라든가, 할머니 때부터 썼었다는 은으로 만든 귀이개, 낡았어도 여전히 견고한 약장과 같은 사진들이 짤막한 글과 함께 실려 있다. 세월이 흘러도 그 쓰임을 다하고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그 주인인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걸까? 글과 사진을 번갈아 보며 그런 생각에 잠긴다. 그래, 기억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중한 기억은 물건에도 깃들어있다.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것들은 무엇인지를 떠올려본다. 이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안경은 안경알에 새겨진 가느다란 흠들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아마도 지압용일 텐데, 할머니가 늘 조물조물하시던 거북이 모양의 물체에는 그리운 손때가 묻어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조그만 상자 어딘가에 고이 간직할 뿐, 일상에서 늘 함께하지는 않는다.

‘가만 보자, 오래되었으면서도 기억이 담긴 생활 속 물품이라…. 아, 할머니가 쓰시던 그릇과 접시들이 있지.’  파전, 계란말이 같은 것을 접시에 올릴 때나 갓 지어 고슬고슬한 밥을 그릇에 담을 때면 나는 내게 소중했던 사람을 생각한다.

오래된 것들에 새삼 눈이 가는 이유는 세상에 새로운 것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새로운 것들이 가득 들어찬 일상을 살고 있다. 약정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잘 작동되는 휴대폰을 새 휴대폰으로 바꾸고, 신형 전자기기를 사는 이들이 ‘얼리어답터(early-adopter: 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구입해 사용해보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라는 수식어로 칭송받는 시대가 아닌가.

또한, 유행이 바로바로 반영되어 빨리 바뀌는 ‘패스트패션(fast-fashion)’ 열풍이 불고, 부서진 곳 하나 없이 멀쩡한 가구도 새로운 디자인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그뿐인가. 단지 오래되고 촌스럽게 보인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이쯤에서 인상 깊었던 한 작가의 강의가 떠오른다.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라는 책의 저자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박현선 작가는 14년간 핀란드 헬싱키에 거주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중고 소비문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그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새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새것으로 갈음되는 문화 속에 살던 이방인의 눈에 타국의 활발한 중고 소비문화는 꽤나 신선했던 것이다.

작가는 먼저 중고가게 수가 눈에 띄게 많은 것, ‘저품질-고품질’, 혹은 ‘저가-고가’의 극과 극 사이를 메우는 다양한 가게 형태와 행사, 그리고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기는 모습을 특징적인 세 가지로 손꼽았다.

강의에서는 핀란드의 독특한 중고 거래방식을 소개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잇세빨베루(Itsepalvelu)’다. 영어로는 ‘셀프서비스’라는 뜻으로, 쉽게 풀어쓴다면 ‘판매 대행 중고가게’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은 물건을 팔 진열장을 대여한다. 그리고 팔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가격을 매겨서 진열해놓으면 그것을 대신 팔아준다.

중고 거래를 해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시간 약속을 잡아서 만나고, 그 자리에서 물건 상태를 살펴보는 일들이 얼마나 귀찮은지. 거기에 속된 말로 거래상대방이 잠수를 타거나, 약속을 펑크 내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이 방식은 그런 번거로움을 없앴다고 보면 된다. 보통 진열장은 일주일 단위로 예약할 수 있고 진열장 대여료를 제한 금액을 판매자가 가져가는 형식이라고 한다. 특화된 제품군이라고 할 수 있는 육아용품은 그것만 전문적으로 판매대행을 하는 가게도 있을 정도라고. 중고 거래도 이렇게 획기적일 수 있다니!

마치 축제와 같은 중고거래 행사도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우리나라 말로는 ‘청소의 날’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시보우스빠이바(Siivouspäivä)’는 매년 5월과 8월에 하루씩 열린다. 사유지를 제외한 헬싱키 어디서든 중고 물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중고 장터가 된다고 한다.

상인은 행사 참여가 불가능하기에 판매하러 나온 이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단위이다. 각자가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법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온다. 충분히 쓸 수 있는 물건들이다. 사고파는 이들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즐거움을 느끼며 하나의 축제처럼 이 행사에 참여한다고 책의 저자는 말했다.

그 강연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했다.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이런 행사를 통해 오래된 물건도 가치가 있다는 의식을 함께 나누는 게 아닐까?

모든 제품은 ‘생산-유통-소비-폐기’의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대부분은 생산단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우리 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만 하더라도 수지 생산단계에서 61%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가공단계에서 30%, 폐기단계에서는 9%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출처:미국 산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래된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는 것, 유행만을 좇아서 새로운 물건을 쉽게 사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중고 물품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적극적인 환경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오늘 책상 서랍을, 혹은 찬장을, 옷장을, 신발장을 열어보자. 나에게 가장 오래된 물건은 무엇인지, 새로 사 놓고도 잘 사용하지 않아 잠들어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건 어떨까. 소중한 기억이 담긴 물건이라면 지금처럼 아껴 쓰고,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기꺼이 떠나보내자. 사람이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물건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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