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학 정립과 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어 중 현대 한국학 연구와 심화에 필수적인 학술용어 18개를 우선 선정해, 그 용어의 사용례, 변천, 그리고 관련 논쟁 등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한국학 학술용어』(전우용 외 지음)를 발간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학 정립과 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어 중 현대 한국학 연구와 심화에 필수적인 학술용어 18개를 우선 선정해, 그 용어의 사용례, 변천, 그리고 관련 논쟁 등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한국학 학술용어』(전우용 외 지음)를 발간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서구 학계는 핵심적인 학술용어들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오래전부터 공구서(Guidebook, Handbook, Annual Review 등)로 축적해온 지식 모델을 갖고 있고, 한국 인문학에서도 학문적 훈련을 거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필독서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학계는 주요 용어 사전과 백과사전들에서 개념들이 일부 정리되어 있으나, 단편적인 서술에 그칠 뿐 아니라 양적으로 증대되는 연구 성과를 제대로 정리하고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학술용어에 대한 정리는 학문적 성취의 현 수준을 가늠하는 것을 넘어 한국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학 연구는 서구 학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연이 확장되고 있으나, 주요 용어에 대한 이해나 사용례가 상이함으로써 학문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학술용어에 대한 학술적 점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학 정립과 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어 중 현대 한국학 연구와 심화에 필수적인 학술용어 18개를 우선 선정해, 그 용어의 사용례, 변천, 그리고 관련 논쟁 등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한국학 학술용어』(전우용 외 지음)를 발간했다.

학술분야에 사용하는 주요 용어의 개념 정의와 역사, 연구 및 용어 사용과 관련된 쟁점 등을 진단하는 것은 현재 한국학이 도달한 학문적 수준을 진단하고 향후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 중 하나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분야별 전문가들로 필진 및 검토자를 구성하여 주요 학술용어를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학계의 연구수준을 종합적으로 진단함으로써 향후 연구방향까지 제시했다.

한국학은 전통과 근대라는 두 가지 경험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1) 자국학의 토양 위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학문적 개념들의 존재와 의의를 확인하고, 2) 근대 학문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학술적인 개념들이 어떻게 변용되었으며, 3) 서구 학문에서 유래한 개념들이 정확한 이해나 비판 없이 사용되는 현실을 반성함으로써 개념을 재구성하고 분과학문 간의 소통과 국제학계에서 한국학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이라 하겠다.

한국학이 속한 여러 학문 분야의 학술용어들이 어떠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쳤고 연구 성과에 활용되었는지 정리함으로써 국내외 한국학 전공자들의 학문적 소통에 기여하고 한국학의 학문적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

기존 한국학 관련 학술용어 설명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국내외의 학문적 성취를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진단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학 연구의 근간이 되는 학술용어의 설명을 통한 표준적 지침서이자 입문서 역할이 가능하다.

이 책에서 선정한 학술용어는 우선,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해명하는데 핵심 키워드가 되는 학술용어를 해설하고 그 용어가 가진 특별한 의미와 가치, 전통과 근대 경험을 반영하여 학문적 보편성을 가진 개념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조명했다. 또한 기존 단편적 설명에서 벗어나 국내외의 학문적 성취를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진단하고, 연구 방법론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여 새로운 연구방법 개발을 도모했다.

한 예로 ‘근대’라는 용어를 보자.

‘근대’ 개념의 한국적 의미: ‘근대’라는 말은 사회와 역사라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졌다기보다는 근현대 이후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외연이 넓혀지는 쪽으로 진화해온 대표적인 근대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근대’가 근대적 용어라는 표현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표현이 함축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매우 심오하고 복잡하다. 더구나 ‘근대’가 ‘혁명’, ‘자유’, ‘사회’, ‘개인’, ‘인권’ 등과 같은 다른 근대 용어 또는 근대 번역어보다 더 심한 굴곡과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게 느껴진다. 서구어 ‘modernus’ 또는 ‘modern’의 번역어 ‘근대’는 일제강점기 한국에 1920년을 전후로 일본에서 들어왔을 당시에는 서구의 근대적 생활 및 학문, 예술의 양식 또는 근대사회 자체를 뜻하는 양식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서구의 신식 문물을 상징하는 용어였지만, 외양(外樣)의 화려함이 아니라 정신의 새로움을 중시하던 지식인들에 의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개념으로 쓰였다. 그러다 학계, 특히 역사학계에서 해방 이후 1960년을 전후해서 ‘근세’를 대체하거나 아니면 병행하는 시대구분 용어로 활용되었던 이 개념은 1960~1970년대에는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개발독재 또는 압축 성장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으며, 1990~2000년대에는 ‘식민지 근대화’ 담론이 전개되면서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특히 한국학에서의 근대는, 그것이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이 되었든, 서구보다 앞선 국민국가 형성론이 되었든, 우리 자신의 근대, 즉 ‘한국적 근대’의 뿌리를 찾는 작업과 맞물려 연구되거나 개념화되었다. 그러나 근대가 아무리 여러 차례 역사적 변곡점을 겪으면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 개념이 본래 갖고 있던 내용과 의미까지 사라지거나 변형되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국가 및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산업혁명을 통해 강화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시민혁명을 통해 마련된, 적어도 법 앞에서 누구나 평등한 자유로운 시민사회와 의사소통구조, 부르주아 사회의 등장으로 형성된 상업문화 또는 대중문화의 환경, 종교의 세속화, 과학기술의 혁신과 진보 등 근대의 원초적 의미 내용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이러한 의미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소멸하거나 변질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제2의 또는 제3의 의미들이 계속 덧붙여지면서 확대되거나 풍부해져 왔다고 보는 편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