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네르바스쿨’로 불리는 완전자유학년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학생들이 꼭 해보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걸어서 국토대장정 또는 자전거 국토종주이다.

2014년 개교이후 1기부터 지난해 6기까지 선배들은 ‘꼭 한번은 해야 할 프로젝트’라고 후배에게 권한다. 4박 5일, 6박 7일 또는 9박 10일 등 과정을 통해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자신과 싸워가면서 앞으로 더 큰 성장을 이뤄나갈 밑바탕을 만들기 때문이다.

코로나19시대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하고 숙박, 취사를 함께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국토종주를 할지 벤자민학교 대전학습관 학생들은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

공동프로젝트를 위한 화상회의에서 김동현(18) 학생은 개인적으로 올해 초 새벽에 자전거로 대전 곳곳을 다녔던 경험을 말하며 “새벽에 대전 곳곳을 걸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모두의 호응 속에 ‘우리동네 100km’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학생들은 새벽에 출발해 대전 곳곳을 탐방하는 '우리동네 100km프로젝트'로 국토대장정을 대신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학생들은 새벽에 출발해 대전 곳곳을 탐방하는 '우리동네 100km프로젝트'로 국토대장정을 대신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대전학습관 최경미 관장은 “국토종주는 아이들에게 큰 용기가 필요하고 남다른 의미가 있죠. 머리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경험이 되니까요. 코로나19상황이라 어렵지 않겠나 했는데 아이들이 방법을 창조해내더군요.”라고 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한 학생은 김동현(18), 백인혁(19), 김성규(18), 김용덕(18), 신지섭(18), 박규현(17), 이예진(19), 장예지(19) 등 총 8명이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서대전 네거리에 모였다. 그날 조장을 맡은 학생들은 사방으로 새로운 길과 휴식장소, 식사 할 곳 등 세부사항을 미리 조사해 이끌었다. 걷는 동안 모두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했다.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매일 25km씩 새로운 길을 찾았고 최경미 관장은 반환점까지만 동행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제 역할은 최소로 줄였습니다. 리더가 뒤따르는 아이들의 상태를 미처 살피지 못할 때 상황을 전할 뿐 해결방법은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찾아내죠.

최선의 길 대신 조금 힘든 차선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위험하지 않는 한 제 의견을 내지 않아요. 제가 참견을 한다면 이 아이들은 아마 저를 프로젝트에 끼워주지도 않을 겁니다.(하하) 반환점에서 혼자 돌아오는 건 그날 경험할 기쁨을 아이들끼리 만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마지막 날 할머니 상喪을 당한 백인혁 학생을 제외하고 모든 학생들이 대전 곳곳을 누비며 우리동네 걷기 100km를 완주했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성장을 했을까? 지난 9월 11일 화상회의시스템에서 이들을 만났다.

'우리동네 100km'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학생들은 매일 교대로 리더를 맡아 이끌었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리더를 따르는 학생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우리동네 100km'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학생들은 매일 교대로 리더를 맡아 이끌었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리더를 따르는 학생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 ‘우리동네 100km'프로젝트를 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던 일이나 의미있는 에피소드는 무엇인지.

(김동현) 제가 첫날 리더를 맡았는데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하천변을 따라 걷는데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친구들이 더위에 허덕였어요. 올해 초 자전거로 가던 경로를 선택했는데 당시에는 춥고 새벽인데다 자전거로 1시간 거리여서 문제가 안 되었죠. 하지만, 새벽에 출발했어도 걷다보면 햇볕이 뜨거운 대낮이 되니 친구들이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도 불평하지 않고 따라주었어요. 관장선생님도 중간에 ‘친구들을 한번 살펴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주시고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성규) 제가 지도를 보고 걷는 게 서툴러 길을 좀 헤맸는데 동현이 형이 옆에서 도와주고 뒤에서는 인혁 형이랑 지섭이가 지친 친구들을 밀어주고 격려해주었어요.

(백인혁) 저도 첫날이 좀 힘들었는데 체력이 좋은 제가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행렬의 맨 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돕다보니 보람이 있었어요.

(신지섭) 햇볕이 뜨거워 고생을 좀 했지만 옥계교를 보고 모두 신나서 뛰어가 다리아래 그늘에서 쉴 때 너무나 좋았어요. 처음 걸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다 같이 걸으니까 할 수 있었어요. 한명 한명은 약하지만 단합하면 강하다는 걸 배웠죠. 걸으면서 문득 정신이 차려지고 2일차부터는 걸을수록 힘이 났어요. 걷는 것과 뇌가 연관성이 있다고 하는데 경험할 수 있었어요.

(이예진) 저는 더위를 먹고 지쳐서 중도에 포기할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가방을 끌어주고 으싸으싸 하며 응원하는 데 그만둘 수가 없었죠. 나름 체력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부족하더군요. 좀 더 체력을 키워야겠어요.

(김용덕) 4일차 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빠지게 된 인혁이 형 대신 리더를 맡았어요. 고대하던 프로젝트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었고 친구들도 점점 더 일찍 왔어요. 이젠 4시간만 자면 거뜬하게 활동할 수 있어요.

(박규현) 전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일반 고등학교 다닐 때 아침에 못 일어나서 등교를 포기한 적도 있었거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2일차 리더를 맡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장예지) 저는 3일차 리더를 맡았는데 친구들이 다들 협력해 주었죠. 뒤처지는 친구들이 있으면 중간에 기다려주고, 체력이 부족한 친구들을 앞세워서 균형을 맞추니까 쉽게 해낼 수 있었어요.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매일 새벽에 출발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매일 새벽에 출발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 4일 간 대전 곳곳을 다녀보면서 우리동네 ‘대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는지.

(신지섭) 저는 고향이 전라도이고 올해 대전으로 왔어요. 대전을 별다른 특징은 없고 큰 도시라고만 생각했는데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산길도 나오고 자연환경도 좋았어요. 저는 계룡산 계곡의 멋진 풍경이 기억이 남습니다.

(이예진) 저도 울산에서 왔는데 대전은 시설이 잘 갖춰진 깨끗한 도시라고만 여겼죠. 둘째 날 반환점인 월드컵경기장 뒤편에서 예정했던 햄버거 가게가 너무나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다보니 24시간 김밥집을 찾으며 시골길을 걸었던 게 생각나요.

(김용덕) 이제는 버스를 타고 지나다가도 저희가 걸었던 골목을 보면 그때 기억이 나고 대전이 남다르게 여겨집니다.

▶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본인이 성장했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지

(김성규) 제가 리더가 된 건 처음이었어요. 방향감을 잃어 어디로 가야할지, 어느 시점에서 쉴지 빠르게 판단이 서지 않았죠. 리더인데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민폐가 될까봐 혼자 고민하기도 했죠. 친구들이 말없이 저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었을 때 생소했지만 고마웠습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거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저는 뇌교육 B.O.S(Brain Operating System:뇌활용) 5법칙 중 ‘정신 차려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했어요. 감정이나 생각에 빠지지 말고 현 상황을 바로 알아차리기 위해 정신을 차리면 방법은 얼마든지 나왔어요. 나를 지지해주고 끌어주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걸 배웠죠. 친구들에게 믿음직스럽고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장예지) 저는 B.O.S법칙 중 ‘굿뉴스가 굿브레인을 만든다’는 법칙을 체험했어요. 힘들다고 짜증을 내기보다 지금 이 순간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대전을 이렇게 걸어보는 건 다시 하지 못할 경험이란 것에 감사했어요. 긍정에서 시작해 긍정으로 끝난다고 매일 주문처럼 외우고 걸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죠.

(신지섭) 버스나 지하철이 안다니는 시간에 이동하다보니 시간과 공간의 주인공이 되어 어떤 프로젝트라도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걸 체험했다는 게 의미 있습니다.

(백인혁) 프로젝트하는 동안 힘들어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와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고마웠어요. 전에는 제가 힘이 넘쳐서 상대방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나섰는데 이번에는 제가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동생들이 다들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예진) 이번에 저를 믿어주는 힘이 생겼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제가 선택했지만 ‘어떻게 리더를 하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라고 의심했거든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해낸다는 걸 믿을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동네 100km'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학생들은 대전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우리동네 100km'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학생들은 대전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 최경미 관장님은 학생들과 함께 걸으며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요?

- 새벽시간 걷는 자유로움과 부지런함을 선택한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마지막 날은 산행을 위해 새벽에 버스 차고지에 도착해 종점까지 버스여행을 했는데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만들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리더를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도와줘’ ‘부탁할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로 하고, 실수해도 'OK'라 말하자고 규칙을 정했죠. 교대로 리더를 맡다보니 리더마다 성격이 각기 달라 따르는 아이들의 반응도 날마다 달라서 지켜보면서 즐거웠습니다.

선생님이 힘듦을 공감하며 함께 걷는다는 걸 아이들이 고마워하더군요. 중간 중간 저를 챙기면서 절로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교류되는 기쁨을 느끼며 교사로서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팀워크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 먼저인지, 친구에게 어떤 배려를 해야 할지 걸으며 이야기를 해나가며 멋지게 성장하더군요. 4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싸워 이겨낸 아이들이 정말 기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