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팩 재사용을 위한 조건"
"아이스팩 재사용을 위한 조건"
  • 조민조 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1.08.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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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최근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들어오는 민원 중 새로운 민원 하나가 추가됐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새벽 배송 차량 소리가 시끄럽다”는 것이다.

자, 새벽 배송을 시켜본 분들 손을 들어봅시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주변에 분명 한두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나같이 총알배송, 새벽배송의 편리함에 찬사를 보낸다. 꼭 총알배송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신선식품 택배나 배달 서비스를 이용했을 텐데, 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스팩이다.

2020년 한 해에 생산된 아이스팩만 해도 2억 6천만 개에 달한다(자료:환경부·업계 추산). 이는 4년 전인 1억 1천만 개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이토록 일상적으로 쓰는 아이스팩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한다. 한두 해 전 만해도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냉장고에 부피만 차지한 채 쌓여있는 아이스팩을 두고 보다 못해 가위로 윗부분을 오려서 싱크대에 부은 적이 있다. 그 순간, 아뿔싸, ‘이건 아니구나!’ 0.1초 만에 깨달음이 왔음을 고백한다.

투명하면서 물컹물컹한,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듯한 물질. 물로 잘 흘려보내 지지도 않고 뭉친 것이 바로 풀어지지도 않는다. 이 물질은 대체 뭘까? 아이스팩에 표시된 성분표시를 살펴보도록 하자. 대부분 ‘고흡수성 폴리머’, ‘고흡수성 수지’라는 단어가 적혀있을 것이다. 영어로는 SAP(Super Absorbent Polymer), 말 그대로 흡수력이 뛰어난 화합물질이다. 원래 물질의 대략 30~100배에 달하는 물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일반 천이 10~20배 정도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방송 촬영차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손쉽게 아이스팩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1g의 SAP(고흡수성 폴리머) 가루와 100ml의 물이 준비되었다. 그저 물을 붓기만 했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가 흔히 쓰는 아이스팩의 내용물이 완성됐다. 사용 후에 이것을 하수도로 버리게 된다면? 말 그대로 미세 플라스틱을 콸콸콸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된다.

그렇다면 소각이 답일까? 자, 다시 아이스팩 겉면을 들여다보자. ‘폐기시 내용물을 뜯지 말고 종량제 봉투에 버리세요’라고 쓰여 있다. 종량제 봉투에 들어간 쓰레기들은 보통 소각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소각장에서 또 다른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데 그건 바로, 물을 흡수한 고흡수성 폴리머가 잘 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반 플라스틱과 아이스팩에 간단히 불을 붙여보았더니, 일반 플라스틱은 3초 만에 불이 붙는 데 반해, 아이스팩은 1분이 넘어도 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소각장의 온도는 1000도를 훌쩍 넘어서기 때문에 일반 실험실에서 불을 붙인 것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해에 2억 개 넘게 생산되는 아이스팩이 소각장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물을 100배나 흡수하는 고흡수성 폴리머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배송하는 그 짧은 기간에만 쓰이는 아이스팩은 충분히 재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일 년에 2억 개 이상이 ‘새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부터 아이스팩 재사용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복지센터에 수거함을 비치하는 것. 사람들이 아이스팩을 수거함에 넣으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자원봉사 단체에서 수거·세척한다. 그리고 필요한 곳에 다시 나누는 형태이다.

재사용하고자 하는 의지와 참여의식은 높은 편인데, 언제까지나 자원봉사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수거-세척-수요처 발굴-배송에 이르는 모든 부분에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결국 아이스팩을 새로 만드는 비용보다 재사용하는 비용이 커지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을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우선 아이스팩의 규격과 디자인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규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수거와 배송이 수월하지 않은데다, 겉면에 표기된 특정 상표 로고 때문에 재사용을 꺼리는 업체들이 많다.

실제 아이스팩 재사용 시범사업 중인 부산에서는 수거한 아이스팩의 37%는 폐기한다고 한다. 오염 문제가 가장 크지만, 겉면에 특정 로고를  인쇄한 아이스팩도 폐기 대상이 된다. 규격과 디자인을 통일한다면 수거, 배송과정에서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재사용 비율은 높이고, 소요 비용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생산하는 아이스팩에 대해서는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환경부는 지난 2020년 8월, 고흡수성 폴리머가 사용된 아이스팩을 폐기물부담금 부과대상 품목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2022년 제조·수입분부터 313원/kg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사실 환경부의 이런 조치는 아이스팩의 생산량을 줄인다는 목적보다는, 물이나 전분으로 만든 친환경 아이스팩을 생산하도록 독려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아이스팩 생산·폐기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올 여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아이스팩을 만들어, 유통되고, 폐기하였을까. 어떤 아이스팩은 누군가의 냉장고에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고, 또 어떤 아이스팩은 가위로 오려져 하수구로 흘러갔을 것이다. 또 일부 아이스팩은 종량제 봉투에 담겨 소각장에서 태워졌으리라.

촬영을 하며 만난 출연자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고, 살짝만 행동하면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아이스팩 재사용을 위한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 이 움직임이 꽃피울 수 있도록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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