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인들의 생계를 돕고 학교를 세워 한량없는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페치카(러시아어 난로) 최’라고 불렸던 최재형 선생. 올해 순국 100주기를 맞았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30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제 100주기 추모식’을 개최한다.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선생의 순국일인 4월 7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최재형 선생. 지난해 11월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 소개되며 최재형 선생의 위대한 독립운동 업적이 국민의 뇌리에 다시 조명되었다. [사진=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영상 갈무리]
최재형 선생. 지난해 11월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 소개되며 최재형 선생의 위대한 독립운동 업적이 국민의 뇌리에 다시 조명되었다. [사진=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영상 갈무리]

추모식에는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최재형 선생의 4대손인 최일리야 씨 등 50여 명이 참석하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추모사, 장학증서 수여, 최재형의 노래 순으로 진행된다.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한인사회의 대표적 지도자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러시아 정부가 지방정부 시장으로 추천할 만큼 내외에서 모두 존경받던 인물이다. 현재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선생기념과 1층 입구에는 그의 별명을 상징하는 ‘페치카’가 놓여 있다.

이날 추모식에 이어 ‘최재형 상’시상식이 열린다. 올해 첫 번째 진행하는 것이다. 지난해 3.1문화재단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3.1문화상 특별상(상금 5천만 원)을 최재형 가문에 수여했다. 이 상금을 최재형 선생 후손과 기념사업회가 합의를 통해 기념사업회가 위탁받아 이번 ‘최재형 상’으로 시상하게 되었다.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15일까지 추천자를 접수해 선정위원회를 개최했으며, 최종 수상자로 본상에 (주)에스디바이오센서 조영식 회장이 선정되었다. 조 회장은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들을 위해 한글 야학인‘(사)너머’의 초대 이사장으로 재정적 후원과 고려인 복지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단체상은 러시아 우수리스크 민족학교를 지원하는 등 평소 재외동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영산그룹(회장 박종범)이 선정되었다. 특별활동가 상에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고려인민족학교를 이끈 김 발레리아 교장이 선정되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1858~1920)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 사람으로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1904년 러일 전쟁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해 국내에서 오는 애국지사들을 만지하고 국권회복운동의 중추기구를 만들고자 ‘동의회同議會’를 조직해 교포들의 단결과 애국심 고취에 진력하며 항일무장단체로 육성했다. 또한 1909년에 안중근 등 동지 14명과 일제 침략의 앞잡이들을 모두 암살하기로 맹약하고 왼손 무명지를 끊어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하는데 장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18년 말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고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게 되자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은 앞으로의 투쟁방법과 계획을 논의하였다.

노령의 한인 지도자들은 재차 무장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하였는데 그는 러시아에 귀화한 한인군인을 규합하는 책임을 맡았다. 1919년 11월 그는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 본부를 둔 독립단을 조직해 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한 ‘4월 참변’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동년 5월 22일 상해에서 순국 추도회를 거행하였다. 당시 참석자는 이동휘·안창호 등 3백여 명에 이르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