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청소년기가 더 무모해도 되고, 더 실패하고 실수해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 있어도 해야 할 강한 이유가 한 가지 있다면 꼭 도전했으면 해요.”

완전자유학년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졸업생 김현수 학생. 지난해 크리스마스경 리처드블랜드컬리지에서 찍은 사진. [사진=본인 제공]
완전자유학년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졸업생 김현수 학생. 지난해 크리스마스경 리처드블랜드컬리지에서 찍은 사진. [사진=본인 제공]

미국 리처드블랜드 컬리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김현수(22) 학생은 낮과 밤이 바뀐 생활 중이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지난 3월 귀국한 현수 씨는 미국 시차에 맞춰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자서 오후 3~4시경 일과를 시작한다.

지난 14일 인터뷰에서 근황을 묻자 “귀국 후 3개월이 지났을 때부터 왜 해 뜰 때 일어나고 해진 후 자야하는지 알게 되었죠. 피곤했는데 많이 적응했어요.(하하) 현재 국내에서 안전하게 제가 공부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그의 미국 친구들 중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있고 지인 중 확진자가 없는 친구가 없다고 한다.

김현수 씨는 지난해 초 유학을 결정하고 대학선택과 향후 편입계획까지 스스로 세워 준비했다. “일상 속 청년들의 회화가 익숙지 않았는데 열심히 배웠어요. 국제동아리와 합창단에 들어가서 사귄 친구들 덕분에 영어가 빨리 늘었죠, 함께 여행도 가고 대학생으로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았어요. 미국 대학생들은 과제, 발표, 시험 등 고등학교 때보다 해야 할 공부양이 훨씬 많아요. 전공과목인 컴퓨터, 물리, 수학 등을 제외하고 영어용어가 많은 종교, 경제, 미술사, 고전 문학 등을 공부하는 게 힘들지만 동시에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그는 잘 적응했고 장학금도 받고 있다.

대학이 버지니아 주에서 있는데 아시아 학생에 대한 인종차별이 다소 있지만 잘 극복했다. “영어가 서툴면 더 무시하는 것 같아요. 차별을 하는 아이들이 문제인데, 제가 당당하면 그렇게 못하더라고요. 모국어가 아닌데 서툰 게 당연하잖아요. 언어의 차이를 줄이고자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되죠.”

김현수 씨는 지난해 리처드블랜드 컬리지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하며 국제동아리, 합창단 활동 등으로 친구들을 사귀며 유학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사진=본인 제공]
김현수 씨는 지난해 리처드블랜드 컬리지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하며 국제동아리, 합창단 활동 등으로 친구들을 사귀며 유학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사진=본인 제공]

현수 씨가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새롭게 부딪히는 일들을 도전으로 받아들여 신나게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운 원천이 있다고 한다. “완전자유학년제로 운영되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서 1년 간 제 꿈을 위해 마음껏 경험을 쌓았어요.”

중학생 때 그는 전교 1~2위를 다투는 우등생이었다. “어떤 목표가 있기보다 경쟁심, 성취욕 같은 게 공부의 동기였죠. 성적이 잘 나오면 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죠. 그런데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때마침 벤자민학교 1기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제 시간을 투자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어요.”

기대가 컸던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빠의 반대가 컸어요. 제가 1년 간 어떤 활동을 할지, 왜 가야 하는지 A4지 3장 분량으로 편지를 썼고 제가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도 전교 2등을 했어요. 아빠는 제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할 수 없이 허락하셨죠. 대신 벤자민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복학한다는 조건이었죠.”

김현수 씨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입학 초기에는 제주도 자전거 일주와 국토종주, 마라톤 등 체력을 키우는 도전을 많이 했다. [사진=본인 제공]
김현수 씨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입학 초기에는 제주도 자전거 일주와 국토종주, 마라톤 등 체력을 키우는 도전을 많이 했다. [사진=본인 제공]

벤자민학교 입학 후 첫 도전들은 제주도 자전거 일주, 국토종주, 마라톤 등 신체적 한계를 넘는 활동들이었다. 마라톤은 세 번 도전해 마지막에는 하프코스까지 완주했다. “항상 공부만 하던 터라 공부를 시작하면 벤자민학교에 온 이유가 없어겠더라고요. 제가 타고난 운동신경이 없어서 달리기를 하면 꼴찌를 하곤 해서 신체활동을 싫어하고 피했는데 한계에 부딪혀보고 넘어서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일단 몸이 건강해지면서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도전하고 나면 ‘이것도 했는데 못할 게 뭐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필리핀으로 해외봉사를 가서 필리핀 친구들과 2주간 동고동락하며 편견 없이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법도 배웠죠.”

현수는 벤자민학교 1년 간 수많은 멘토를 만났다. 벤자민학교 멘토로 청년모험가 멘토들에게 도전할 용기, 체력단련에 대한 호기심을 얻었고, 뇌과학분야 연구원 멘토를 만나 실험에 참가하기도 했다. 과학수사에 관심이 있어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강연에 참가 후 직접 찾아가 이메일을 받고 메일을 통해 멘토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행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사진작가, 승무원, 여행관련 분야 종사자 등을 만나고 강연을 들으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위)국회에서 열린 청소년 인성스피치 대회에 출전해 우수상을 받았다. (아래) 여행커뮤니티 여행대학에서 최연소 회원으로 활동했다. [사진=본인 제공]
(위)국회에서 열린 청소년 인성스피치 대회에 출전해 우수상을 받았다. (아래) 여행커뮤니티 여행대학에서 최연소 회원으로 활동했다. [사진=본인 제공]

“제가 만난 분들은 좀더 개방적이고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죠. 공통점은 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었고,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자 했어요. 저도 빨리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청소년으로는 돕고 싶어도 영향력이 크지 않아서요. 어느 순간 책이 그리워지더군요. 제가 배우는 걸 즐거워하고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걸 알았죠. 제가 공부할 이유가 분명해진 거죠.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대학 진학을 결정했어요.”

고등학교 복학 후 동급생들과 한 살 차이가 났지만 현수가 거리낌이 없으니 학우들도 친구로 어울렸다. 과학과 수학분야에서 두드러졌고 영재학급과 동아리에서 로봇코딩 활동을 열심히 했다.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체육부장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진로상담이나 고민상담을 많이 해주었다. “친구들이 하는 고민을 먼저 해본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폭넓게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왔죠. 벤자민학교 생활을 통해 제게 내적인 중심이 생겼어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는 하지만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이 모든 판단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죠.”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글로벌 기업과 스타트업 회사들이 많고 훨씬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미국유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학문적으로도 더 발달되어있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여러 도전을 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나중에 창업을 할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준비기간 짧아 우선 2년제 칼리지에 진학해 4년제 공과대학으로 편입하고자 적합한 학교를 선택했죠.”

현수 씨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그의 선택과 판단을 신뢰했다. “부모님는 벤자민학교 이후 제가 뭘 해도 잘 해낼 거라고 믿어주세요.”

유학 중에 세금보고나 은행 업무 등 생활하면서 새롭게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현수 씨도 대학교의 추천으로 재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보장번호를 받아야 했다. “언어가 서툴러서 한국친구들 하고만 어울리는 친구도 있고,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는 게 두렵고 기댈 데가 없어 우울증에 걸리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는 무언가 시작할 때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커요. 벤자민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해서 좋았어요. 두려운 것이 생기면 피하기보다 더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예요.

벤자민학교에서 배운 뇌교육 B.O.S 법칙 중 ‘굿뉴스가 굿브레인을 만든다’는 게 있어요.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져도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그 일은 결국 저를 발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영어가 서툴러도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다른 친구의 방을 찾아가서 게임이나 요리를 제안하면서 사귀었죠. 또 ‘환경을 디자인하라’는 BOS법칙도 생활에 적용해서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환경을 만들어갔어요.”

김현수 씨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당시 여성가족부 주관 해외봉사로 필리핀을 다녀오며 편견 없이 다른 문화를 수용하며 모두가 지구시민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사진=본인 제공]
김현수 씨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당시 여성가족부 주관 해외봉사로 필리핀을 다녀오며 편견 없이 다른 문화를 수용하며 모두가 지구시민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는 자신의 꿈과 미래 계획에 관해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는 세대일지 몰라요. 제 꿈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죠. 현재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해서 사물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인터넷은 이 시대에 가장 쉽고 빠르게 가장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두주자로서 소외계층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김현수 씨는 “벤자민학교에서의 1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죠. 그 시간의 가치는 본인에게 달려 있어요.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걸 모르겠다고 너무 자책하거나 조바심을 갖지 말았으면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대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두려워말고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여러 분야를 천천히 알아가다 보면 분명 자신의 꿈과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겁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