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첫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 등 2종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하기로 하였다.

두 건 다 대일항쟁기라는 혹독한 시련 아래 우리말을 지켜낸 국민적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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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학술적 가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자문회의 등에서 국가등록문화재를 대상으로 이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말모이 원고’ 등 총 9건의 문화재가 지정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어 올해 조사해왔으며, 그 첫 결실로 이번에 우리말과 관련된 국가등록문화재 2종이 보물 지정 예고 대상으로 결정된 것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이다.

주시경(周時經)은 대일항쟁기 우리말과 한글의 전문적 이론 연구와 후진 양성으로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힘쓴 한글학자. 한글문법을 최초로 정립하였고, 철자법, 한자어의 순화, 한글 풀어쓰기 등 혁신적 활동을 했다. 학교와 강습소에서 한글운동을 펼쳐 많은 제자를 길렀으며, 오늘날의 국어학이 넓게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저서로 『국문문법』(1905), 『대한국어문법』(1906), 『국문연구』(1909), 『말의 소리』(1914) 등이 있다.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사전을 의미를 하는 순우리말이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하였다.

조선광문회는 191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학술고전간행단체. 최남선(崔南善) 등이 고문헌의 보존과 반포, 고문화의 선양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07년 이래 최남선은 출판사업을 통한 민족의 계몽과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신문관(新文館)을 창설, 『대한역사』, 『대한지지(大韓地誌)』, 『외국지지』 등의 도서와 잡지 『소년』을 발간하였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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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하여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한다.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썼고 ‘알기’, ‘본문’, ‘찾기’, ‘자획찾기’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알기’는 범례에 해당하는 6개 사항을 표시하여 괄호 속에 품사를 제시하였으며, 뜻풀이는 한글 또는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하였다. ‘찾기’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하였고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의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각각 ‘+’, ‘×’를 붙여 구분하였다.

‘말모이 원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러한 체제가 한 눈에 보일 수 있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 형태의 판식(板式)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치 옛것과 새것이 혼합된 듯, 고서(古書)의 판심제(版心題)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 라는 서명을 새겼고,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되어 있다.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1916년 김두봉이 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문법책인『조선말본』을 간행했으나,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간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되었다.

‘말모이 원고’는 ▲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 ▲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 ▲ 단순한 사전 출판용 원고가 아니라 대일항쟁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의의가 매우 크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929~1942년에 이르는 13년 동안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사)한글학회(8책), 독립기념관(5책), 개인(1책) 등 총 3개 소장처에 분산되어 있다. 특히, 개인 소장본은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故)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이 소장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범례」와 「ㄱ」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로서,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발굴해 함께 지정 예고하게 되었다.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사)한글학회 소장본은 총 12책이나, 지정조사 때 자료를 검토한 결과, 4책은 광복 후〜1950년대 작성된 여벌 원고(전사본)로 확인되어, 보물 지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국가등록문화재로 유지하기로 했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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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원고’가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라면, 이 ‘조선말 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 수정, 교열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이를 바탕으로 1957년 ‘큰 사전’(6권)이 완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의 간행은 ‘원고’를 바탕으로 1947년 10월 9일 제1권을 발행한 이후 2권은 1949년 5월 5일, 3권은 1950년 6월 1일, 4권은 1957년 8월 30일, 5권은 1957년 6월 30일, 6권은 1957년 10월 9일 등 모두 6권으로 발행됨. 이때 1〜2권은 ‘조선말 큰 사전’, 3〜6권은 ‘큰 사전’이라 서명을 붙였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자 결과물로서 국어사적 가치가 있지만,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들뿐 아니라 전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의 염원이 담겨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29년 10월 31일, 이념을 망라해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결성해 사전편찬 사업을 시작하였고, 영친왕(英親王)이 후원금 1,000원(현재 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하였으며, 각지의 민초(民草)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오는 등 계층과 신분을 뛰어넘어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 맞선 범국민적 움직임이 밑거름이 되었다.

사전편찬위원은 다음과 같다.(괄호 속 인물은 1931년에 증원된 위원) : 권덕규, 김법린, (김병규), (김상호), (김윤경), (김철두), 로기정, (명도석), 박승빈, 방정환, (백남준), 신명균, 안재홍, 유억겸, (윤병호), 이광수, 이극로, (이만규), 이병기, 이상춘, (이순탁), 이시목, (이우식), 이윤재, 이중건, (이형재), (이희승), 장지영, 정열모, 정인보, (조만식), 주요한, 최두선, 최현배.

 국민의 한글자료 기증 사례를 보면 1929년 이상춘(당시 개성 송도고등학교 교사)이 ‘조선말 큰 사전’ 편찬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어학회에 자신이 모은 9만여 한글낱말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독립을 준비했던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로서, ▲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실체이므로 ▲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 상징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 학술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국민에게 그 의의를 널리 알리고, 지속적으로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말모이 원고」 등 2종 4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혁신의 하나로 우리 문화재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