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국학원은 11월 20일(금) 오후 8시 온라인으로 독립운동 특강 ‘대구얼세미나’를 개최한다. [자료=대구국학원]
대구국학원은 11월 20일(금) 오후 8시 온라인으로 독립운동 특강 ‘대구얼세미나’를 개최한다. [자료=대구국학원]

대구국학원은 11월 20일(금) 오후 8시 온라인으로 독립운동 특강 ‘대구얼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날 매일신문 정인열 논설위원은 '대구독립운동'을 주제로 대일항쟁기 한국인 올가미 ‘법’을 담당한 대구복심법원, 한국 제1의 감옥 서대문형무소 제2의 감옥 대구형무소 등과 관련된 역사와 대구의 정신을 들려준다.

"대구독립운동사" 저자 정인열 매일신문 논설위원.
"대구독립운동사" 저자 정인열 매일신문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은 "역사 속 영욕의 인물들"(2016), "경상도 연어의 서울이야기"(2016)를 비롯하여 "대구독립운동사"(2018)'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2020)를 펴냈다.

을사늑약으로 서울에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고 대구에는 1906년 그 산하기관인 대구이사청이 설치되는 등 일제의 국권침탈이 가속화하였다. 1910년 이사청을 폐지하여 대구군을 다시 대구부로 바꾸었고, 부제는 1945년까지 이어졌다.

1907년 대구에서는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곧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1915년 윤상태 등은 영남지역의 독립투사들과 함께 조선국권회복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1919년 3·1만세운동 등 대구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27년에는 신간회 대구지회를 결정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광복회에도 참여했던 장진홍 선생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일으켰다. 1930년대 이후에도 학생들이 비밀결사운동을 계속 전개하여, 대구는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한 지속적인 항일 투쟁을 한 고장이었다.

대구국학원은 10월에는 김지욱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을 초청해  ‘국채보상운동사’에 관한 내용으로 대구얼세미나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