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 시코쿠 순례길에 버금가는 역사적 환경적 가치를 지닌 길이 우리나라에 있다. 조선 최초의 왕릉인 정릉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서울과 경기, 강원도를 잇는 600km 총 6개 코스의 조선 왕릉 길에 올라보자.

문화사학자이자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불러온 ‘도보 답사’의 선구자 신정일 작가가 새해를 맞아 신간 《왕릉 가는 길》을 출간했다.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 작가의 신간《왕릉가는 길》이 출간되었다. [사진=문화재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 작가의 신간《왕릉가는 길》이 출간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신 작가는 2009년 6월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10년 간 능제 복원과 역사 문화 환경 복원을 통해 2020년 가을 개방된 ‘조선 왕릉 순례길’을 신간을 통해 소개하고 각 왕릉에 얽힌 수많은 역사이야기를 풀었다.

518년 간 조선을 다스렸던 조선 왕조에는 27명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 왕을 포함해 42기의 능이 있고, 14기의 원, 64기의 묘가 있다. 임금과 왕후의 무덤은 ‘능’, 왕세자나 왕세자빈, 왕위에 오른 왕의 친부모, 선왕의 후궁의 무덥은 ‘원’이라 하며, 왕자와 공주, 옹주, 후궁, 연산군과 광해군 등 폐위된 왕의 무덤은 ‘묘’라고 불린다.

신정일 작가는 왕릉을 한 곳 한곳 직접 답사하며 130컷의 사진과 왕실이야기를 담았다. 한반도 최고의 명당이 어떻게 선정되었고 거기 잠든 수많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손들에게 어떤 가슴 찡한 사연이 담겨 있을까?

신간 《왕릉 가는 길》 속 왕릉에 얽힌 몇몇 이야기를 살펴보자. 경기도 여주시 북성면 기슭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英陵에 대해 풍수가들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땅에 피는 아름다운 꽃, 즉 명당 중의 명당이라 부른다. 지관들은 “이 능의 덕으로 조선 왕조의 국운이 100년 더 연장되었다.”고 말한다.

영릉의 모습은 모란꽃이 절반 정도 피어 있는 목단반개형牧丹半開形, 봉황이 날개를 펴서 알을 품고 있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용이 조산祖山을 돌아본다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라고도 한다.

세종의 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과 현덕왕후가 묻힌 경기도 안산의 현릉에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신벌神罰’에 대한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전한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자마자 세상을 떴고 안산의 목내동 소릉昭陵에 모셨다. 그러나 세조가 단종을 없애자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를 꾸짖고 ‘나도 너의 자식을 살려 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세조는 스무 살의 동궁을 잃었고 다음 세자인 예종 또한 즉위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격노한 세조가 소릉을 파헤치고자 했으나 능에서 여인의 곡성이 들렸고, 기어코 관을 들어 올리려 하자 고약한 냄새가 풍기며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관을 쪼개려하자 관이 벌떡 일어섰으며, 세조가 관을 불사라 버리려 하자 소나기가 퍼부어 결국 바닷물에 집어던졌다고 한다. 그 관은 소릉 옆 바닷가에 떠밀려 닿은 뒤 그곳에 우물이 생겨 ‘관우물’이라고 불렀다. 표류하던 관은 양화나루에 닿았고 한 농부가 밤중에 몰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날 밤 농부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앞일을 일러주어 농부는 가세가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비운의 왕 크고 아름다운 무덤에 들다(경종, 선의왕후-의릉)’, ‘성군을 꿈꿨으나 스물세 살에 쓰러지다(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경릉)’, ‘만고의 외로운 혼이 누운 곳(단종-장릉)’ 등 왕릉을 통해 조선왕조의 명장면과 하이라이트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