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교사(서울온곡초등학교)
김진희 교사(서울온곡초등학교)

“선생님,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왜, 하기 싫으니?” “아뇨, 너무 어려워요.” “못해도 괜찮아, 그냥 한 번 너의 뇌를 믿고 해봐.” 얼마 전 우리 반 아이와 주고받은 말이다.

‘너의 뇌를 믿어라.’라는 말은 우리 뇌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니 도전해보라는 말이다. 이걸 조금 더 풀어서 말해보면, 지금은 아직 잘하지 못해도 여러 번 하다 보면, 그리고 잘 될 때까지 끝까지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정말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할 것이다. 어쩌면 현실을 모르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도전해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못한다고 믿고 있는 일이 정말 그런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혹시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못한다고 믿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한 번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전에 교사들의 연구모임인 뇌교육연구회 소속 선생님이 근무하던 대안학교를 방문했다가 교실 벽에 걸려있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할 수 있다, 없다는 내가 정한다.”

어떤 일을 그만 포기하기로 할 때 주변의 상황 탓, 다른 사람 탓, 타고난 능력 부족 탓 등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핑계거리들을 만들어내는가? 적어도 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 나 자신이라는 점을 똑바로 바라보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그러니 정말 그만둘지 아니면 다시 한 번 해볼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이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면 외부 탓을 하며 쉽게 포기했던 선택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 반 아이들과 도전하기 활동으로 뇌교육 프로그램인 HSP-Gym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HSP-Gym은 힘이 드는 동작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몸의 한계 체험을 통해 자기 마음의 한계를 넘어가 보는 활동이다. 양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다리를 벌리고 서서 눈을 감고 시작할 때는 이게 뭐 그리 힘들까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는 뻐근해지고 양팔은 묵직한 추처럼 서서히 아래로 늘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우리의 함께 정한 목표는 30분 버티기였다. 아이들은 서서히 떨려오는 팔과 어깨의 고통을 참아가며 힘들게 1분, 1분을 버텨가고 있었다. 20분이 넘기 시작하면서 자세가 흔들리고 포기하고 싶은 표정의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지금 우리 모두 무척 힘들다. 여기서 그만 둘 지 끝까지 할지 선택은 여러분 자신에게 달렸다. 어떤 선택도 상관없다. 하지만 어떤 선택이 나 자신을 조금 더 뿌듯하게 만들까? 나에 대한 믿음을 만들까? 여러분의 뇌에게 스스로 증명해 보여줘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니 아이들이 한 번 더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보였다.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땀이 맺힌 얼굴로 진지하게 버티고 있었다. 드디어 30분이 다 되어가고 교실이 몸의 고통과 싸우는 아이들의 열기로 후끈해졌을 때, 문득 아이들에게 진짜 자신이 선택의 주체라는 걸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5분 연장을 제안했다.

“지금 이미 우리가 정한 시간은 다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여러분은 멋지게 도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분을 더 도전해 보자. 그리고 이건 정말 선택이다. 이 5분은 어느 누구도 아닌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해보는 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단 한 명도 팔을 내리지 않고 모두 5분을 더 도전했던 것이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HSP-Gym을 끝낸 아이들은 힘들고 지친 게 아니라 더 활기차고 힘이 넘쳐 보였다. 도전을 끝내고 자신에 대해 뿌듯함으로 환하게 빛나던 아이들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 누구나 성장을 원하고 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초임교사 시절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의 말은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또는 “하기 싫어요.”였다. 이럴 때 혼을 내며 엄하게 하라고 강요해야 하는지, 아니면 뭐라고 설득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다 나중엔 ‘교사가 모든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 모든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는 없는 거야.’라는 말로 나를 한계지었다.

내가 계획한 활동에 잘 참여를 안 한다거나 여전히 바뀌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면 ‘이 아이는 나하고 안 맞는가 봐.’하며 어느 정도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나의 변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된 지금은 아이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 활동도 귀찮은 상태인지, 아니면 아이가 자신은 못한다고 생각되어 아예 실패를 피해버리려고 하는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성장에 대한 의지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먼저 성장의 마음을 낼 만큼 충분한 에너지가 몸에 채워져야 하고, 의지는 경험과 연습을 통해 단단해진다. 그래서 “안 하면 안 돼요?”라는 말에 담긴 메시지를 해석하려고 애쓴다.

이제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아이가 ‘한 번 해볼까?’라는 마음을 먹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번 먹은 그 마음을 끝까지 지켜나가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반에서 몸의 에너지를 채우는 신체활동을 하는 것도, 한계에 도전해보는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도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성장은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포기하느냐 도전하느냐의 문제이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