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국학 활동을 하며 “늘 신나게 일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기억나지 않아 혼났다.”라는 윤태섭 사무국장. 경북 영천의 소규모 섬유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던 윤 사무국장은 97년 국학강사 교육을 받으면서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삶에서 벗어났다. 새벽에 영천시청 뒤 체육공원에 올라 산책길 중턱에 있는 공터에서 첫 수련지도를 시작했다.

첫날 1명이 따라 하던 것이 일주일이 지나자 20명, 한 달 만에 100여 명이 되어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수련을 하게 되었다. 공원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당시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영천 사무국장이 아침마다 들리는 소리에 망원경을 꺼내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신나게 체조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바로 윤 국장에게 지원금이 나왔다. 영천이 소도시이고 운동시간이 부족한 시장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니 어느새 시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당시 영천 국학활동가 5명이 “우리가 영천을 바꿔보자!”고 마음을 모아 15~16군데에서 국학기공체조를 가르치고 국학을 전했다. 초등학교 2군데만 해도 수련에 참가하는 수가 3천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때 윤 국장의 아내도 함께 새벽 공원지도를 나갔다. “5살 된 딸을 재우고 부부가 함께 나왔다가 아이가 깨어 나간 바람에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죠.”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딸은 아버지를 ‘홍익운동하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부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가 국학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혼자서 했으면 힘들었을 텐데 아내가 도와줘서 큰 힘이 되었죠.” 초창기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으나 현재는 안정권에 들었다고 했다.

그는 경북 사무국장을 맡았을 때 경북도지사기 국학기공대회를 유치했다. 2000년부터는 대구에서 활동을 했다. 2004년과 2006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발발했을 때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위험을 알리고 국학의 필요성을 전했다. 윤 국장이 혼자 받은 서명용지만 몇만 장이 된다고 한다.

현재 대구 국학기공 사무국장과 함께 각종 국학행사에서 기획과 총진행을 맡고 있다. 매년 개천절에는 대구 국학활동가들이 팔공산 천제단에 모여 개천 천제를 지낸다. 그는 천제때 삼족오 떡 아이디어를 내고 모두 함께 만들었다. “마음은 정성을 들이되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처럼 축제로 함께 즐기자는 취지로 기획했는데 반응이 뜨거워서 기뻤습니다.” 가로세로 각 1m의 삼족오 문양을 콩가루로 세밀하게 새긴 원형 떡을 천제에 올린 것이 대구의 언론사마다 보도되었다.  시내에서는 태극기 문양과 축 개천을 새긴 떡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매일 아침마다 회의와 전화, 오후에는 특강 또는 섭외, 저녁때는 전체 활동가들의 일일보고를 취합하며 보완할 부분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며 기획서와 제안서 등을 만드는 바쁜 일정을 보낸다. 그런 중에도 새벽에 공원과 직장 2군데에 수련지도를 나간다. “새벽 시간은 제가 잠을 좀 덜 자면 되는 시간이니까요.”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첫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윤태섭 사무국장은 “대구에 국학강사 100명만 되면 대구에서 국학을 모르는 분이 없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 강사들이 새로운 직업군으로 각광받을 수 있도록 제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