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교사(서울온곡초등학교).
김진희 교사(서울온곡초등학교).

방학이 되면 어떤 아이들은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 되면 많은 아이가 학원과 밀린 공부로 빡빡한 방학을 보내기도 한다. 한편 학교생활의 규칙적인 리듬에서 벗어난 만큼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해지고 남는 시간을 온라인 게임에 쏟아부으며 비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이 지금까지 한 학기 동안 해왔던 좋은 습관을 위한 몸 단련이나 플래너로 꾸준히 실천해오던 습관이 혹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자유로운 시간이 생기는 방학을 적당한 쉼과 더불어 무언가 보람이 있는 건강한 일들로 채우고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방학식 일주일 전쯤부터 6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과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그런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방학 동안 자신이 꼭 해보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정해보라고 했다.

공부와 직접 관련되지 않아도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일, 도전해보고 싶은 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 등 이번 여름방학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는 꼭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예전에는 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나 독후감 쓰기, 보충 공부를 위한 문제집 풀기 같이 정해진 숙제들을 냈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몸 단련 한 가지와 도전해보고 싶은 일 한 가지를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하는 걸로 방학 숙제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두를 뇌교육 플래너에 기록하고, 일주일마다 스스로 돌아보며 계획을 다시 수정해서 실천해보는 것이 방학 숙제의 전부이다.

그런데 방학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짜여지는 공부 계획에 끌려다니지 말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말하면 몇몇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시키는 걸 그저 따라 하는 데 익숙한 아이들에게 스스로 방학 숙제를 정해보도록 하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은?’이라고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게 해주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을 정하든 스스로 결정하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다만 나만의 방학 숙제를 정할 때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첫째, 다른 사람(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그 일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셋째, 실천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고민을 거듭하며 이번에 우리 반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방학 숙제는 천 개의 조각 퍼즐 맞추기, 동화 쓰기, 기타 연습하기, 칼림바 배우기, 교과서 5번 읽기, 시 30편 쓰기 등 다양하다. 그리고 이렇게 숙제를 정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한 사람씩 방학 계획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왓칭》이라는 책에는 목표를 쉽게 이루는 한 방법으로 과정을 바라보는 연습이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다. 대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휴가에 관한 에세이 과제를 내면서 A그룹은 그냥 과제만 제시하고, B그룹에게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쓸 예정인지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확인한 후 제출 결과를 비교하는 실험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냥 목표만 세운 학생들은 32퍼센트가 에세이를 제출했는데, 구체적인 실행과정을 떠올려보도록 한 학생들은 75퍼센트가 에세이를 제출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 실행과정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것이 그냥 목표만 정하고 할 때보다 3배 이상 실행률을 높인다는 결론이다.

아이들에게도 이 실험 결과를 이야기해주며, 내가 계획한 일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눠보자고 했다. 예를 들어 방학 동안 칼림바 연습을 하겠다는 아이에게 어떤 곡을 연주하는 게 목표인지, 하루 중 언제 연습할 것인지, 연습 시간은 어느 만큼 할 것인지 등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서로서로 계획을 듣고 질문을 하며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이 실천을 격려하기 위해 방학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만나 확인하기로 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9시에 우리 반 줌(Zoom) 회의실에서 만나 40분 정도 방학 생활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왔다.

이제 3주 정도의 방학을 보내고 돌아보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방학 숙제 덕분에 나도 이번 방학은 시간을 더 계획적으로 보내게 된 듯하다. 사놓고 바빠서 미루어 두었던 책 4권을 방학 동안 다 읽겠다고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했으니 나부터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 정도 뇌체조와 근력 단련을 하고 30분 이상 책 읽기를 꼭 한다.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계획한 일을 실천에 옮기고 목표를 이루어 가면 누구나 기분이 좋고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작은 성취감이 모이고 모여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번 방학이 끝나면 우리 반 서로가 보낸 방학의 특별함을 자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으니 무엇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칭찬해줄지 고민이다. ‘선생님, 저는 이것도 해봤어요,’라고 떠들어댈 아이들의 이야기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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