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환경을 생각한다면”
“방송에서 환경을 생각한다면”
  • 조민조 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1-10-20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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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한번은 드라마를 보다가 배우나 스토리 또는 촬영장소가 아닌, 아주 작은 소품 하나에 눈길이 간 적이 있다.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눌 때 다들 저마다 하나씩 손에 머그컵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극 중 나이가 지긋한 어떤 직원은 늘 같은 텀블러를 사용해서 음료를 마시는데, 그 모습이 드라마에서 거의 매회 등장하기까지 했다.

꽤 오래전 드라마인데도 그때 느낀 신선한 감정이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꽤 신기한 일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미디어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에서는 오히려 평소 우리 일상보다 일회용품 노출이 더 잦은 편이다. 환경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 부분을 눈여겨보게 됐는데, ‘방송에서 이렇게까지 다뤄도 되는 걸까?’ 싶은 경우가 왕왕 있다.

올해 어느 지상파 방송에서 론칭한 새 프로그램을 한 예로 들어볼까. 코로나19로, 또 1인 가구 증가로 급격하게 늘어난 ‘배달 음식’에 관련한 프로그램이었다. 스튜디오로 배달된 음식을 출연자들이 맛보고 품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자연스레 음식이 일회용기에 담겨왔다. 물론 초점은 음식이지, 일회용기가 아닌 것을 시청자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다는 수많은 댓글이 달린 것을 그저 단순히 ‘불편러’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뿐 아니다. 연예인의 일상을 담는 어느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그 연예인의 특이한 취향이 공개되었는데, 집을 호텔처럼 꾸미고 사는 것이었다. 깔끔한 침구와 정돈된 물품들에서 그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데 그중에는 매일 쓰는 칫솔, 치약마저도 일회용인 것이 아닌가.

방송 기획 단계에서는 분명한 기획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평소 우리가 배달시키는 음식들도 거의 대부분 일회용기에 담아 오기에, 제작진들은 그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특이한 취향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쉽게 노출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레기 문제가 우리 삶을 위협하는 코앞에 있는 지금, 방송이 그 부분을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닌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방송에서 노출되는 일회용품 실태는 어느 정도일까? 서울환경연합은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지난 9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200여 명 시민과 함께 지상파·종편·케이블에 관계없이 대다수가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노출 실태를 조사했다. 장르 또한 일부 드라마나 예능으로 한정하지 않고 열어두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조사 기간 중 방송에 노출된 일회용품 사용은 중복 건을 제외하고 총 1,306건에 이르렀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생수를 포함한 음료 PET’(45%, 590건)였고, ‘일회용 배달용기·포장용기’(11.56%, 151건)가 두 번째였다. 비닐 포장재, 일회용 컵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사실 방송제작 현장의 출연자나 스태프들 모두가 일회용을 사용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방송 제작자로서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이에게 드러나는 ‘방송화면’이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방송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기도 하다.

현재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제7조 12항)에는 ‘방송은 환경보호에 힘써야 하고 자연보호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지금은 방송에서 일회용품 노출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지만, 아직은 일회용품의 잦은 노출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보석 같은 장면도 등장한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바로 tvN의 '윤스테이'다. 고즈넉한 한옥 숙소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친환경 제품으로 구성된 편의 물품이 구비되었다. 플라스틱 포장이 필요 없는 고체치약, 고체샴푸가 방송을 통해 제대로 소개된 것이다.

tvN 예능 '윤스테이' 속 친환경 소품들. [사진=tvN '윤스테이' 갈무리]
tvN 예능 '윤스테이' 속 친환경 소품들. [사진=tvN '윤스테이' 갈무리]

생소해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본 환경 실천가들은 저마다 SNS를 통해 그 내용을 공유했다. 작은 숙소에서도 환경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제작진들의 의도가 시청자들에게 큰 위로이자 소통으로 와 닿았다.

일회성이 아닌, 아예 환경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jtbc의 ‘지구형 인간’이나 tvN의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는 출연자들이 친환경적 일상을 배틀 형식으로 실천하거나, 일상에 필요한 에너지를 친환경 활동으로 충전하는 형식을 취한다. 얼마 전 KBS는 배우 공효진을 앞세워 ‘오늘부터 무해하게’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했다.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캠핑을 떠나며 환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것이 콘셉트다.

어느 때보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는 시대, 방송은 수많은 대중에게 유통되는 콘텐츠를 제작하며 좀 더 세심하게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환경을 생각하는 것, 환경을 실천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식의 묘사나 환경을 실천하는 이들이 유난이라는 묘사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꼭 환경을 주제로 한 방송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이 음료를 마실 때 텀블러를, 스튜디오에서 대화를 나눌 때 머그컵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제 환경은 실천하면 좋은 것이 아닌,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환경’은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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