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박영사는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국빈방문을 수행한 17명이 아웅산 묘소 참배 중 사망한 사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를 발간했다. 저자는 최병효 전 대사.

‘버마 암살 폭발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버마(현재의 미얀마)의 수도 랭군(현재의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발생한 테러 사건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국빈방문을 수행한 서석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 등 17명이 1983년 10월9일 아웅산묘소 참배 중 사망한 사건은 세계외교사에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최병효 저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표지. [사진제공=박영사]
최병효 저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표지. [사진제공=박영사]

 

이 책은 외무부의 서남아지역 담당 서기관으로서 순방계획부터 사건발생 직후 현지에서의 외교적 조치, 사건조사와 북한에 대한 응징업무까지 2년간 사건을 실무적으로 맡았던 유일한 공직자인 저자가 이 사건의 실체와 좀 더 광범한 외교적 배경에 관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바치는 보고서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전두환의 버마방문 지시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과 테러범들을 싣고 랑군에 기항한 북한공작선 동건애국호 감시업무를 우리 측이 어떻게 소홀하게 하였는지, 왜 우리 경호당국이 아웅산묘소를 사전 점검을 하지 않았는지 등 많은 의문을 외교문서를 근거로 상세히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거나 오해되었던 사건의 전말에 관한 많은 의문을 해소하였다.

전두환은 정권 유지를 위해, 김정일은 세습왕조체제 유지를 위해, 독재체제는 끊임없이 체제 내부와 외부의 긴장과 무고한 희생을 필요로 하였다. 그 와중의 희생자가 버마에서 순국한 17명의 외교사절이었다. 희생자들은 순국자로 포장되어 버린 채 그들이 왜 순국해야 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고 지적하며, 저자는 잘못된 정치적 리더십에 의한 탐욕과 소모적 외교 전쟁이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일상적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되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순국자가 더 이상 발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아웅산과 네윈 등 랑군대학 출신들로 구성된 버마독립30인의 동지들을 훈련하여 버마의 대영국 무장독립투쟁을 지원한 후 버마를 식민통치한 관계로 버마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사건 발생 후 한국 측에 정확한 정보 제공과 외교적 협력을 제공함으로써 버마정부가 사건의 실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 필요성과 북핵 위협 상황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의 북핵문제와 한반도 통일에 관한 기본입장을 감안한 우리 외교의 향방에 대해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저자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서 더 나아가 사건을 전후한 국내외정세를 분석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순국으로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버마암살폭발사건의 외교안보적 교훈은 무엇인가?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국내외적 요인은 무엇인가?

국가테러와 동맹이란 무엇인가?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들의 충성심의 실체는 무엇인가?

외교에서 명분과 국가이익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가?

한국외교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저자는 또 권력에는 무한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공직자들이 다시 한 번 깨우치는 데 이 책이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 중임을 우회적으로 지적한다.

양곤에 있는 “아웅산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는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비석 뒤에 새겨진 설명문은 “추모비는 한국과 미얀마의 우정과 화합을 상징하며, 평화와 상생의 길을 열어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문구로 끝난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 새겨진 신탁과도 같은 이 불가사의한 문구는 미얀마를 사이에 둔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삼각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언젠가 이 신탁의 의미가 풀림으로써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