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찾고 나의 꿈을 이루는 인생설계를 한다”
“나의 이름을 찾고 나의 꿈을 이루는 인생설계를 한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0.12.08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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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빈둥지증후군을 넘어 꿈을 실현해가는 김도연 씨

김도연(53) 씨는 올해 10월에 김간란에서 이름을 개명했다. “이젠 어른스러운 이름으로 바꿨죠. 할아버지가 붙여주셨던 그 이름을 비로소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갱년기와 빈둥지증후군을 겪던 김도연 씨는
갱년기와 빈둥지증후군을 겪던 김도연 씨는 "브레인명상을 통해 활력을 찾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인생설계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오빠 셋이 태어난 후 아버지가 군대에 갔을 때 태어난 딸을 위해 ‘명숙’이란 이름을 주고자 했는데, 어머니가 출생신고하기 전, 할아버지가 이미 신고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야 자신의 이름이 명숙이가 아니라 간란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간란이란 이름을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한 동네에 사셨는데 간이 좋지 않아 돌아가실 무렵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아 뵌 적이 있어요. 너무나 왜소하게 마른 할아버지께서 손을 내미셨는데 전 어머니 뒤로 숨었죠. 어린 마음에 죽음이 무서웠던 것 같아요. 돌아가신 후 너무나 미안했고, 이름이 할아버지의 유산 같았죠.”

도연 씨가 50세가 되던 해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갱년기와 함께 찾아온 ‘빈둥지 증후군’으로 마음이 허전했다. 게다가 난소에 물혹이 생기면서 출혈이 심했다. 그때 문득 ‘이러다 갑자기 허무하게 삶을 정리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때 할아버지 생각과 함께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유일한 딸에게 애정이 깊었다. 도연 씨를 앞에서 직접 칭찬하는 법은 없었지만 동네 사람에게 똑똑하고 착한 딸 자랑을 많이 하셨다. 그녀가 결혼했을 때도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많이 우셨다. 그런데 1년 후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농로작업을 하다가 축대가 무너져 돌아가셨다. “제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죠.”

다행히 도연 씨는 수술을 받아 회복은 했으나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우선 몸부터 챙기자는 생각에 운동을 생각했다. “헬스를 해본 적이 있지만 오래하지 못하더라고요. 어떤 운동을 해야 오래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출근 길 버스 안에서 ‘호흡명상’이라는 글귀가 눈에 띠었죠.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두 딸이 홍보전단을 가져오더니 ‘엄마! 이거 해봐’라고 내밀더군요. ‘아, 그래 이거’ 더 망설이지 않고 친구랑 둘이서 단월드 홍제센터를 찾아갔죠.”

김도연 씨는
김도연 씨는 "브레인 명상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제게 주는 휴식이죠. 그리고 심성교육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꼭 가야 할 인생의무교육"이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기체조는 동작이 과하지 않아 따라 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땀을 흘리며 체조를 마친 후 편안하게 호흡을 하는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나에게 주는 휴식이었죠. 회사일로 조금 늦었을 때도 절명상을 하고서 혼자 명상하는 시간도 좋았고 원장님이 지도해주시는 동작을 해보면서 몸이 변화하는 게 느껴지는 게 좋았죠. 회원들과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하하호호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도 좋았어요.”

김도연 씨에게 심성교육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은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심성교육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꼭 가야 할 인생의무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방향을 잡게 되었으니까요. 교육 중 거울을 마주보고 제 눈을 응시하면서 ‘엄청 애쓰고 살았구나.’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엄청 울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나이팅게일》책을 읽으며 다리가 아픈 오빠를 걱정하는 부모님을 보고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꿈을 꾸었죠. 고등학교 진학할 때는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생각에 은행원이 되어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고요. 결혼 후에는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어 방문교사 활동을 했죠. 한 번도 제 자신에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더군요. 제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첫 걸음이었어요.”

심성교육에서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부모님을 마음으로 느껴보게 되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났죠. 열심히만 살다가 누리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가 안타까웠죠. 갑자기 여의어서 하지 못했던 ‘감사했다’는 말을 전했죠. 어머니의 힘든 세월도 공감하게 되고 제게 꿋꿋함을 물려주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죠.”

교육 후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게 되었다. “딸들과는 포옹하며 사랑한다는 말이 자연스러운데 남편은 좀 어색해하더군요.(하하)”

김도연 씨는 지난해 'BHP봉사단' 서울강북1지구 서대문구 봉사단장을 맡아 셀프힐링건강법 'BHP'를 많은 주민들에게 전했다. [사진=본인 제공]
김도연 씨는 지난해 'BHP봉사단' 서울강북1지구 서대문구 봉사단장을 맡아 셀프힐링건강법 'BHP'를 많은 주민들에게 전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는 PBM(파워브레인메소드) 교육과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높아졌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파워브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모두가 연결된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더군요. 그 순간 ‘가치 있는 삶이 힘들지라도 나는 계속 가겠구나.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삶을 산다면 마지막 순간에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라는 걸 알았죠.”

교육이후 김도연 씨에게는 모두가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이해가지 않을 일도 없게 되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으면서 통찰력이 생기니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 상대를 깊이 이해하게 되니 대화의 방법도 달라졌다.

“전에는 사회생활을 할 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무조건 상대에게 맞추었다면 지금은 핵심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중심에서 어긋나지 않는 것인지 먼저 생각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가족들에게도 제 생각이나 판단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장이 되었죠. ‘이건 어때?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방식으로 바뀌니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고 서로 존중하게 되니 집안 분위기가 환해졌어요.”

그는 지난해 여름 셀프힐링 건강법을 전하는 ‘BHP봉사단’으로 활동했다. 강북1지구 서대문구 봉사단장을 맡아 주민들을 찾아갔다. 한 경로당에 노인회장께 미리 연락을 하고 혼자 찾아갔으나 노인회장은 깜빡 잊고 출타했고 몇몇 어르신이 평상에 앉아 계셨다.

“연두색 봉사단 조끼를 입은 것만으로도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할머니들께 BHP힐링법을 시범 보여드리니 무척 좋아하셨어요. 길을 지나던 어르신들도 하나 둘 참여했고, 그 반응에 용기가 생겨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다는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죠.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며 저를 소개하고 BHP건강법을 전하니 누워계셨던 분들도 ‘나도, 나도’하시면서 제게 머리와 손을 내미셨죠. 가슴이 벅찼습니다. 전철 안에서 BHP를 해드린 적도 있어요.”

국학기공강사 자격을 취득한 도연 씨는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동네 주부들을 모아 수련장을 개설할 생각이다. “동네 곳곳에서 브레인명상과 국학기공을 체험시켜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형편 상 포기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작정입니다. 글로벌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전하고자 합니다.”

김도연 씨는
김도연 씨는 "50대 이후의 삶은 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삶이죠. 지금이 제게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라며 "각자 자신의 인생설계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멘토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도연 씨는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책에서 ‘후반기 인생을 위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단락의 ‘내 삶에 더 이상 후회나 여한이 없다. 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았고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라는 문구가 가슴에 남았다고 한다.

그는 “저도 그런 삶을 살고 나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눈을 감고 싶습니다. 20대까지는 부모가 원하는 삶을, 40대까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로 열심히 살았죠. 이제 50대의 이후의 삶은 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제게 아주 중요한 시기이죠. 60대는 날아다니며 세상과 어울려 살고 있겠네요.

누구나 지금 바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사회가 정한 기준대로 주위를 의식한 채 그냥 살고 있지 않은지, 내 안의 내가 행복한지, 나를 사랑하는 삶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인지 답을 찾았으면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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