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외신으로 첫 타전함으로써 치열한 독립운동 현장을 세계에 전한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살던 가옥 ‘딜쿠샤’가 삼일절에 시민에게 개방된다.

지난해 12월 복원을 마친 '딜쿠샤'. 3.1운동 독립선언서를 해외에 첫 타전해 한민족의 항일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전한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이던 앨버트 W. 테일러가 거주했던 가옥이다. [사진=서울시]
지난해 12월 복원을 마친 '딜쿠샤'. 3.1운동 독립선언서를 해외에 첫 타전해 한민족의 항일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전한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이던 앨버트 W. 테일러가 거주했던 가옥이다. [사진=서울시]

서울시는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테일러의 붉은 벽돌집 ‘딜쿠샤’의 원형을 복원해 역사기념관으로 개방한다고 25일 밝혔다. 1942년 일제에 의해 테일러가 추방되어 방치된 지 80년 만의 일이다.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산스크리트어로 테일러의 아내 메리 L. 테일러가 붙인 이름이다. 1923년 테일러가 한국에 거주할 당시 건립한 서양식 가옥으로 지하1층 지상 2층으로 이루어졌으며, 2017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되었다.

1896년(고종 3년) 조선에 들어온 테일러는 본래 광산사업가로 평안도 운산 금광 감독관을 지내고 충청도 직산 금광을 운영했다.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보도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특히, 1919년 아내 메리가 아들을 출산할 당시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 숨겨져 있던 3.1운동 독립선언서 사본을 발견하고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 두었다가 타전했다.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딜쿠샤의 재현모습. (위) 1920년대 1층 거실(왼쪽)과 재연된 1층 거실. (아래) 1920년대 2층 거실(왼쪽) 재연된 2층 거실. [사진=서울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딜쿠샤의 재현모습. (위) 1920년대 1층 거실(왼쪽)과 재연된 1층 거실. (아래) 1920년대 2층 거실(왼쪽) 재연된 2층 거실. [사진=서울시]

고증연구를 거쳐 독립운동 역사전시관으로 거듭 태어난 딜쿠샤 전시관은 1920~30년대 국내 서양식 집의 건축기법과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벽돌을 세워서 쌓는 프랑스식 ‘공동벽 쌓기(rat-trap bond)’라는 독특한 조직방식이 적용되었다.

내부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고,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한국 생활상과 앨버트 테이러의 언론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L.테일러가 기증한 유물인 괘종시계, 삼층장, 식탁, 칠보그릇 등도 전시된다.

서울시는 26일 오후 4시 ‘딜쿠샤 전시관’ 개관실을 딜쿠샤 앞마당에서 거행했다. 이 자리에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김봉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그리고 딜쿠샤 유물 기증자 제니퍼 L.테일러, 복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딜쿠샤는 3월 1일부터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 go.kr)’을 통해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해설 관람으로 운영되며, 1일 4회, 1회당 관람가능 인원은 20명이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딜쿠샤 복원은 단순한 하나의 가옥 복원을 넘어 근대 건축물의 복원이자 항일 민족정신의 복원으로서 큰 의미”라며 “삼일절 딜쿠샤 전시관이 시민에게 개방되면 ‘희망, 이상향’이라는 딜쿠샤의 이름대로 희망이 있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값지게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