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계 이주민들의 일본고대사회 정착 및 동화과정, 삶과 의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보서의 역주본이 발간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고대 씨족 계보서 《신찬성씨록》 역주본을 총 3권 2,200쪽 분량으로 출간했다.

《신찬성씨록》은 일본고대 씨족들의 본관, 사적, 조상의 유래 등 실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8세기 말 헤이안시대를 연 환무桓武천왕의 칙명으로 개시되어 815년에 완성되었다. 고대 일본 왕경과 그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1,182씨의 씨족지를 집성한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고대 씨족 계보서 《신찬성씨록》 역주본을 총 3권 2,200쪽 분량으로 출간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고대 씨족 계보서 《신찬성씨록》 역주본을 총 3권 2,200쪽 분량으로 출간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신찬성씨록》에 등재된 씨족 중 한국계는 기왕에 편재된 163씨와 이번에 새로 발굴한 150씨를 함하면 313씨로 전체의 26퍼센트에 달한다. 이중 백제계가 202씨, 고구려계가 52씨, 신라계가 48씨, 가야계가 10씨, 고조선계가 1씨 등이다. 백제계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양국의 역사적인 인적교류와 우호관계에 기인한다.

한반도계 씨족 중 주목할 점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화조신(和朝臣)이다. 이 씨족은 《신찬성씨록》 편찬을 시작한 환무천황의 외척으로 당시 도래계 씨족의 최고 위치에 있었다. 또한 우경 제번에 기록된 씨족은 백제 의자왕을 출자로 하는 백제왕씨로부터 시작한다. 의자왕의 아들 선광의 후손들로 도래씨족 중 특별지위를 부여받은 씨족이다.

《신찬성씨록》은 성격상 족보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조상의 사적을 기록하고 특히 천황가 봉사의 연원, 유래를 기록해 정치성이 강한 계보서이다. 《일본서기》 편찬 100여년 만에 중앙거주자의 씨족지를 집성한 것으로, 계보장악을 통해 천황제 국가의 존속과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전체 구성은 ▲천황가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씨족들을 황별皇別 ▲일본신화 속 신들의 후예씨족을 신별神別 ▲외국계인 도래계 씨족의 후손들을 제번諸蕃으로 수록했다. 일본왕권을 구성하는 씨족들로 상당수는 현실의 천황에 봉사하는 관인층이다.

이 계보서의 핵심은 본종가와의 관계이다. 본종의 정점에는 천황가의 황조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이 있어 천황가의 존엄과 정통성을 주장하고 그 신성성에 의해 천황제 국가를 지배해 나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신별 후손을 자처하는 씨족은 대부분 기족층으로 청황가의 최고본존과 분리할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전체의 7할에 육박하는 황별과 신별의 씨족들은 천황제 국가의 지배계층이자 혈연적 의제적 동족집단으로 강한 연대의식을 공유한다.

제번을 구성하는 씨족들은 외국계로서 천황의 지배질서 안에 편입된 신민임을 공인받은 집단이다. 이들은 왕권의 중심부에 본관을 갖는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관료사회에 포섭되고 적응해 갈 수 있었던 요인은 외국계가 갖는 지식과 기술의 힘이었고 가업의 계승을 통해 번영해 나갔다. 아울러 일본고대왕권이 출신을 불문하고 인재를 영입해 활용하는 관인운용체계의 일면도 엿보인다.

《신찬성씨록》은 한반도계 이주민들이 일본고대사회에서 어떻게 정착해 가는지, 2세 3세들의 삶과 의식은 어떠했는지, 동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사료이다. 또한 도래인들의 활동과 역할을 통해 왜곡된 귀화인사관을 극복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