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땅이야! ”

“아니야, 저게 네 땅이야!”

‘네 땅 내 땅’ 시비가 붙어 한창 절정에 다다를 때가 되면 어디선가 밥 먹으러 오라는 낯익은 목소리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난다. 어릴 적 자주 했던 추억의 ‘땅따먹기 놀이’, 놀이로만 끝날 줄 알았던 추억의 놀이 문화가 성인이 되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다. 어릴 때는 놀다가 어머니가 밥 먹으러 오라고 하면 그 즉시 내려놓고 모두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면 빈 운동장에는 방금 그렸던 선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 땅 따먹기 놀이는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다. 돌아갈 집이 없고 밥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 요즈음 부동산 문제가 이슈인데, 알고 보니 인생에서도, 역사에서도, 땅 따먹기가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류는 ‘신석기 혁명’이라고 일컫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땅의 중요성이 부각이 되었다. 개인 간의 땅 따먹기를 통해 사유재산과 계급이라는 제도가 생겨났고, 부족과 부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일어난 땅 따먹기는 전쟁의 기원이 되었으며, 힘이 지배하는 질서를 확립시켰다.

이렇듯 현실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역사 공부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과거에는 어떠했고, 다른 나라들과 지역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현실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땅이 갖고 있는 역사의 흔적, 유적과 유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역사는 땅의 역사이다. 삶의 터전이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이해하려면 땅을 먼저 이해해야 된다. 인류 역사에서 시대별로 땅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역사의 문을 열 수 있는 중요한 열쇠 하나를 갖게 된 셈이다. 옛 시조 중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땅은 수많은 인물을 낳았고 또 수많은 인물을 품었다. 그때 그 시절의 인물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땅은 기억한다. 땅이 갖고 있는 역사의 흔적, 즉 유적과 유물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알게 되고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박물관에서 다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박물관에 가보면 흥미로운 물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박물관은 유물을 통해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들과 우리는 어떻게 다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름의 가치를 발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박물관에 가면 유물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설문을 먼저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친절한 해설사까지 등장해서 재미있게 해설하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그 주변으로 모여들게 된다. 이제부터는 유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집중하게 된다. 해설문을 보거나 해설사의 설명을 듣게 되면 빠르게 파악은 가능하지만 유물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주입식 교육의 폐단이다. 주입식 교육은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없어져 흥미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 흥미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유물을 제대로 바라보기를 해야 된다. 해설문을 보지 않고 유물을 입체적으로 보고 나라면 무엇에 쓸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 그런 후에 해설문을 보게 되면 그 시대 사람들과 나의 생각의 차이를 알 수 있게 된다. 유물을 보면 먼저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렇게 유물과 대화를 통해 진정한 과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에서처럼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 움직인다면 어떨까.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VR/AR 등의 기술을 사용한다면 마치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위축되어 있긴 하지만 다양한 주제로 박물관에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 생명력을 부여한다면 삶의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시대별로 분류하여 전시된 유물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다. 문화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고 결국 그들의 삶과 사고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 교육이라는 주제 하에 지역과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고, 체험공간을 통해 직접 체험을 해 봄으로써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역사 공부를 할 때 가까운 박물관을 가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에 살아 있게 될 것이다.

지도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우리 역사를 객관화 할 수 있다

역사는 길 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지도를 펴 놓고 공부한다면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주변국까지 이해해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주변국의 이해는 중요하다.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그렇듯이 길이 생겨나고 그 길 위에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길 위에는 스토리가 있고 역사가 숨겨져 있다. 길을 걸으며 오랜 기간 점철되어 있는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다 보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찾을 수 있다. 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지도이다. 길을 찾아갈 때 지도가 있으면 길을 놓치지 않게 해 주고, 목적지까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 가늠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침반과 지도만 주어진다면 목적지까지 더욱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도는 일반도와 주제도를 나눌 수가 있는데, 역사 지도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는 주제도가 될 것이다. 역사 지도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적 사건이나 옛 지명 또는 사회발전의 역사적 과정을 보여 주는 지도이다. 즉 과거 특정 시점의 사건이나 상태를 보여 주는 지도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도 글로만 읽을 경우 사건의 전개과정을 우리나라 중심으로 인식하기가 쉽다. 하지만 역사 지도를 펼쳐 놓고 역사책을 함께 읽으면 이웃 나라까지 포함해 더 넓은 시야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역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관심의 대상을 ‘나’에게서 ‘상대방’으로 넓혀 나갈 때 ‘나’가 더 잘 보일 수 있음을 역사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은 비교 대상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역사 지도는 우리가 역사 이야기를 읽을 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길잡이 역할도 해 준다. 역사 인물이 활동한 공간과 이동경로 등,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공간을 종이 위에 시각적으로 표시함으로써 직접 유적지 답사를 가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역사 지도는 텍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때로는 장황한 설명보다 단 한 장의 역사 지도가 역사적 진실을 더 명확히 전해 주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역사 지도는 역사 공부에 필요한 훌륭한 보조 자료이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 지도가 역사적 사실을 언제나 공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 서술이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 다르듯이 역사 지도도 제작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역사 지도를 마주할 때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가? 라고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합리적 의심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에 지속적으로 흥미를 갖게 해 준다.

역사 유적지 답사는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존재했던 인물과 소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역사적 공간이 유적지 일 것이다. 역사 유적지에 가게 되면 그 유적지와 관련된 인물에 대해서 사전에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모르고 가면 그냥 불상이고 사찰이지만 알고 보면 오래된 불상이고, 역사 깊은 사찰이 되는 것이다. 사전 지식이 있어야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에 있었던 인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간 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끼리도 이루어질 수 있다. 역사적 인물과 소통함으로써 우리는 역사적 진실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다. 역사적 인물과의 소통에는 역사 유적지 답사가 대표적인 것으로 책으로만 읽었던 역사 현장을 가봄으로써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정황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합리적인 추론도 가능하게 된다.

역사서는 서술방식은 달라도 그 지향하는 바는 같다

중국의 3대 사서로는 공자의 『춘추』, 사마천의 『사기』,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있다.

공자의 『춘추』는 역사서라기보다는 경서에 가깝다. 경서 또는 경전은 좋은 말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즉 교훈이나 경계로 삼을 수 있는 말씀인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최초의 기전체 형식의 사서이다. 그 뒤에 등장하는 역사서는 『사기』의 편제를 따르고 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 은 최초의 편년체로 쓴 역사서이다. 『자치통감』은 북송시대에 편찬한 역사서로 후대 황제들에게는 제왕학의 근본이 되었다. 기전체의 기전은 제기(帝紀)와 열전(列傳)을 이르는 말이다. 제기는 황제의 기록이고, 열전은 황제를 제외한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놓은 것이다. 사실 제기도 대상만 다를 뿐 전기와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는 한마디로 위인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우리 사서에는 『삼국사기』가 있다. 편년체는 역사적 사건을 발생일자별로 기록하는 기법이다. 대표적인 역사서가 『조선왕조실록』이다. 모든 역사서는 서술방식은 달라도 역사적 인물, 사건 등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지혜의 보고 임에는 같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 드라마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 가상의 스토리가 가미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화 ‘명량’의 거북선 이야기가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한 후 남은 배라고는 모두 열두 척이었고, 거북선은 없었는데, 영화에서는 거북선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중간에 거북선 수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밤, 허망하게 불타서 결과는 역사와 같아 졌다. 사건의 진행 과정은 창작하고 결과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게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극의 전개를 고조시키기 위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을 살며 차이를 즐기는 마음으로 역사 공부를 권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거 역사가 만든 작품이다. 우리들의 존재를 보아도 그렇다. 우리 부모님들의 위대한 작품이 우리가 아닌가. 과거를 모르면 현재를 진단할 수 없다.

역사란 과거 경험의 총체적인 결정체, 역사를 주도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거나 아니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그 존재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 한민족의 문화적 원형은 상고사인 고조선 시대의 역사에 그 답이 있다.

역사는 규격화된 상자가 아니라 보자기다. 즉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고,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모양과 형태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무게도 달라진다. 보자기에 담는 내용에 따라 다양한 역사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의 보자기에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 취사선택의 기준이 역사관이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차이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 공부를 했으면 한다. 나의 역사와 상대방 역사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만 있다면 역사 공부가 훨씬 더 가치로울 것이다. 또한 역사 공부하는 목적을 단순 지식 습득에 두지 않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바람직한 미래 설계에 둔다면 역사 공부가 한층 더 흥미로울 것이다. 역사를 잘 안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이 또한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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