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교사(서울온곡초등학교)
김진희 교사(서울온곡초등학교)

새 학기를 맞은 우리 반에서 지난 3월은 자기관리 역량을 키우기 위한 습관 바꾸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인 변화와 성장의 목표를 세우는 시간이었다. 한 달에 걸쳐 개인 상담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 저마다 도전목표와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들이 정한 목표는 ‘2021년 우리들의 도전’이라는 표로 만들어 우리 반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서로의 목표를 공유하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먼저, 자기 자신의 목표를 공개함으로써 아이들이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을 더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에게 알리면 그만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친구들의 목표와 실천을 보고 아이들이 다른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길 기대한는 것이다.  혹시 못마땅한 친구가 있을 때 그 친구가 지금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쟤는 왜 저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친구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변화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우리 반 아이들 중에는 집중력이 부족해서 여러 번 설명해주었는데도 못 들었다고 하거나, 금방 한 얘기도 다시 물어보는 아이가 있다. 또 준비물이나 숙제를 자꾸 잊어버려서 늘 빼놓고 오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의 실수나 잘못이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그 아이를 한심하다는 듯이 비난하는 태도로 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부족한 점이 있고, 자기만의 공부 거리가 다 있다는 말로 설명해주면 서로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며칠 전 ‘2021년 우리들의 도전’을 받고 나서 있었던 일이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무척 적극적이어서 수업시간에 서로 발표하려고 하는 편인데 그날도 수업시간에 발표하겠다고 손을 든 사람 너무 많아 누굴 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발표 연습해야 하는 00이 시키세요."라고 말했다. 하나의 작은 사례지만 아이들이 이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그동안 문제가 있다고 늘 지적받아 방어적이었던 아이도 마음 편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변화와 성장의 목표를 알게 되면, 때로는 다른 친구의 공부 거리 덕분에 자신에게 필요한 연습을 더 하게 되고, 결국 서로가 서로의 공부를 도와주는 셈이 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자꾸 비난하는 투로 말을 하는 습관을 가진 아이가 걸핏하면 화를 잘 내는 아이의 공부 거리를 도와주기 위해 부탁의 말투를 연습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모든 아이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고 늘 나 스스로 주문을 걸지만, 아이들의 변화는 교사 혼자의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점점 터득해가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끼리 서로를 돕게 되면 내가 개입할 때보다 훨씬 변화와 성장이 빨라질 때가 많다.

돌아보니 뾰족한 말투로 공격적으로 말하던 지훈(가명)이가 부드러워진 것도 수업에는 관심 없이 벌레를 잡아다 필통에 넣고 놀던 자연친화적인 영석(가명)이와 놀면서부터였다. 친구에 대한 비난과 욕 때문에 걸핏하면 싸우던 영수(가명)도 진석(가명)이가 옆에 붙어서 “너는 왜 그렇게 욕하느냐?”고 말해주면서 자주 웃게 되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달라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변화가 실제로는 함께 한 친구들 덕분이었나 보다.

남아프리카의 반투어로 ‘우분투’라는 인사말이 있다. "당신이 있으니 제가 있습니다."라는 뜻의 인사말이라는데 이 말에는 아프리카의 공동체 정신이 담겨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서로 얽혀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이런 '우분투' 정신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마음이 열려 있고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우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서로의 성장목표를 공개하며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도 이 ‘우분투’의 정신과 같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우리는 지금 함께 공부 중이야."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우리는 저마다 공부 거리를 갖고 매일 성장해가고 있으며 나의 성장이 다른 친구의 성장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함께 나아간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걸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게 되면 나의 성장을 위한 노력이 혼자만의 고군분투가 되지 않고 ‘우분투’가 되어 힘들 때 서로 잡아주고 끌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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