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는 조선시대 유교적 제사승계의 법제 도입이 가부장제 사회 성립으로 귀결되는 역사적 과정을 담은 신간 『조선시대 제사승계의 법제와 현실』을 펴냈다. 저자는 정긍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저자는 부계가족 중심의 제사승계 법제가 도입, 적용, 확산되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본다. 부계와 모계를 모두 중시한 고려에는 제사를 특정인이 주재하게 하는 관행이 없었으나, 고려 말 이후 『주자가례』와 가묘제가 도입되면서 제사승계인을 적장자로 확정하려는 법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조선 초에 이첨은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종법을 실시하여 가족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일부다처제가 묵인되어 처첩과 적서가 구분되지 않아 종자를 결정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종자법을 시행할 수 없었다.” 1390년 「사대부가제의」에 따라 장자봉사의 원칙이 규정되었으나, 장자승계의 원칙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차자가 제사를 승계하는 형망제급, 손자가 제사를 승계하는 대습상속, 첩자가 봉사하게 하는 첩자봉사, 타인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봉사하게 하는 입후봉사 등 예외적인 상황에 적용할 규정들을 보완해 나가야 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뿌리내린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제사승계의 기본 골격은 『경국대전』(1485)에 마련되었지만 16세기 중엽까지도 제사를 가계계승보다 사후봉양으로 여기는 관념이 강해서 여러 자녀가 돌아가며 제사를 주재하는 윤회봉사나 딸과 사위, 외손 등에 의한 외손봉사, 노비에게 제사를 맡기는 묘직봉사의 관행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혼인 후에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는 솔서혼속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조선시대 제사승계" 책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16세기 중엽 혼속이 솔서혼속에서 반친영례로 바뀌고 사위가 처가에 거주하는 기간이 단축됨에 따라 개인의 삶이 변하고 사회의 저변이 달라졌다. 혼인을 통한 가문의 결합으로 부계친족집단이 향촌사회에서 결속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8세기 이후 제도적으로 정비된 제사승계 법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예학의 발달로 4대봉사가 보편화되었고, 혼속의 변화로 제사에서 딸과 외손이 배제되었으며, 명분론의 강화로 첩자가 제사승계에서 점차 배제되었다.

반면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가계계승을 위한 입후가 확산되어, 이전까지 금지되었던 친가와 양가 부모가 모두 사망한 후에 입후하는 사후입후, 양자가 양가와 생가를 동시에 모시는 생양가봉사 등이 허용되었고, 형제를 입후하는 차양자, 죽은 사람을 입후하는 백골양자 등의 변례까지 등장했다. 19세기 중엽 철종 대에는 대여섯 집마다 한 집씩 양자가 있을 정도로 양자를 통한 가계계승이 보편화되었다.

제사승계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 한국적 가부장제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이 제도와 관습은 순풍양속인 ‘전통’으로 인식되었고, 이 전통은 1958년에 제정되어 1960년부터 시행된 민법의 ‘가’와 ‘호주상속’에 정착되었다.” 그러나 1990년 민법 개정으로 가부장제가 완화되어, 제사의 기능은 가계계승에서 사후봉양으로 수백 년 만에 되돌려졌다. 2005년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민법 개정으로 제사승계 내지 가계계승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2008년 대법원 판결로 제사에서 가계계승의 의미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우리 사회는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가계계승은 법적인 근거를 잃었지만 제사의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조상제사를 전통으로 믿는 세대와 형식화를 비난하는 세대 간의 갈등, 남계 위주의 제사를 둘러싼 남녀 갈등으로 인해 조상제사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제사의례와 가부장제의 의미를 반추하여 제도적 정의와 관행의 현실 간 간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저자는 21세기의 삶에 적합한 제례의 전형을 조선 초기 제사승계에서 찾는다. “그때는 부모에 대한 정을 고려하여 아들, 딸, 친손, 외손 구별 없이 돌아가며 모셨다. 이는 가족의 민주화이며 개성의 발현이다.” 

저자 정긍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법제연구원을 거쳐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역사적 맥락에서 법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가족 제도의 연구에서 출발하여 소송, 법원사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였으며, 대일항쟁기 이후 법의 변천과 역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통시대 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법을 통해 당대인의 삶을 찾으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한국 가계계승법제의 역사적 탐구, 조선의 법치주의 탐구 등의 저서와 국역 묵재일기, 역주 경국대전주해, 잊혀진 법학자 신번: 역주 대전사송유취 등의 공역서가 있으며, 「조선후기 刑曹受敎와 입법경향」, 「조선민사령과 한국 근대 민사법」 등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