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현/ 동아대 교수

오늘 한국사회에 대해 열린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아마도 이는 한국인이나 그 문화가 배타적 국수주의 정도로 이해된데 근거하여, 세계화의 시대에 반성을 촉구하는 일련의 충정어린 충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기본적으로 한민족이 추구해 온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상과 ‘우리’의 이념을 국수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로 오해한 데서 기인한 해석과 이해의 오류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한국인의 정서 속에는 생사를 초탈하여 사람의 길을 행하는 ‘살림살이’와 ‘우리’의 의식이 있다. 또 ‘재세이화(在世理化)로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합리적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인류 보편의 가치에 기반 한 열린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그럼에도 단일민족사회로서의 한국이 지닌 혈통적 특징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사례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문화의 핵심에는 타인과 나, 자연과 인간을 구별치 않는 크게 하나 되는 어울림과 조화의 의식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사상이라 부르는 하나 됨의 정신철학이요, 인류 전체가 어느 한 사람 떨어져 있지 않다는 ‘홍익인간’의 이해와 믿음이다.

우리 문화 핵심은 타인과 나,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어울림과 조화의식

사실 한국의 전통사유, 한민족의 문화사상 속에는 다양한 문화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정신이론들이 있다. 삼일(三一)철학, 동인(東人)의식, 풍류도(風流道)와 선(仙) 그리고     (한·韓)과 배달도 등이 있다.  또한 나름의 이론으로 자리 매김한 무신(巫神)교와 민간사상 및 한국화한 외래종교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한민족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민족의 집단의식, 저 밑바닥에 잠재된 무의식적 정신세계의 ‘하나 됨’과 ‘홍익’이란 코드를 모르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언어는 정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일상의 살림살이와 문화에서 한국인의 사상과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언어습관이자, 문화행위의 핵심에 들어 있는 ‘우리’의 사상이다. 한국어의 ‘우리’라고 하는 말은 단순한 나의 복수형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바로 네가 되고 또 내가 바로 그것이 되어’, 분리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속에서 커다란 전체로 하나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오직 ‘우리나라’일 뿐 결코 ‘저희 나라’가 아니다.

나와 네가 만나 ‘나는 나, 너는 너, 남은 남, 너희들은 너희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고 가족이 되며, 또 우리 엄마·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 학교’ ‘우리 사회’가 급기야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세상’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깊은 ‘우리네 삶의 문화의식’이 비롯하는 기점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며, 이는 곧바로 ‘우리가 터전 하는 천지자연’과 ‘살림살이’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 홍익인간은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사람살이, 즉 신(神)의 현실과 선(仙)의 실천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같은 언어의 semantics (의미론) 속에서는 국적과 인종, 민족 등등의 구분조차 사라진다. 마치 용광로와 같은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뜻이요, 한아버지의 가르침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일진대 내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아닌 남들이란 도대체 누구이겠는가.

홍익인간이란, 말 그대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 점에서 홍익인간은 인류사회를 위한 이념맥락에 가장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즉 민족의 자기 한계를 넘어 보편적 세계민으로서의 등장, 그것이야말로 한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이 민족의 진정한 삶의 길인 것이다.

‘우리 하나 됨’이란 커다란 이상(Eros) 앞에서, 개인적 소유와 배타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죽음의 발상(Thanatos)은 무력해진다. 내가 남을 살리고 남들이 나를 살린다. 남이 나를 살리므로 다시 내가 남을 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던져주며, 그렇게 이 지상에서의 삶과 생명을 확장해 간다. 이런 의미에서 홍익이란 결코 어느 한 지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이롭게 한다는 것은 실로 영원한 무한확장을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