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가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해 조국의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밝혀 임시정부를 비롯한 침체된 항일운동을 되살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1931년 12월 31일에 찍은 이봉창 의사 사진. 이 사진은 상해 중국어 신문 '신보'와 영자지 '차이나 프레스'에 실렸다. [사진=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누리집 갈무리]
1931년 12월 31일에 찍은 이봉창 의사 사진. 이 사진은 상해 중국어 신문 '신보'와 영자지 '차이나 프레스'에 실렸다. [사진=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누리집 갈무리]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8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서울 용산구)에서 ‘제89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을 거행한다.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번 기념식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만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헌화 및 분향, 묵념 순으로 간소하게 치러진다.

이봉창 의사(1901. 8.10.~1932. 10. 10)는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1년여 준비를 했다.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2월 말 동경에 도착했다.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으나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앞에서 폭발해 일왕폭살 계획은 안타깝게 실패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봉창 의사는 같은해 9월 30일 도쿄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1930년대 의열 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