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 이하 한중연)은 한국학 분야의 대표 영문학술지 『Korea Journal』의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9월 30일 특집호를 발간하였다.

특집은 5편의 연구 논문과 각 5편의 논평으로 구성되었으며, 영문 한국학(Korena Studies)과 국문 한국학 간의 간극을 매우고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한국학은 한국의 언어,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등 한국에 관련된 각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이는 유럽, 또는 미국에서 성립한 지역학으로서의 개념일 뿐,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되지도 않아 한국학 전공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특집을 기획한 『Korea Journal』의 편집위원장 대전대학교 도면회 교수는 대일 항쟁기부터 시작된 한국학의 두 갈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배경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국학 분야의 대표 영문학술지 "Korea Journal"의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9월 30일 특집호를 발간하였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국학 분야의 대표 영문학술지 "Korea Journal"의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9월 30일 특집호를 발간하였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조선총독부는 한국과 일본이 같은 뿌리를 가졌으며 때문에 1910년 일본이 주도하여 다시 결합한 관계라는 전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의 관습과 제도를 연구하고 고적을 조사하였다. 하지만 1919년 삼일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한국과 일본이 다른 민족이며 한국이 고유한 민족문화를 가졌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이 선진적인 문명국가인 반면 한국은 후진적인, 또는 야만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에 관한 지식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이 같은 조선총독부의 시도는 한국인에게 자극을 주었고, 한국인의 독자적 문화를 증명하기 위하여 새로운 지식체계인 ‘조선학’이 등장하였다. 이후 1948년 남북한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한의 지식인들은 대일항쟁기에 성립된 이 ‘조선학’을 ‘국학’으로 승격하고, 특히 1960년 이후 한국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근대화론과 사적유물론을 수용하였으며, 한국이 유럽, 일본과 동일한 방향으로 발전해 갔음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해 유럽과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보고서와 일본이 주도하여 축적한 한국에 관한 지식 체계를 수용하여 ‘Korean Studies’를 형성해 나갔다. 이렇게 한국을 바라보는 정반대의 시선이 두 개의 한국학, 즉 ‘Korean Studies’와 ‘한국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과 한국경제의 비약적 발전, 1990년 전후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와 세계화의 흐름을 통해, 이후 한국의 한국학은 민족주의적 관점을 내려놓고 서구의 ‘Korean Studies’와 만나 대화하고 수렴하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그 간극을 좁혀 나가고 있다.

『Korea Journal』은 이번 특집을 통해 한국어권에서의 영문 한국학 학술지 출판 현황과 한국 경제사 연구현황, 영어권에서의 조선시대사와 북한 사회 연구현황, 마지막으로 한국 불교에 관한 영어권과 한국어권 연구 현황을 비교 분석하였으며, 각각의 원고에 대한 논평을 함께 실었다.

 먼저 서울대학교 황재문 교수의 “English-Language Journals in Korean Studies: Their Significance and Challenges”는 위와 같은 한국학의 흐름을 배경으로 하되, 한국으로부터 서유럽 등 외국으로 발신하는 영문 잡지를 중심으로 그 변화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개화기 지식인들이 한국과 외국 사이의 지식 매개자로서 영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부터 시작하여, 1990년 계간지로 전환한 『Korea Journal』이 영어권 한국학과 한국어권 한국학의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분석한다. 다만 한국 고전문학이나 전근대 한국에 관한 연구는 이전과 다름없이 고립된 영역에 존재할 여지가 크기에 이를 향후 과제로 제시한다.

명지대학교 김두얼 교수와 가천대학교 김한얼 교수의 “Is Commanding Korean a Source of Competitiveness?: An Analysis of Publications in English by Korean Economics Professors Affiliated with Korean Universities”에서는 1990년 이후 늘어난 한국어권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영문 학술연구 동향을 분석하였는데, 특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경제학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 중 영어 논문의 비율이 1998년 18%에서 2018년 33.3%로 약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 논문들 중 한국경제를 주제로 한 논문의 비중은 다소 적은데, 이는 정부가 한국적 소재를 다루는 경험적 연구를 연구자들에게 장려하지 않고 있으며, 연구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연구자들이 한국경제를 주제로 더 많은 영어 논문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정부 데이터의 개방 및 품질 향상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Don Baker 교수는 “Moving Beyond Politics: Western Scholarship on Joseon”을 통해 먼저 5백여 년간의 장구한 조선시대 역사를 포괄적으로 서술한 단행본이 영어권에서는 단 한 권도 없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하멜(Hamel Hendrick)의 저서부터 최근까지 영어권에서 발행된 조선사 관련 단행본들을 직접 소개하고 평가하였다. 특히 특정한 역사관에 입각하여 이를 정리하지 않고, 향후에는 조선의 정치 및 전쟁과 같은 큰 사건에 매이지 않고 일과 놀이 등 상세한 분야를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가 영어권에서 더 늘어나야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 Henry Em 교수는 “North Korea as Neighbor: Critical Scholarship on North Korea (in English)”를 통해 영어권에서의 북한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개관하고 바람직한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비판적 학풍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여전히 과거의 냉전적 인식에 의거하여 북한을 해석하려는 태도가 있다는 점과, 추후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난 탈북자 인터뷰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 불공정한 가해자이자 수혜자인 미국이 인권 프레임을 통해 도덕적이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에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향후 북한 연구가 남한과 북한이 동일한 민족이라는 ‘동일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서로 인접하여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는 ‘근접성’을 지향하여 정동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 Sem Vermeersch 교수는 “Representing Korean Buddhism: Toward a Transnational Understanding of the Field of Korean Buddhist Studies”를 통해 한국어권에서 이루어지는 한국불교 연구가 영어권의 연구를 거의 참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연구성과가 점차 디지털화되고 국내 불교연구에서도 영어로 된 연구성과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저자는 향후 한국어권과 영어권에서의 한국불교 연구의 상호 관계 개선을 위해, 영어와 한국어 모두로 발표할 수 있는 한국인 연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과, 한국불교와 정부가 자료 텍스트나 2차 문헌의 번역과 같이 장기간의 협동 작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Korea Journal』은 1961년 9월 창간된 한국학 분야 국내 최초 영문 학술지로 연 4회 한국학 전 분야의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 논문을 게재하고 있으며,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용 색인 데이터베이스인 A&HCI(Arts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에 지난 2001년부터 등재되어 전 세계적으로 원문이 배포되고 있다.

 특집호(2021년 가을호)는 9월 30일부터 한중연 누리집(www.aks.ac.kr)에 공식 게재되었으며, 출판·자료→ Korea Journal로 접속하면 원문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