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조선 후기부터 대일항쟁기, 그리고 광복 이후 현재까지 150여 년 동안 급격하게 변모해온 한국 중소도시 10곳의 경관(景觀) 변화를 담은 『한국 중소도시 경관사』를 발간했다.

저자는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홍금수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교수, 김종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이 책에서 다룬 중소도시 경주・공주・나주・강릉・충주・수원・춘천・군산・익산・김천 10곳은 경관 변화가 사람들의 삶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으며, 그 풍경이 품은 의미와 시간, 목적은 무엇인지 살폈다.

한국 중소도시 경관사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 중소도시 경관사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중소도시 10곳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먼저 과거 경관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관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현장답사가 가능한 지역을 선정했다. 따라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배제했고, 동시에 북한 지역은 제외했다. 더불어 최근 150여 년간의 도시경관의 변화상을 추적했기 때문에 조선시대와 대일항쟁기에 조성된 도시를 선택했으며, 이에 따라 광복 이후에 도시로 성장한 지역들은 배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연구 대상 선정 기준은 대일항쟁기 대축척 도시지도의 존재 유무이다. 이 책은 지도를 통해 세밀한 도시경관의 복원을 시도했으므로 지도가 존재하는 지역만 분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추려진 도시 25곳 가운데, 지역별 안배, 도시의 역사・기능・입지 등의 특징을 감안하여 선정했다.

소멸해가는 중소도시에 대한 관심 촉구

‘경관’이란 눈에 보이는 경치, 풍경을 의미하는 지리학 용어로, 한 지역의 자연환경과 그 지역을 차지하고 이용해온 인간의 역사를 포함하는 단어이다. 이 책의 주제인 ‘경관사景觀史)’는 바로 경관이 형성되고 변화한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또한 지리학에서 일반적으로 ‘중소도시’란 대개 인구규모가 5만 명 이상에서 100만 명(일부 학자는 30만 명까지만)까지의 도시를 말한다. 이 책에서 지칭한 중소도시는 단순히 인구 규모로만 분류한 것이 아니라 대도시에 상대되는 용어로 사용했다. 지금까지 학술 연구와 사회적 관심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편중되었다. 이 책에서는 소멸되어 가는 중소도시에 대한 연구과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지도로 한국 근현대 중소도시를 살피다

지도는 각종 기호를 사용하여 일정한 비율로 줄인 제작 당시의 지역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면, 지역의 변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조선 후기부터 대일항쟁기, 그리고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아 있는 수많은 지도는 농촌과 비교해 급격하게 변모한 도시공간을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 지도는 ‘지리학의 독특한 언어’이기 때문에 지리학자들은 지도를 이용하여 지역과 공간을 읽고 해석하며 표현한다. 지역과 공간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의사소통하는 데에 다른 어떤 수단보다 지도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 데도 지도는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지도로 지역을 읽는 데 익숙한 역사지리학 연구자들이 최근 150여 년간의 한국 중소도시의 경관 변화를 지도를 통해 살펴보려는 시도를 담았다. 역사지리는 지도를 통해 역사를 조망한 것인 동시에 우리의 생활 터전과 삶의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학문 분야이다.

이 책의 핵심 연구 자료이자 도구는 지도이다. 조선시대 군현지도와 대일항쟁기부터 현재까지의 지형도, 도시지도를 수집하여 이용했다. 아울러 보조 자료로 다양한 문헌자료도 활용했다. 지도 분석을 통해 각 도시의 경관 변화 양상을 파악한 후, 지리지, 통계자료, 공공문서, 보고서, 신문, 잡지 등을 활용하여 그 변화와 관련되는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현장 답사를 통해 위치 비정, 사진 촬영 등을 했다.

중소도시의 지역성을 경관사를 통해 만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방에 위치한 도시의 인구가 대도시권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지방 도시 인구 감소 및 쇠퇴의 조짐이 나타났고, 2000년대 이러한 현상이 강화되었다. 최근 통계청은 지난해 수도권 인구가 2596만 명으로 비수도권 인구(2582만 명)를 넘어섰다는 추산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1970년 인구통계 집계 이후 최초이다. 이제 지방 도시들은 생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수도권과 몇몇 대도시를 중심으로 최근 집값 상승의 기세가 무섭지만, 중심에서 조그만 벗어나면 인구 소멸과 쇠퇴에 직면해 있는 지방의 중소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중소도시의 이러한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중소도시의 기원을 살펴보면 전통시대의 지방행정중심지였거나, 대일항쟁기의 해안의 항구도시,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시 기능을 부여받은 도시 등이 있다. 이러한 다수의 중소도시는 인구가 정체・감소하고, 이에 따라 구도심 지역이 중심지 기능을 상실하고 쇠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도시의 경관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에 남아 있는 역사문화경관을 보존・복원하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지만, 이 같은 사업은 개별 건축물이나 시설을 보존・복원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있어 지역 활성화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비슷비슷한 풍경으로 오해할 수 있는 중소도시 각각의 고유한 지역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