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만약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생애 중 태어나서부터 절반의 생애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나이가 몇 살인지 자신의 부모와 형제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답답한 마음에 아마도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기억을 잃고서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의 기억을 찾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정상이 아닌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저는 때때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나이가 몇 살인지 우리 민족의 생일이 언제인지 우리 민족의 시조가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이 적습니다. 특히 단군(지금의 대통령을 뜻하는 보통명사)을 고유명사인 사람 이름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4354년의 역사 중에서 약 절반에 해당하는 고조선 2096년의 역사를 잃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습니다.

2000년이 넘는 고조선 역사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고 있는 지식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제가 1910년부터 한국 고대사를 말살하기 위해 수십만 권의 사료를 수거해 폐기해 버림에 따라 우리는 고조선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고조선 역사에 대해 답답하거나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치 자신이 기억상실환자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자신의 기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정신이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역사는 정신입니다. 동양에서는 문(文)사(史)철(哲)이 일체(一體)라 했습니다. 역사를 과학으로 보는 실증사학이 일제에 의해 도입됨에 따라 역사는 사건과 연대의 암기를 중요시하는 재미없는 과목으로 인식되고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역사에 더 무관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역사는 해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해석하는 눈인 사관(史觀)이 중요합니다. 관(觀)이란 독수리가 하늘에서 숲을 내려다보듯이 전체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역사를 볼 때는 전체를 보고 흐름과 방향을 파악하여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되는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이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서도 민족이 해체되지 않고 2000년이 지난 뒤에도 나라를 세울 수 있던 것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고난사관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역사 신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자 정신입니다.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 선생은 저서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없어질 수 있으나 역사는 없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까지 잘못 끼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첫 단추인 고조선 역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일제는 고조선 역사 말살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고 홍익정신은 국혼(國魂)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결과 국회의원들이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기본법에서 삭제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통계청이 2021년 3월 25일에 발표한 ‘2020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2020년 집단 간 사회갈등 정도가 심하다고 인식하는 비중 1위가 보수와 진보 갈등(85.4%), 2위가 빈곤층과 중·상층 갈등(82.7%)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저는 홍익과 공생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념 갈등 양극화 갈등은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홍익과 공생은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이기도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홍익정신의 국혼(國魂)을 잘 가꾸고 지키는 것이 아(我)를 보존하는 길이고 더 나아가 남북통일과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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