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행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민주시민’을 강조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었다. 교육계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의 반발로 해당 법안을 발의한 열두 명의 국회의원이 한 달여 만에 개정법률안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홍익인간 이념을 제외한 ‘학교 민주시민교육촉진법’ 추진이 또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일제강점기 이후 ‘홍익인간’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또다시 수난을 받고 있다. 홍익인간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들은 이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교육지표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홍익인간 재세이화(弘益人間 在世理化)’의 건국이념이야 말로 반만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간 중심적이고 잠재력 넘치는 미래지향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건국이념을 만들라고 해도 이보다 더 높은 이상(理想)을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홍익인간의 수난은 추상적이거나 시대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제대로 된 홍익 교육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입시위주의 ‘스카이 캐슬(SKY Castle)’은 성공을 향해 무한경쟁으로 질주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청소년 자살률과 청소년 흡연율 세계1, 2위를 다투는 가운데에서도 치열한 입시경쟁은 취업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의 늪은 청년의 늪으로 연장된다.

학교는 마땅히 인성을 키우고 인간의 참가치를 실현하는 장(場)이 되어야만 한다. 교육의 목적대로 홍익인간이 길러질 때 많은 사회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학교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연마(硏磨)해야 할 것은 삶의 목적과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적인 소통방법이다. 이때 중심이 되는 것은 양심(良心)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홍익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밝혀 선택의 기준을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두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진정한 목표이다.

제대로 된 홍익인간 교육이 실현되었을 때 무엇이 달라질까?

첫째, 삶의 목적이 성공에서 완성으로 달라진다. 성공은 부와 명예를 쌓는 것이지만 완성은 삶의 목적을 알고 사명을 다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평가이지만, 완성은 양심을 기준으로 한 절대평가이다. 그래서 완성은 경쟁을 하지 않는다. 성공이 선착순 달리기라면 완성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모두의 우승컵이 준비되어 있는 달리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관계의 방식이 지배에서 존중으로 달라진다. 인성이 살아나면 내가 양심을 따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양심을 따를 것임을 알기 때문에 서로 믿고 존중할 수 있다. 기능에 따라 사회적인 역할이 다를 수 있지만 역할의 차이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살아 있는 양심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주의적 이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 이것이 홍익민주주의 교육이다.

셋째, 거래방식이 경쟁에서 화합으로 달라진다. 인성이 살아난 사람은 정직하게 서로의 이익과 신뢰를 추구하게 된다.

넷째, 재산개념이 소유에서 관리로 달라진다. 경제적인 성취 역시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관리했고, 전체의 삶을 어떻게 유익하게 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홍익인간은 자신의 재능과 자원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전체를 이롭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섯째, 이익 개념이 사익에서 공익으로 달라진다. 공적 이익과 충돌하는 사적 이익은 이미 이익이 아니다. 이러한 이익 개념의 변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진 결함을 보완해준다. 이는 지구환경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를 통해 모든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생명을 이치로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공감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인류 보편의 홍익본능을 깨울 때 우리는 새로운 문명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홍익’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을 아우르는 인간 중심의 철학이자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이다. 자칫 종교이념만으로 이 높은 이상을 폄하(貶下)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홍익이야말로 우리의 위대한 자산이자 세계로 나아 갈 글로벌 정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홍익 DNA가 살아 흐르고 있다.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여기는 민족성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금 한류(韓流)를 이끄는 K-POP과 드라마, 영화는 홍익 DNA에서 발현된 영감과 창조력을 바탕으로 한다. 글로벌사이버대학교가 자랑하는 BTS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이유를 분석한 기사를 보았다. 개인사와 사랑, 욕망이 난무하는 외국의 팝송 가사와는 다르게 BTS의 노랫말에는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정신과 인류애가 살아있어 듣는 이들에게 치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브마이셀프(Love myself), 러브유어셀프(Love yourself)의 뿌리는 바로 ‘홍익의 마음’이다.

한편에서는 학교에서 홍익인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편에서는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개의 주장을 하나로 합치면 된다. 아이들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홍익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한다. 이제 만인의 행복과 진정한 복지(福祉)가 실현되는 민주주의, 그리고 새로운 문명 시대를 위해 세상의 설계도를 바꿀 때가 되었다. 모두 1등이 되고 모두 성공할 수는 없지만, 모두 자신의 삶을 완성할 수는 있다. 완성을 위해서는 양심을 찾아야 한다. 양심이 도(道)이고, 깨달음이다. 양심을 회복하고 정보의 주인이 된 사람, 인생에서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바로 홍익인간이다. 코리안 스피릿(Korean Spirit), 홍익정신을 회복하는 교육.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홍익민주시민 교육’이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