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국이 형성된 후 7세기 중엽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중국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기존의 경계나 터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시기 이후 수많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이 자의 혹은 타의로 당나라로 이주했고, 이들의 후신인 발해 사람들도 당나라에 들어가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 흩어져 생활하였다. 이렇게 당나라에 들어가 삶을 영위하던 사람을 통칭하여‘재당 한인(在唐韓人)’이라 하겠고, 이들은 일종의 최초의 재외동포이기도 하다.

권덕영 저,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 역주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권덕영 저,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 역주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중국에 남긴 역사와 자취를 금석문으로 밝힌 책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7세기 중엽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고대 중국(당나라)에 거주하던 한인(韓人)의 활동과 역할 등이 고스란히 기록된 묘지명 32점을 전수 조사해 자료편과 역주편으로 나누어 판독, 번역, 주석한 신간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자료편, 역주편》(권덕영 저)을 펴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중국에서는 당대(唐代) 한반도 삼국과 발해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사람과 그 후손들의 묘지명이 여럿 발견되었다. 고구려유민 묘지명 17점, 백제유민 묘지명 10점, 재당 신라인 묘지명 4점, 발해인 묘지명 1점 등 총 32점이다.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자료편, 역주편》에서는 재당 한인 묘지명 32점을 모두 조사해 자료편과 역주편으로 나누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하였다. 32개 금석문에 주석만 2,112개에 달하며, 한국, 중국, 일본의 논저를 아우르는 연구성과의 반영, 묘지명에 쓰인 각 단어의 출처와 용례까지 담았으니, 역사, 고전문학, 고문서, 서지학 등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료편에는 32점 묘지명을 재당 한인 묘지의 발견과 전승, 판독과 연구성과를 포괄할 수 있도록 묘지명 탁본을 모두 수록하였다. 특히 중국을 수십 차례 직접 방문하여 현전하는 여러 탁본 가운데 가장 원본에 가까운 정본을 수집하고, 각종 이체자(異體字) 분석을 통한 엄밀한 판독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권덕영 저. '재당한인묘지명-자료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권덕영 저. '재당한인묘지명-자료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역주편에서는 묘지명의 내용을 모두 현대어로 정서한 후 원문의 표점과 띄어쓰기를 통한 정확한 해석을 시도했다. 기존 연구성과를 섭렵하고 다양한 전거를 통해 기존의 번역을 수정, 보완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였는데, 한문이나 서지학적 정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배경까지 함께 검토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또한 2,112개에 달하는 풍부한 주석은 이 책의 강점이다. 원 자료에 근거한 풍부한 설명, 인물·지리·관직·사건·용어 등에 대한 풍부한 전거 제시, 기존 단편적으로 다룬 묘지명 주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부한 내용은 이 책의 깊이와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향후 100년 내에는 다시 나오기 어려운 연구성과가 담겨있다고 평가할 만큼‘한국 고대 묘지명 연구의 결정판’이라는 상찬(賞讚)을 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묘지명이란 무엇이고, 역사 자료로 어떤 가치가 있는가.

묘지명(墓誌銘)은 죽은 사람의 생애와 공로를 후세에 전하고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리기 위해 묘주의 선조와 가계, 활동과 업적, 죽음과 장례, 후손과 무덤 위치, 묘주에 대한 칭송의 글을 새겨 무덤 속에 넣은 석판(石板) 또는 거기에 새긴 글의 총칭이다. 그래서 묘지명에는 개인의 사소한 생활 모습부터 국가 대사(大事)와 관련한 중요 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역사의 한 장면이거니와, 이런 점에서 묘지명은 역사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묘지명을 주목하는 이유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기록하는 문헌자료에 비해 당대에 바로 작성된다는 점에서 적시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자묘지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고자묘지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재당 한인의 묘지명도 7세기 중엽 긴박하게 돌아가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고구려·백제 지배층의 동향, 당나라 이주 후의 활약상과 한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타국 생활과 당의 이민족 지배정책, 당에서의 정치·군사·문화 활동과 역할 등을 생생하게 전해줌으로써 한국고대사의 사료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고구려유민 고자(高慈), 고모(高牟), 이타인(李他人) 3인의 묘지명 탁본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고모묘지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고모묘지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고자묘지명의 주인공인 고자(高慈)는 당나라에서 활약하였던 고구려 귀족 출신의 무장으로, 아버지인 고질과 마미성에서 함께 전사하여 같은 해 같은 날 낙주합궁현 평락향에 묻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묘지명의 정확한 출토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비문의 내용만 중국학자 뤼전위(羅振玉)를 통해 알려졌을 뿐 탁본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다. 이 자료는 중국 국가도서관에 소장된 탁본을 대한민국 국회도서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입수하여 소개한 것이다.

이타인묘지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타인묘지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고모묘지명의 주인공인 고모(高牟)는 당나라에 귀순하여 표도위대장군을 역임한 고구려유민이다. 고모의 묘지석은 현재 소재지를 알 수 없고, 지석 탁본만 전하는데, 이번에 소개된 탁본이 현재까지 알려진 고모묘지명에 대한 유일한 자료이다. 이 자료는 저자가 낙양(洛陽)에서 탁본을 발견하여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이타인묘지명의 주인공인 이타인(李他人)은 책성 출신으로 집안 대대로 태대사자와 책주도독을 역임한 고구려 귀족의 후손이다. 이 묘지석의 소재지는 발견 직후부터 행방이 묘연하여 알 수 없고, 최근 탁본 2점만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중 1점을 저자가 시안(西安) 현지에서 구매하여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