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될 때까지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올해 2월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린 제1426차 정기 수요시위의 문구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반인륜범죄인 전시 성폭력문제, 일본군 성노예제로 인식하는 가운데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그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시도들이 계속 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은 일제침탈사 바로알기 교양서 시리즈 중 하나로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저자인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 박정애 연구위원이 활동가이자 연구자로서 해온 오랜 고민이 담겨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제침탈사 바로알기 교양서 시리즈 중 하나로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를 발간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일제침탈사 바로알기 교양서 시리즈 중 하나로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를 발간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올해는 위안부운동 30주년, 내년은 최초 증언자인 김학순 할머니 증언 30주년이 되는 시기이다. 이 시점에서 박정애 연구위원은 그동안 연구방향과 방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사회적‧정치적으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놓고 수많은 소모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피해 당사자의 진술과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라며 “생존자인 할머니들께 계속 피해사실을 진술하게 하고 그 증언의 빈틈을 노려 공격하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피해입증을 묻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피해자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도 했다.

박 위원은 “이 문제는 전시 성폭력 문제인데 성폭력 사건에서 입증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할머니들을 직접 인터뷰한 경험을 하면서 피해 진술로 정확한 사실 구성이 어려운 경우를 접했다고 한다.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저자 동북아역사재단 박정애 연구위원. [사진=본인 제공]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저자 동북아역사재단 박정애 연구위원. [사진=본인 제공]

그는 “식민지하에서 여성은 배움에서 멀어져 있었고, 정보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피해자 중에는 권옥순 할머니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장소, 사건들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공포 속에 통제당하며 제대로 된 정보를 듣지 못한 피해자들이 자신의 관계망 안에서 듣고 짐작한 이야기를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정말 폭력적인 짓”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하나의 사례로 “할머니들이 자신이 어디에서 피해를 당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통제된 상황에서 군수품처럼 실려 중국 남부나 동남아를 갈 때 중간기착기로 대만을 들르는데 우연히 들은 ‘대만’이란 말만 기억해서 자신이 대만에 있었다고 증언한 분도 있다. 이런 분에게 ‘네가 간 곳이 대만이 맞느냐?’고 계속 질문하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지나오면서 사회변화 속에서 증언이 조금씩 바뀌는 경우도 있다. 박정애 연구위원은 “황성순 할머니를 3차례 면담하면서 ‘일본군에게 수많은 구타를 당했다.’는 증언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저명한 일본인 남자교수를 만났을 때는 ‘일본사람들도 불쌍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면담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다. 할머니께서 상대방의 듣기를 가늠하면서 또 다른 증언을 했다고 이전 진술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생존 피해자가 열여섯 분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스트 생존자’시대를 걱정한다. 역으로 지금까지 오로지 생존자에게 의존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피해자에게 증언에 의존하는 방식을 고수해야 할까?

박정애 위원은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키워드를 ‘위안부’, ‘위안소’등으로 한정하지 말고 확장해야 한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동원하고 끌고 간 사람이 있고, 위안소를 개설한 사람, 위안소를 허가한 사람, 위안소를 이용한 사람, 현지에서 위안소를 목격한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연루되어 있다. 그 관련 자료들을 다 찾아서 피해상황을 구성하는 게 우리들의 몫”이라고 했다.

이번에 출간한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은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피해자 곁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피해자의 가족, 위안부운동 활동가 등 피해자 곁에서 계속 갈등하고 번뇌하고 고통 받고 서로 위로 받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 지난 30여 년간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계속 진실을 찾으려 한 노력들 ▲돌아가신 피해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가족은 피해자를 불쌍하게 보면서도 원망하고 번뇌하고 죄책감이 들거나 트라우마와 한으로 남기도 한다. 이러한 전시 성폭력의 후유증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박정애 연구위원은 “할머니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되지 않기 위해 일본군‘위안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국가 권력과 사회시스템 속에서 성착취 재생산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일본군‘위안부’피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N번방 사건’과 같은 성착취 문제에서 시민 동의를 얻는 수준으로 처벌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