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여성 노동운동의 의미와 현재로의 연속성을 조명하다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여성 노동운동의 의미와 현재로의 연속성을 조명하다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1-07-06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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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김경일 저) 발간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여성 노동의 역할과 성장, 좌절, 그리고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젠더적 시점에서 다룬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김경일 저)을 펴냈다.

저자인 김경일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 전공)는 시대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노동자와 노동운동, 그중에서도 주변부에 머물렀던 여성과 젠더 문제에 주목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여성 노동의 역할과 성장, 좌절, 그리고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젠더적 시점에서 다룬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김경일 저)을 펴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여성 노동의 역할과 성장, 좌절, 그리고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젠더적 시점에서 다룬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김경일 저)을 펴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바로 노동자는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도, 미래에도 노동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것이며, 노동현장의 환경이 결국에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타도나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는 구호는 사라졌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에서 비롯된 공정의 문제, 중대재해 처벌과 위험의 외주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등 새로운 노동 어젠다가 떠오르는 만큼 노동운동과 노동자라는 주제는 미래진행형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과 젠더의 문제는 당위와 도식으로서의 노동자나 노동 계급이 아닌 개별 노동자 의식 내면의 기억과 주관의 경험을 미시 차원에서 드러내 보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과학 이론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온 구조와 행위의 딜레마에서 주로 후자에 초점을 맞춰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과 젠더 문제를 1950년대 노동운동에서의 급진주의 전통,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민주노동운동 그리고 2020년의 시점에서 사회운동의 현황과 쟁점 속에서 살핀다. 그 과정에서 심층 인터뷰를 통한 생애사 자료나 노동자 자신이 직접 쓴 일기나 회고록, 자서전 등의 질적 자료를 주로 활용했다. 노동자나 노동 계급이 아닌 개별 노동자 의식 내면의 기억과 주관의 경험을 잘 드러내는 이들 자료를 통하여 거대 담론의 그늘에서 드러나지 않는 노동자의 다양한 반응과 유형을 재구성해 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도식화되고 공식화된 노동자상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을 살아가며 일하는 사람의 노력과 이상, 갈등과 좌절이 지니는 다중의 모순과 복합의 양상을 구체화하여 제시했다.

이 책은 노동과 노동운동의 거대 서사에서 흔히 제시되어 온 ‘단일한 노동 대오’, 혹은 정반대의 신화를 비판의 시각에서 검토했다. 1970년대 이전까지의 노동사와 노동운동 연구에서는 흔히 자본과 때로는 국가에 맞선 단일한 의식과 지향을 지니는 실체로서 노동 계급을,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정권의 지지를 배경으로 하는 어용노조가 득세한 시기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예컨대 1950년대는 대한노총이 전일로 지배한 단독 무대라기보다는 각각의 조직들 안에 다양한 이념과 지향을 포함하는 복합의 여러 운동이 모색·시도된 시기였다.
수출 중심의 고도의 경제 성장은 한국 사회를 전통 농업사회에서 근대 산업국가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970년대는 이러한 이행의 변화 양상이 집약되어 나타난 시기였다. 산업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산업노동력이 형성되면서 노동력의 내부 구성도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1970년대 노동력의 주류는 노동 집약의 경공업 분야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공 영자나 철공소 직공 창수와 같이 농촌과 농업 부문에서 왔다. 따라서 이 시기에 형성된 공장 노동자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소년이나 청년층이었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80퍼센트 정도가 이 연령층에 속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남성 노동자에 비해 여성 노동자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으며, 여성 노동자의 증가는 1970년대 중반까지 가장 두드러졌지만, 그 이후부터 점차 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의 구성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산업화의 햇수가 짧다는 사실과 아울러 주력 산업이 노동 집약의 경공업으로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수요가 값싼 미숙련·반숙련 노동력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 분야에 진출했고, 산업화가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1세대를 구성했다.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전형을 이룬 여성 노동자들 역시 단일의 투쟁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널리 알려진 소모임 활동에서 보듯이 여성 노동자들의 정서 욕구와 의식화의 필요는 반드시 상호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며, 소모임을 통한 정서적이고 사적인 일상 활동들을 배제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흔히 노학연대에 의한 대학생들의 현장 활동으로 알려진 1980년대 전·중반기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단일한 하나의 거대 서사로는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복합의 정체성 유형들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저자는 노동운동의 주류가 표방해 온 ‘신화’를 해체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목소리들을 복원하고 그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이 책은  노동운동을 단절과 격리가 아닌 연속의 차원에서 조명한다. 일반으로 일제 강점기인 1945년 및 1970년대를 경계로 노동운동에서 커다란 단절과 격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20세기 근대로의 이행 이후 노동운동 전통의 연속과 계승의 차원을 강조했다. 먼저 일제 강점기와 이른바 해방 정국으로 이어지는 1950년대의 노동운동이 그러하다. 비록 특정한 지역에 한정된 사례 연구라 하더라도 그것은 앞 시기와의 연속선에서 복합의 양상을 지니고 전개되었다.

워싱턴대학의 전임교수인 남화숙은 대한조선공사의 자료를 이용한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를 통해서 1950년대 노동운동의 전통이 1960~1970년대를 거쳐 최근 한진중공업의 노동운동으로 이어지는 연속의 측면을 구명한 바 있다.

이 책에서도 김 교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후 운동에 나타난 단절과 연속의 문제라는 쟁점을 비판의 시각에서 검토했다. 노동운동 전통의 단절과 분리라기보다는 연속과 계승의 양상에 대한 강조는 역사의 궁극에서 노동자의 자발성과 낙관주의의 비전을 확인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공간의 범위와 시간의 지속이라는 점에서 1970년대 서울·인천 중심 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고 안정된 형태로 의식의 고양과 자율의 형성을 경험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것은 “더 당할 수 없을 만큼 당한 데서 나온 힘”이고, “목숨을 어디에다 던져야 좋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치열한 투쟁의 발현이었다. 스스로의 힘과 공동의 연대로 확보한 자율과 주체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이들 여성은 온몸의 힘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서 이들은 1970~1980년대의 특정한 운동 공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젊은 날의 가난과 고통을 배경으로 의식의 고양과 연대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성장한 이들은 이를 토대로 이후로도 사회의 각 방면에서 깨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갔다.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에 참여한 노동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노동 현장에 있었던 1970년대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현장을 떠난 이후에도 현실에 관한 관심과 운동에 대한 헌신을 버리지 않고 지역과 현장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운동 자체가 생활이 되는 그러한 삶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노동자의 낙원을 만들어 줄 테니 노동조합을 포기하라”는 제일모직 사업주의 말에 노동자는 “자신들이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낙원이 아니라 가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일에 대한 대가이다. 지옥 같은 작업 환경과 저임금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라고 답한다. 우리는 40여 년의 시간을 민주화운동 속에서 저항과 변혁의 시간을 거쳤으나, 지금은 노동이나 노동운동이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에 와 있다. 그러나 과거에 있던 개별의 투쟁이나 파업의 사례들은 분명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투쟁의 방법이나 관심사는 다르다 하더라도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의 노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현장에서는 바라는 점은 오직 좀더 나은 작업 환경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60년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경험한 커다란 변화들에도 남북한의 화해와 공존, 부의 불공정 분배와 불평등, 세대와 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그리고 환경 위기, 팬데믹 등과 같은 다양한 도전에 여전히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도전에 맞서 노동운동의 전선을 점점 확장하고 그 주제를 시대에 맞게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이 열린 상황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는 지금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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