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아내와 함께 ‘서울대공원 동물원 둘레길’을 다녀왔다. 2021년 1월 1일부터 산림욕장과 동물원 외곽 둘레길을 무료 개방하였다. 서울대공원 둘레길을 소개하면 산림욕장길(7km), 동물원 외곽 둘레길(4.5km), 호숫가 둘레길(2km) 세 곳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길이 동물원 외곽 둘레길이다. 동물원 외곽 둘레길은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로 걷기에 적당한 거리이다. 덤으로 둘레길 경계에 있는 동물 구경도 할 수 있다.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특히 그날은 단풍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렀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가을 단풍의 오색 향연은 오감을 만족해주기에 충분했다. 단풍 나들이객 또한 많았다. 나들이객들이 입은 옷들도 울긋불긋 단풍 색을 닮았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크고 작은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면 마치 낙엽비가 내리는 듯하였다. 차갑고 건조한 겨울, 나무의 겨울나기를 위하여 그 역할을 다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둘레길은 차도와 인도로 구분하여 인도 한쪽에는 짚방석의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고운 흙길을 걷는 것처럼 푹신해서 좋았다.

대생명의 서사를 품은 나뭇잎의 변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이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몸서리치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미 바닥에는 낙엽들로 채워져서 ‘낙엽 융단’처럼 보였다. 가을 산이 단풍으로 유혹하고 낙엽으로 환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듯 나뭇잎이 단풍이 되고 낙엽이 되는 이치, 그 안에도 대생명의 서사가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소리에 따라 낙엽의 역사도 알 수 있었다. ‘바사삭’ 하는 소리가 나면 떨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신생아 낙엽이다. 그런가 하면 밟을 때 ‘피식’ 하는 소리가 나거나 아님 아예 소리가 나지 않는 낙엽은 떨어진지 꽤나 지난 노년기 낙엽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서로 몸 부딪치며 나는 잎 새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바람이 불면 끝내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것이 나뭇잎의 운명인가 보다.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지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여러 소가 나온다. “이쪽으로 걸으소”라는 푯말이다. 펼침막으로 만나는 불편한 진실. 다람쥐의 대화 내용을 가상으로 제작해서 보여 주는 펼침막이 인간의 이기심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아기 다람쥐 : “엄마! 사람들이 밤과 도토리를 다 주워가요. 우리는 추운 겨울에 어떻게 지내요?”

엄마 다람쥐 : “그래, 큰 걱정이야. 밤과 도토리는 우리들의 겨울철 양식인데 사람들이 마구 주워가는구나!”

사실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보면 이기심보다는 홍익의 마음이 더 빛났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펄 벅 여사가 감탄했던 우리 문화에는 겨울에 새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남겨 놓은 ‘까치밥’이 있다. 옛것은 다 사라져야 될 구시대적 산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해 주는 문화유산이다. 옛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옛것이 갖는 가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것이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 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라고 한다. 법고창신은 조선 영‧정조 때 실학자인 박지원의 말이다. 옛것을 거울삼되 그것을 바탕으로 변화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면서도 근본을 잃지 않음을 이르는 말로 공자가 말한 ‘온고지신’과 일맥상통한 말이다. 다만 온고지신은 ‘온고’에 역점을 두었고, 법고창신은 ‘창신’에 힘이 실려 있다.

우리 역사 문화 속 명절과 제사의 의미

이렇게 자연의 품 안에서 한참을 걷다 보니 힐링이 절로 되었다. 대자연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은 하루였다. 이렇듯 가을은 힐링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수확의 계절이자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가을 하면 제사가 떠오른다. 추석 명절 이후에 제사가 연이어 계속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제사의 기일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명절과 제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명절의 본래 의미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화합을 다지는 것이다. 제사의 목적 역시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돌아가신 가족을 추모하며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 뜻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제사의 음복이다. 제사의 마지막 의식은 제례를 주관하는 이가 제사상의 술잔과 음식을 주인에게 건네며 신을 대신하여 덕담을 내린다. 이후 주인과 주부가 신주를 다시 사당에 모신 뒤, 제사 음식을 친지 및 지인들과 골고루 나눠 먹으며 덕담과 복을 나눈다. 이렇듯 제사 음식을 나누는 것을 우리는 음복(飮福)이라 부른다. ‘복을 나누는 잔치’라는 뜻이다. 주부가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가족, 친지, 친구와 두루 나눈다. 음식은 조금씩 나누는데,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추모의 마음을 널리 나누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 제사와 제사음식에 담긴 본질이었다. 따라서 나눔을 이유로 음식을 과하게 할 필요가 없다. 과한 음식은 준비 과정을 번잡스럽게 만들고 준비하는 이들을 피로하게 하여 제사의 핵심인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없어지게 할 뿐이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본래 의도에 맞는 올바른 제사가 아니다. 일가친척끼리 교류하고 화목을 다지는 것이야말로 제사가 주는 복이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든 친족이 빠짐없이 술이나 차를 주고받으며 축복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응원하였다. 더불어 조상을 추모하여 같은 뿌리임을 기억하고 유대감을 키워나갔다.

약식 제사인 차례는 다반사

약식 제사 중에 차례가 있는데, 차례(茶禮)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이다. 차를 마시는 습관이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불교시대였던 고려시대로 보인다. 불교문화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중요한 일상 행사였다. 그래서 지금도 쓰는 우리말 중에 다반사(茶飯事)란 '차 한 잔 드는 일'이란 뜻으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이나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예서』에서 차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측에서 건너온 예법이 아니라, 우리의 관습에서 명절 때 조상들께 지내던 제사가 차례의 직접적인 기원이다. 제사를 모시면서 술을 따르는데, 굳이 차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주자가례』에서 제정된 사당 제도와 연결된 결과이다. 중국인들은 사당에 모신 조상들에게 차를 올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실정은 우리 것이지만 말은 영향력이 있었던 '차례'를 따른 것이다.

조상숭배와 제례가 발생한 이유

돌아간 조상이 모셔진 사당은 실제로 살아 있는 집안의 큰 어른처럼 대우했다. 그래서 관례, 혼례 등과 같은 예식을 치를 때 이 사당에 가서 자초지종을 고했다. 그리고 매일 문안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멀리 출장을 떠날 때나 돌아왔을 때 사당에 고해야 했다. 지금도 서울에서 학교나 직장을 다니고 분가를 해서 사는 사람들은 간혹 지방의 고향에 가면 부모님께 절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양친 중 한 분이 돌아가셨거나 할아버지·할머니의 정을 듬뿍 받고 자란 처지라면 더더욱 돌아가신 분들의 산소에 가서 절을 올릴 것이다. 돌아가신 분들이 살아 있는 나를 느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산소라도 찾아뵙고 절을 올리고 돌아오면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숭배는 조상에 대한 일련의 종교적 신념과 행위를 말한다. 제례는 조상숭배의 일종으로, 의례적 행위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제례는 제사라고도 하며, 제례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다.

문화인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에 의하면, 인간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하다는 원시적인 사고 때문에 시체에 대한 제의가 발상되고, 여기에서 조상숭배의 의례가 기원했다고도 한다. 다른 학자들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의 상실에서 오는 아쉬움과 죽은 자에 대한 공포가 조상숭배를 낳게 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이론들은 인간이 죽음을 통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비록 생물학적인 신체는 없어지더라도 또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산 자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자손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며, 때로는 조상이 자손에게 덕과 해를 줄 수도 있다는 믿음에서 조상숭배와 제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상에 대한 의례적인 행위는 죽은 사람을 산 사람과 따로 떼어내기보다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상호관계를 오히려 활발하게 해주는 성격을 지닌다.

조상숭배 의례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초점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시조신·중시조·입향조(入鄕祖) 등이 불천위(不遷位: 큰 공훈을 세워 사당에 영원히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로서 영구히 향사(享祀: 제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는 그가 단순한 일가족의 조상으로서가 아니라 한 문중, 한 파의 시조이면서 수호령으로 숭앙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원래 신명(神明)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를 제례라고 했다. 예로부터 천지(天地)·일월성신(日月星辰)을 비롯해 풍사(風師)·우사(雨師)·사직(社稷)·산악(山岳)·강천(江川), 그리고 선왕(先王)·선조(先祖)·선사(先師)를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나 유교가 정착함에 따라 대부분의 제사 대상이 그 의미를 상실하고, 제례는 단지 선조, 즉 조상에 대한 의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예서』에 나와 있는 제례의 종류는 사당제(祠堂祭)·사시제(四時祭)·이제(禰祭)·기일제(忌日祭)·묘제(墓祭)이다.

제사의 기원과 형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원시·고대인들은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과 변화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며, 특히 천재지변을 겪을 때는 공포감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월자 또는 절대자를 상정하고 삶의 안식과 안락을 기원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둘째, 천지 만물의 생성화육(生成化育)에 대해 외경심·신비감을 갖게 되는 동시에 생명에 감사를 표하는 행사가 베풀어졌다. 셋째, 하늘·땅·해·월·별·산·강과 그 밖의 자연물에 초인적인 힘이나 신통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삶의 안녕과 복을 비는 의식이 생겨났다. 넷째, 인간의 사후 영혼을 신앙한 나머지 귀신을 섬기는 예식을 갖게 되었다. 다섯째, 조상에 대한 외경심과 조상숭배 사상이 합치되어 조상을 추모하고 자손의 번영, 친족 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행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유래를 지닌 제사는 인지가 열리고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일정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고,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대상도 뚜렷하게 설정이 되었다. 우리 민족은 아득한 고대로부터 하늘을 공경해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농경에 종사하게 된 뒤로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이 성행하게 되었다. 옛 기록에 나타나 있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등이 모두 제천 의식인 동시에 농사와 연관이 있었다. 그 후 국가 형태가 완비된 뒤로는 사직(社稷)과 종묘(宗廟), 그리고 원구(圜丘)·방택(方澤)·선농단(先農壇)·선잠단(先蠶壇) 등 국가 경영과 관련이 있는 제례가 갖추어졌고 조상숭배 사상의 보편화와 함께 가정의 제례도 규격을 이루게 되었다.

일만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천제문화

천제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지만 일만 년이 지난 현재는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 현대인들은 제사에 대한 다양한 인식이 존재하고 있고, 보통은 제사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논점 중의 하나인 여성에게만 부여된 노동으로 인하여 여성들이 큰 부담을 느낀다. 이것은 제사에 대한 무관심과 교육미비로 제사를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제사는 하늘과 땅 절대자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문화로 계속 계승되어 왔다. 그 후의 시대에는 어떻게 제사가 변해왔을까? 삼한의 소도,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은 공통점이 있는데 축제와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바로 제천행사였고, 천제문화였다. 국가나 집안을 좀더 더 효과적으로 통치(通治)하러 만들어 낸 종교의식 중 하나가 제사(祭祀)이다.

제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도 보통 집안에서는 제사를 4대 봉사. 그러니 고조할아버지까지 지내고 있다. 사실 이것은 주자의 가르침을 위배한 것이다. 이렇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3품 정도의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대신 아무 벼슬도 없는 보통 사람들은 부모의 제사만 지낼 수 있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누구나 고조까지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조상을 잘 모시겠다는 효(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제사 풍속은 앞으로 더욱 많이 사라져 1대 봉사, 즉 부모만 제사 드리는 것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조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아 그리 깊은 정을 느끼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조상님들에 대한 제사는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종교를 믿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제사를 통해 영생을 찾을 필요가 없다. 가부장제도 역시 이전과 비교해 심히 약해져 한국인들은 제사에만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부모를 추모하는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의례인 제사를 통해 계속해서 부모님들을 추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사의 미래이다.

자신의 뿌리는 부모·조상이요, 씨족의 뿌리는 각 성씨의 시조이며, 한국인의 조상은 환인, 환웅, 단군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생명의 뿌리를 동경한다. 어머니 품안을 그리워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은 일종의 본능과도 같다. 인간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신비경에 젖어 드는 이유도, 바로 그 우주가 바로 인간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자랑, 제사 문화는 바로 뿌리를 받들고 뿌리의 은혜에 보답하는 보은문화의 표상이다. 살아 계시는 부모님께 올리는 제사가 바로 설날 세배이며, 조상님께 바치는 보은의 의식이 기제사와 명절제사요, 하늘에 올리는 가장 큰 제사가 바로 천제(天祭)이다. 하늘을 숭배하였고, 하늘을 닮고자 하였으며, 끝내 스스로 하늘이고자 했던 백의민족인 한민족의 하늘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천제로 이어졌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천제문화와 천손문화이다.

  제사문화는 인류의 시원문화

제사문화의 원조가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 이 제사문화에는 인간과 더불어 현실역사를 발전시키는 또 다른 주역으로서 조상신 등을 인식하고, 그 뿌리의 은혜에 보답하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제사문화가 바로 인류 시원문화의 뿌리라는 것이다. 제사문화로부터 백성을 교화하고 통치하는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또 제사의 뒷풀이로 열린 씨름 등의 놀이마당은 ‘국중대회’ 라고 해서 오늘날 스포츠 문화의 원형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보다 조상을 잘 받드는 나라가 없다. 지금의 ‘한류(韓流)’ 현상도 미래에 일어날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조짐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팝(K-POP)과 같은 음악과 한복, 김치, 온돌 등 한민족의 의식주 문화, 그리고 한글 등이 이미 세계에서 그 높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제 제사문화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천제문화가 또 다른 한류로 자리 잡을 것이다.

가을이 품고 있는 생명의 대서사

나무와 인간은 모두 지구상에 존재하는 같은 생명체이다. 한 나무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나이테가 보여 주듯 오랜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나뭇잎이 단풍과 낙엽이 되고 다시 거름이 되어 나무의 성장을 돕는 생명의 대서사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대자연의 이치이자 하늘의 섭리이다. 인간에게만 서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와 인간이 모두 하늘의 섭리대로 존재한다. 하늘의 섭리대로 살아갈 때 인류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기뻐하고 나누는 행사가 제천행사였으며, 고대 한국인들은 제천행사를 축제로 승화시켰다. 하늘의 섭리대로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하늘의 이치대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천제문화의 본질이다.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 중의 하나가 천제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음력 10월은 예로부터 제천행사의 달이다. 한민족은 하늘을 숭배하고, 하늘을 닮고자 하였으며, 스스로 하늘이고자 했던 민족으로 천제문화를 통해 천손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이제는 그 자긍심이 광명으로 한국인들의 마음을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