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변화는 소소한 마음들이 모여 시작된다"
"커다란 변화는 소소한 마음들이 모여 시작된다"
  • 조민조 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1.06.16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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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울산방송 조민조PD.
UBC울산방송 조민조PD.

지난 4월 중순, 환경과 관련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울산 최초로 ‘자원순환가게’를 오픈했다. 자원순환 가게에서는 플라스틱, 유리, 우유팩 등 평소 분리배출하는 재활용품을 깨끗하게 씻어 가지고 오면 그 무게만큼 현금으로 보상해주고 있다.

‘배달용기, 음료병 등을 깨끗하게 씻는 것도 어찌 보면 번거로운 일인데, 그걸 가게까지 직접 들고 오는 수고로움을 과연 시민들이 감수할까?’ 초반에는 그런 걱정을 했다. 현금으로 보상해준다고 하지만 사실 환급금이 그리 크지도 않으니 더욱더 우려가 될 수밖에. 그런데 이게 웬걸. 매일 50kg 정도의 재활용품이 거뜬히 모이고 있다.

평소에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깨끗하게 분리배출하는데 정말 재활용이 될까?’, ‘더럽게 배출한 재활용품들과 섞인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의 이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씻고 헹구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그건 더더욱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자원순환 가게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이곳에 모인 재활용품은 모두 깨끗한 상태로 배출되어 선별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재활용 공정으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가게까지 오는 조금 불편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편이 훨씬 마음이 편한 이들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14kg에 달하는 우유팩을 잘 씻고 펼치고 말려서 가게를 찾은 카페 사장님이 있다. 라떼 음료에는 우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발적으로 인근 유치원과 상의해 우유팩을 수거해오는 동네 엄마들의 모임도 있다. 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함께 줍는 단체는 산에서 캔이며 페트병을 발견하면 그걸 주워 집에서 깨끗하게 씻은 후에 가게로 갖고 오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 새벽마다 맨발로 바닷가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자원순환 가게가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고 함께 참여해주고 있다. 결국 자원순환 가게는 단순한 가게를 넘어,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만나는 곳’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런 사람들 덕분일까. 가게를 오픈한 지 겨우 두 달 남짓이지만 ‘환경운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아, 생각이라기보다는 고정관념에 가까웠음을 고백할 필요가 있겠다. 그동안 ‘환경운동’이라고 하면 어떤 단체에 속해있거나, 어떤 특정 이슈가 있을 때 현장에 참여하거나, 정부의 정책 또는 기업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경을 지키는 것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힘을 키우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활동, 그것이 환경운동이 아닌가.

그런데 가게를 찾는 수많은 우리 주변 이웃들을 보면서, 그리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도 가게를 찾아와 스스로 분리배출을 하는 평범한 이들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일상의 환경운동가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마음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 예로 얼마 전 있었던 ‘화장품 용기 어택’을 들 수 있겠다. 환경부는 2019년 12월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재활용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평소 분리배출 표시를 유심히 보았다면 언젠가부터 ‘재활용 어려움’ 또는 ‘재활용 우수’와 같은 표시가 함께 표기되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재활용이 얼마나 잘되도록 생산되었는지 평가를 받아 4가지 등급(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으로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화장품 용기만은 그 표시 의무에 예외를 둔 것이다.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이 표시되어 있으면 제품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이고, 이는 K-뷰티 수출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들은 전국 제로웨이스트숍을 중심으로 각종 화장품 용기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8,000개 이상의 화장품 용기들이 수거됐고, 시민들은 자발적인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6,000개가 넘는 용기들을 분석했다. 얼마나 잘 재활용되는지를 살펴보니 재활용 가능한 것은 고작 18.7%에 불과하고 나머지 용기들은 화장품을 다 쓰고 나면 ‘예쁜 쓰레기’가 될 뿐이라고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환경부는 화장품 용기에 적용했던 재활용 등급제 예외를 취소했고, 생산기업은 앞으로 재활용이 잘 되는 용기 생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화장품 용기를 수거하는 것부터 시작해 용기들을 일일이 분석하고 대기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든 일은 어느 특정 단체의 활동이 아니었다. 그저 환경을 위해 조그만 것이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여 만들어낸 커다란 움직임이었다.

그동안 혼자 묵묵히 환경을 실천해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렇게 서로를 발견하고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음료를 마실 때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는 것. 배달음식으로 일회용기를 썼지만, 재활용을 위해 열심히 분리배출을 하는 것. 일회용 포장용기를 쓰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손수 다회용기를 챙겨 음식을 포장해오는 것.

이런 소소한 행동들이 결코 보잘 것 없는 행동이 아님을, 아무 소용없는 무의미한 일이 아님을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서로를 몰라봤을 뿐,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위로로 다가왔으리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연대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낼 또 다른 큰 변화의 시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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