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이 최근 발간한 『한국의 근대 형상과 한국학 - 비교 역사의 시각』(김경일 지음)은 한국인에 관한 서술과 기록, 관찰, 가치나 의식, 감정, 이데올로기나 지식 등을 통해 이른바 한국적인 것, 한국다움 등을 설명한다.

한국적인 것, 한국다움이라는 용어의 정점에는 ‘한국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존재했고, 그동안의 한국학 논의는 한국학 자체를 고립된 단위로 이해했으나, 이 책은 대학의 학문 분과 체제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 한국학 실태를 염두에 두고 그 기원과 발전을 비교 역사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이미지=K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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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 형상과 한국학 - 비교 역사의 시각』은 1장 서론, 2장 한국 근대 형상의 기원, 3장 조선학의 형성과 실천, 4장 비교 시각과 자국 연구, 5장 미국학과 미국의 정체성 논쟁, 6장 한국의 전통과 민족, 민중, 7장 근대 주체성의 등장과 전통의 변용, 8장 한국학의 성립과 모색, 9장 맺음말이라는 아홉 개 장으로 구성하였다.

저자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사회사와 사회사상, 역사사회학, 동아시아론 등에 천착하며, 노동운동과 여성문제를 함께 연구한다.

저자는 ‘한국적인 것, 한국학’을 논의하면서 전후 미국에서 발전한 지역연구(Area Studies)를 주요한 비교 기준으로 제시한다. 이는 1960년대 한국학계에 자리 잡은 한국학이 실은 미국에서 정립한 한국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김경일 저, '한국의 근대 형상과 한국학 - 비교 역사의 시각'.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김경일 저, '한국의 근대 형상과 한국학 - 비교 역사의 시각'.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90년대 미국 뉴욕주립대학(SUNY Binghamton) 페르낭 브로델 센터(Fernand Braudel Center)와 프랑스 파리 인문학연구소(Maison des Sciences de L’Homme)에서 지역연구를 접한 이후 그 논의를 한국학으로 연장하여 시간과 공간, 역사와 장소를 교차하면서 한국과 한국인에 관해 서술했다.

콘텐츠의 종류를 막론하고 한국적인 것, 한국다움 등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한국학의 기원과 발전은 한국만의 독자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학은 서구열강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제관계 아래 독자적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특수성 속에서 연구되어 왔다.

『한국의 근대 형상과 한국학 - 비교 역사의 시각』은 이러한 특수성 속에서 일어난 한국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그 과정에서 성립된 여러 한국학의 개념과 변천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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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먼저 19세기 한국과 최초로 조우한 서구인의 한국 인식, 그리고 ‘조선학’의 성립과 발전을 검토한다.

한국적인 것의 기원은 한국인들 자신이 아니라 주로 외부 방문자들에 의한 묘사와 서술에 대한 일종의 반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시기 한국학의 기원에는 여행가, 외교관, 탐험가와 지리학자, 외국인 선교사들로 대표되는 서구의 시각이 있다. 이들은 미국이 해외지역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는 데 공헌한 아마추어 전문가들로,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도약한 지역연구의 배경이 되었다.

이 시기 서구인의 한국 인식을 자민족중심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이들에 의한 한국 인식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지적한다. 아울러 서구인의 이러한 인식이 한국에 그치지 않고 일본이나 중국 등의 논의와 상호작용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의 특수성에 관한 인식 체계가 성립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한국인의 성격과 감정에 대한 인식에서 서구만이 아니라 토착 지식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형성된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인식은 20세기 이후 몇 가지 유형으로 다양하게 논의되는 한편 일본의 한국 인식은 서구와 토착 지식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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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들어오면 한국학의 선구를 이루는 이른바 ‘조선학’이 성립해 발전한다. 시간을 통해 누적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들이 학문의 형태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저에는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부정하고 민족의식을 억압하는 식민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있었지만, 동시에 경제와 정치에서 연이은 좌절을 경험한 민족주의 진영이 문화와 지식의 영역에서 시도한 운동이었다. 민족주의자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일부 참여하면서 다양한 흐름과 지향을 드러냈다. 이 시기 조선학이 일본 제국의 주변에서 수행되었던 사정은 중국이나 러시아, 혹은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학이 가지는 주변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조선학은 중국 중심에서 비롯하여 일본 지배의 역사관과 나아가서 서구중심주의로부터 자신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미국학의 주요 쟁점과 특성으로 본 지역연구로서의 한국학과 국가 정체성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은 해외 각 지역에 관한 지식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미국의 지역연구는 냉전체제와 함께 본격적으로 주변국들에 관한 긴밀한 연구로 탈바꿈했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미국의 지역연구는 미국의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방법론으로 보면 인문학과 사회과학, 개성기술과 법칙정립, 혹은 지역 전문가와 분과 일반론자 사이에 대립 구도가 생겨났으며, 이러한 논쟁에서 지역연구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정립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론이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었다.

반면 지역연구와 상반되는 성격으로 미국적인 것, 미국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로서 미국의 국가 정체성, 미국주의, 혹은 국민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미국학의 일부로서 지역연구의 틀 안에서 수행된 미국의 정체성 연구는 지역 연구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지식 프로젝트였다. 200년 넘는 미국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국가 정체성 논의는 매우 많은 개념과 용어 목록을 산출했고, 19세기 이래 시기마다 내용을 달리하면서 부침을 거듭했다. 미국의 예외주의나 애국주의와 일정한 친연성을 갖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강조는 미국주의 이데올로기로서 특히 냉전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2001년의 9·11 이후에도 다시 지배 가치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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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후 미국의 지역연구는 1960년대 한국에서 한국학이 출현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전후 미국은 자국만의 성격과 시민성을 형성함으로써 냉전이라는 이념 투쟁에서 미국 고유의 이데올로기를 확장하고자 했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다양성’ 등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의 기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족국가로서 가진 권력에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으로 인해 ‘미국만의 가치’로 불렸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한계를 가져왔다. 미국의 정체성과 국민성의 특성에 대한 논의가 궁극에서 미국학 자체의 존립 여부와 딜레마를 초래한 최근의 현실은 한국학의 미래와 비전을 전망하는 유용한 준거 기준을 제공한다.

2021년 한국적인 것을 묻고, 한국학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다

한국학은 대일항쟁기의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족이산, 군사정권의 민족주의 논리 등 거센 시대변화 속에서 그 모습을 달리했다. 미국의 지역연구와 미국학의 기원 그리고 그 발전과정을 복기하고 분석하는 것은 한국만의 역사 맥락에서 벗어나 비교 역사의 관점에서 한국학의 성립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국학 연구는 현재까지도 일본이나 중국·러시아와 미국 등에서의 한국 연구가 그러했듯이, 일정 부분 주변의 위치에서 수행되고 있다. 때문에 타자의 영향력 속에서 끊임없이 한국만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논쟁의 과정을 거쳤다. 이후에도 주체적인 한국만의 정체성 찾기는 일종의 시대과제로서 꾸준히 실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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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한국학은 ‘초국가주의’, ‘다문화사회’와 같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적인 것’의 범위와 본질은 재조정되고 있으며, 한국적인 것의 키워드는 역설적으로 ‘탈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영화 <기생충>과 BTS의 음악이 세계인이 향유하는 콘텐츠로 부상한 것과 같이, 이제 한국적인 것은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닌, 한국에서 기원한 것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한국의 근대 형상과 한국학 - 비교 역사의 시각』은 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한국학 개념에 대한 재정의와 해체를 재촉하는 동시에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지향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