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이 백범일지 속 ‘나의 조국’ 글에서 한없이 갖고 싶다던 ‘문화의 힘’이 지금 발휘되고 있다. K콘텐츠를 타고 한류의 소프트파워는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케이 팝, 케이 드라마, 케이 영화를 접한 세계인은 한식, 한복, 한글, 한국의 놀이, 그리고 한국의 역사까지 주목한다. 그리고 이제 “한국인의 독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지난 18일 광복회관(서울 여의도)에서 광복회 초대 학술원장인 김병기 원장을 만났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면서 역사학자인 김병기 원장은 “한국인다움은 ‘홍익’에 있다. 한류 콘텐츠 속에 홍익이 살아있다.”라며 한류와 홍익은 별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만난 광복회 김병기 학술원장. [사진=김경아 기자]
지난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만난 광복회 김병기 학술원장. [사진=김경아 기자]

먼저 광복회 학술원에서 중점을 두는 일은 무엇인지.

- 광복회에서 학술원 설립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현재 민족사관부, 독립운동사부, 통일선양부 3개 부를 두고 연구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찾기 위해서 우리의 정신, 즉 국혼 회복이 최우선이며, 바른 역사를 회복함으로써 조국 광복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독립운동가 누구도 분단된 조국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3대 사업은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을 계승하는 일이다.

K콘텐츠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영화 ‘암살’, ‘밀정’ 등을 통해 의병과 독립운동가의 역사가 심도 깊게 조명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 역사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만들고 움직이는 것이 역사인데 교과서나 논문에만 권위를 부여하기보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웹툰, 웹드라마, 웹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전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역사교육에서 ‘사람’은 빠지고 ‘사건’만 남아 언제 무슨 일이 있는지 외우라고만 하니 청소년들에게 어렵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는 과목으로 되었다.

예전에 역사연구가들과 소설가, 방송작가 등 작가들에게 역사강의를 하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 학자는 논문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이라 자신을 위한 글쓰기지만, 작가는 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재미있고 창의적인 소재를 찾아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한다면 역사를 보다 잘 전할 수 있지 않겠나.

독립운동가에게 역사는 국혼, 역사는 사람이 만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군과의 전투할 때도 역사교육을 멈추지 않았다는데 독립운동가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였는지

-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독립운동이 정신력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정신력이 곧 혼이고, 다른 말로 하면 역사이다. 그래서  무원 김교헌,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 위당 정인보 선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역사복원 문제부터 거론하셨다. 독립운동을 할 때 항상 학교를 먼저 세우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고자 했다.

그분들은 조선이 패망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를 성리학을 신성시한 유학자들이 중화사관에 빠져 우리 고유의 역사와 정신 유산을 외면한 것에 있다고 보았다. 성리학은 정확히 공자맹자의 원시유학과도 다르고, 오랑캐에 밀려 위축된 남송이 중원을 회복하고자 주희가 중국 한족漢族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갖고 만든 유학이다. 이를 우리 유학자들이 비판, 논증조차 허용치 않는 절대 진리로 받들며 진취적 기상을 잃고 폐쇄적으로 변모했다.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최초의 독립운동사를 쓴 희산 김승학 선생의 후손인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독립운동가에게 역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독립운동가인 증조부 희산 김승학 선생도 광복 후 첫 독립운동사를 쓰셨는데.

- 상해임시정부 시절 자비로 ‘독립신문’을 발간하면서 우리 역사를 밝힐 사료를 모으는 일에 몰두하셨다. 그 사료들을 사람을 시켜 백범 김구 선생께 전했고, 조국 광복 후 김구 선생께서 귀국하면서 세 자루의 사료를 가지고 와서 다시 증조부께 전했다. 6.25 전쟁 때 증조부는 그 사료를 지고 부산까지 피난갔다가 1965년에 첫 ‘한국독립사’를 출간하셨다.

증조부는 임시정부 시절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韓國痛史’,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집필을 도왔다. 두 분이 “다음에는 통한의 역사, 피 흘린 역사 대신 나라를 찾은 웃음의 역사를 편찬하자.”고 맹약했고, 증조부는 그 약속을 지켰다.

일본도 민족혼 일깨우는 역사 자료가 더 위협적이라 여겨

희산 김승학 선생은 역사 사료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다고.

증조부는 1920년 임시정부 무장투쟁 당시 압록강 북부를 관할하는 참의부 참의장(육군 총사령관)을 지냈고, 김좌진 장군이 북만주 일대를 관할하는 신민부 총사령관을 지냈다. 1929년 11월 증조부가 만주에서 왜경에게 체포되었을 때, 왜경은 군대의 위치나 무기 현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수집한 사료를 내놓으라며 고문해 팔, 다리가 수 차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하셨다. 일본도 임시정부의 군사력보다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 사료가 더 위협적이라고 본 것이다.

지금 일본과 중국은 경제성장과 국력을 배경으로 우월감에 찬 애국주의 역사관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데.

-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자만하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동북공정을 깰 학문적 연구는 이미 중국 스스로 가지고 있다. 중국 청나라 때 고증학이 발달하면서 역사기록의 진위 여부, 사료에 언급한 장소가 어딘지 거의 밝혀놓았다.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학설도 깰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일본, 중국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 것만 자꾸 옳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자만심이 생기고 우월감 속에서 다른 나라를 보지 못하게 된다. 항상 역사에 관심을 갖고 주변 역사를 폭넓게 바라보고 균형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정립해야 한다.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한국인다움은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시원을 찾아가면 건국사상인 '홍익인간'이 있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더욱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한국인다움’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 고대에도 한류는 존재했었다. 당나라에서는 통일신라의 문물을 따라 하던 유행이 있었고, 고려 시대에는 전 세계를 지배한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에서 고려의 풍습을 따르던 ‘고려양’이 있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는 정신이고 혼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시원을 찾아가면 단군이 있고, 건국사상인 ‘홍익인간’이 있다. 홍익인간을 한자 뜻대로 ‘널리 이익되게 한다’ 등으로 가르치는데, 보다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귀국하기 전에 연서한 서명포에 윤기섭 선생은 ‘고로 잘 사세’라고 썼다. 홍익인간을 정의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우리 선조는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고르게 잘 사는 것을 원했다. 이게 바로 평등주의이고 평화주의 아닌가.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는 물론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등 모든 독립운동에서 인류의 평등과 세계의 평화를 외쳤다. 시야가 항상 열려있었다.

대통령, 국회의원 후보에게는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공개질의해야

하지만 ‘홍익인간’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부족한데

- 얼마 전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의 개념이 불분명하다고 빼고 ‘민주시민’을 넣자고 제안한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홍익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중시하는 인본사상이다. 인본이라는 말이 서양에서 왔지만, 우리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데 서양 사상은 대단하고 우리 것은 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렇듯 심오하면서도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철학을 제쳐두고, 현대어로 바꾸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대통령, 국회의원을 하고자 하는 후보에게는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질의서를 보내야 한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역사의식이 없으면 제대로 나갈 수가 없다. 리더에게는 반드시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21세기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으로 ‘홍익인간’을 제시할 수 있는지.

- 홍익인간과 한류를 별개로 보고 싶지 않다. 한류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우리 민족이 이어온 문화적 요소, 철학적 요소가 발현된 것이 지금의 한류가 아니겠는가. 우리 DNA에 있는 홍익인간의 따뜻한 정서가 담긴 한류콘텐츠에 세계인이 공감하고 있다. 홍익인간은 세계인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류보편적인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한국인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선결과제로 식민사관 극복, 한국인의 눈으로 본 우리 역사 정립을 손꼽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한국인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선결과제로 식민사관 극복, 한국인의 눈으로 본 우리 역사 정립을 손꼽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한국인다움을 회복하는데 있어 선결과제는 무엇인지.

- 우리는 아직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인, 일본인의 눈으로 본 우리 역사가 아니라 한국인의 눈으로 본 우리 역사를 정립해야 할 과제가 있다.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계에서도 누구나 식민사관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해방 후에도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이병도, 신석호조차 식민사관 극복을 말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 기술에서는 식민사관으로 기술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제가 한민족의 시원인 단군 역사를 없애고, 중국의 식민지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다며 한사군을 한반도 내로 끌어들인 것을 광복 후에도 70년 넘게 유지했다. 그런 역사교육을 하니 일부 기독교인들이 단군의 목을 친다느니 한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과학적 발굴과 연구로 한사군 한반도설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한사군이 이동했다는 등 신식민사관이 등장했다. 교과서에서 한사군 기술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보류라고 들었다. 얼마 전 남원에서 발굴된 가야유적에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기문국을 대입해 논란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역사학자로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가 독립운동에서 감춰진 역사라고.

독립운동사가 영웅주의 관점에 치우친 점이 없지 않다. 김구 선생, 김좌진 장군, 홍범도 장군, 윤봉길 의사 등 독립운동 전면에 나선 이들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위업을 이루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도 조명해야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가족으로서 핍박받고 해방 후에도 가난 속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 하층으로 떨어진 그들의 역사도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면사의 한가지 사례를 들면, 구한말 호남지역 특히 지리산을 중심으로 일본군이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고 의병들을 몰살했다. 그들은 “의병의 자식은 자라서 의병이 되고, 의병의 마누라는 또 다른 의병을 낳는다.”며 어린아이, 여자들까지 서슴없이 죽였다. 당시 처형된 의병장만 300명이 넘었다. 3.1운동 직후 임시정부에서 의정원을 구성하면서 각 지역의 인재를 고르게 선발하려 했는데 호남의 인재를 구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역사들을 조명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독립운동사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체성 밝히는 국학을 제대로 발전시켜야, 그것이 결국 자아를 발견하는 일

한국인이란 자긍심과 자신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 역시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역사는 과거 아니냐, 미래를 생각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몸이 아파 병원을 가면 의사는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나? 예전에 같은 증상을 겪었나? 집안에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있나?’라고 과거와 유전적 요인을 묻고 처방이라는 미래계획을 세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배운다. 제대로 된 민족사관을 확립시켜서 그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바로 국학國學이다.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은 "국학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였고 국가의 정체성"이라며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이 결국 자아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한국인다움의 올바른 정립이 국학인 것인가.

- 국학이라고 하면 보수적이라거나 국수주의라고 오해한다. 국학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였고 국가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나라의 위기 때마다 국학운동이 일어났다. 전에 동료 역사학자인 김동환 박사에게 한 외국인 교수가 “다른 나라는 국학을 나라에서 하는데 왜 한국은 개인, 단체가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연히 국학은 국가에서 해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으니까 사단법인 국학원 등 시민단체가 국민강좌, 학술회의, 시민운동을 통해 국학운동을 하고 있다. 이제 국가에서 국학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기존 역사관을 고집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중심이 되면 문제가 된다. 식민사관 극복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은 결국 자아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고 자아를 깨닫는 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