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세속의 영화와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한 선비들이 전원이나 산속 깊은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하며 글을 짓거나 책을 읽고 때로 벗을 초대해 즐기기 위해 만든 정원을 ‘별서정원’이라고 한다.

조선의 별서정원 소쇄원. [사진=강나리 기자]
조선의 별서정원 소쇄원. [사진=강나리 기자]

양산보가 지은 담양 소쇄원, 예천 선몽대 등이 대표적인데, 최근 별서정원에 대한 역사성 논란이 일어났다.

2019년 명승으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소재 별서정원으로, 200년 만에 개방된 비밀정원으로 조명받은 ‘성락원’이 문제가 되었다.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이 지었다고 했으나 그런 인물이 없었으며, 연대도 1903년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는 명승 지정 별서정원 22개소의 역사성을 전수조사 중이며, 그중 11개소의 검토 결과를 지난 2일 공개했다. 정원을 만든 이와 소유자, 정원의 변화과정, 정원 명칭의 유래 등을 고증하고, 이 과정에서 몇몇 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밝혔다.

우선, 예천 선몽대 일원,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구미 채미정 등 3개소의 정원을 만든 이와 소유자를 새롭게 밝혔다.

예천 선몽대를 만든 이는 그동안 우암 이열도(1538~1591)로 알려졌으나, 실제 그의 부친 이굉(1515~1573)인 것이 확인되었다.

조선의 별서정원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사진=문화재청]
조선의 별서정원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사진=문화재청]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의 경우 소유자가 불분명해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으나, 이번 검토를 통해 대대로 서울에 살며 벼슬을 하던 집안을 일컫는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홍우길(1809~1890)이 백석동천 일대 백석실을 소유한 사실을 밝혔다.

또한 구미 채미정은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정자로만 알려졌는데, 영조 44년(1768) 선산부사 민백종(1712~1781)이 지역유림들과 뜻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원의 유래가 새롭게 확인된 곳은 담양의 소쇄원과 식영정, 거창 수승대 3곳이다.

담양 소쇄원은 이인 양산보(1503~1557)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소쇄’라는 이름은 면앙정 송순(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

조선의 별서정원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조선의 별서정원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소쇄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담양 식영정 일원은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해 지어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성원이 정자를 짓고 임억령이 ‘식영(息影)’이라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창 수승대의 이름은 퇴계 이황의 제명시 ‘수승대에 부치다’를 따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수승대에 앞서 ‘수송대(愁送臺)’라는 명칭으로 삼국시대 옛 신라와 백제 사신이 이곳에서 송별할 때마다 근심을 이기지 못해 수송이라 일컬었다는 설과 뛰어난 경치가 근심을 잊게 한다는 설이 전해지며 조선시대 수승대와 수송대가 혼용되었다. 오랫동안 불렸던 명칭의 연원을 확인함에 따라 지정 명칭을 원래 명칭인 ‘수송대’로 변경하기로 했다.

조선의 별서정원 거창 수승대. 문화재청은 역사성 검토를 통해 본래 이름인 '수송대'로의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조선의 별서정원 거창 수승대. 문화재청은 역사성 검토를 통해 본래 이름인 '수송대'로의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한편, 정원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화재, 목부재의 부식, 전란 등으로 중수나 중건 등이 불가피하다. 이번 검토를 통해 순천 초연정 원림, 예천 초간정 원림 2개 정원의 형태, 위치가 변경된 사실도 확인했다.

순천 초연정 원림은 헌종2년(1836) 청류헌 조진충(1777~1837)이 초가로 지었으나. 그 아들 만회 조재호(1808~1882)가 고종 원년인 1864년 기와지붕으로 중건한 것이 밝혀졌다.

예천 초간정 원림은 선조15년(1582)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정자를 지은 뒤 임진왜란에 소실되고, 죽소 권별이 인조4년(1626) 중수한 뒤에도 화재로 불에 탄 것을 영조17년(1741) 후손인 권봉의가 기존의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겨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수한 것이 전해진다.

문화재청은 별서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 검토 결과에 따라 고시문과 국가문화유산포털 게시내용을 6일 정정한다. 또한 ‘거창 수승대’의 명칭 변경에 대해 30일간 예고기간 중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검토할 방침이다. 아울러 나머지 11개소 별서정원에 대해서도 올해 고문헌 고증 등 역사성 검토를 실시해 별서정원의 진정성 확립을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