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밥상을 위한 레시피의 원칙
잘 차려진 밥상을 위한 레시피의 원칙
  • 조민조 PD
  • minjocho@naver.com
  • 승인 2021.05.18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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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UBC 울산방송 조민조 PD.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나는 오늘도 이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하고 있다. 끼니때를 놓쳐 작은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해결한 경험, 누구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바쁜 현대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자기 자신에게 이 한마디를 던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말 뒤에 생략된 내용은 분명 ‘밥은 제때 먹어야 하지 않겠니?’, 혹은 ‘제대로 된 밥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니?’ 일 테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밥’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직접 담가 오래 묵힌 된장을 살살 풀어낸 할머니표 된장찌개나 사골을 푹 고아낸 곰탕처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당장 생각이 난다. 각종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내 갓 지은 쌀밥에 비벼 먹는 것도 제대로 차려낸 한 끼가 된다. 묵은지로 끓여낸 김치찌개에 계란 프라이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면 그 또한 넉넉한 식사가 될 수도 있으리라.

이렇게 잘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 하게 되는 생각이라면 ‘맛있겠다’, 혹은 ‘얼른 먹고 싶다’ 정도인 것이 당연하다. 맛을 음미하고 허기진 위장을 채우는 것, 음식은 이렇게 맛있고 배부르게 먹으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어찌 보면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 빠져있었을 수도 있겠다. 바로 ‘이 식재료들은 어디에서, 누구의 손을 거쳐 내 앞에 왔는가?’ 하는 물음이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거나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현대인에게 이런 질문은 좀 낯설지도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음식을 앞에 두고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것은 다르다. 그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어떤 세상을 깨닫게 되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생각은 지난해, ‘제로 웨이스트’를 주제로 다양한 기획을 벌이던 중 포장재 없이 농산물을 담아가는 장터를 기획하면서 시작됐다. 불필요한 포장, 과대 포장 없이 농산물 알맹이를 필요한 만큼만 사가는 장터. 이 장터는 애초에 ‘무포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더랬다.

그런데 판매하는 농산물은 신선하고 친환경적으로 재배된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때는 코로나가 극성이어서 많은 학교가 휴교를 지속하고 있었고, 그 여파로 대부분 학교 급식으로 소비되던 친환경 농산물의 판로가 막혀 농민들의 근심이 이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농민들을 만나 장터를 만들었고 나 또한 그분들이 재배한 양파며, 오이, 감자를 사서 요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어색한 감정이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어색한 감정이라는 것은, 이렇게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 씨앗을 뿌려 길러내고 수확한 농민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그에 이어 이 싱싱하게 잘 자란 식재료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나의 소소한 경험에서 출발한 근본적인 질문, 즉 내 식탁 위의 식재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에 대해 조금 더 넓게 생각해본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초반 7,000만 톤에서 2017년 3억 3,000만 톤으로 5배 가까이 늘어난 육류의 생산과 소비(BBC 보도, 2019년)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많은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소, 돼지, 닭들은 그만큼 더 많이 ‘길러질 필요’가 생겼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이 필요하다. 더 많은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대량으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이 필요해졌다. 생명이 제품화되는 순간이다.

몸집을 키우는 것이 오직 목적이 되기에 동물들의 이동은 극히 제한된다. 감금 틀에 갇히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일까. 분변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이 뚫린 철창에서 단단한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한 채로 평생을 보내기도 한다. 그 ‘평생’이라는 것도 늙어서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고기로서의 가치가 있을 때까지이니, 그것이 도리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감정 과잉이려나.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채식주의자가 아님을 밝힌다. 그러나 밀집 사육으로 육류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다른 생명을 착취하며 만들어진 식재료를 우리는 또 너무 쉽게 남기고, 쉽게 버리지 않는가? 전 세계에서 생산된 식량의 3분의 1이 사람들이 먹지도 않은 채 그냥 버려지는 현실(영국 폐기물·자원 행동 프로그램’(Wrap), 2011년 기준)은 지금 우리의 음식 소비 패턴을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제대로 된 밥’에는 시간과 정성만큼이나 식재료에 대한 고민 또한 들어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먹었을 때 안전한 친환경’을 넘어 어떻게 생산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의 식탁 위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떠올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맛있고 배부르게 먹은 이후에 버려지는 음식물이 없도록 욕심내지 않는 한 그릇이어야 한다. 이것은 ‘먹고 살기 위해 늘 바쁜 우리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선택해야 하는 레시피의 첫 번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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