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희 교수 저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만권당). [사진=김경아 기자]
정경희 교수 저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만권당). [사진=김경아 기자]

 

은폐된 옛 제단에서 시작하는 배달국 맥족사 연구를 통해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태동을 밝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정경희 교수는 유물ㆍ유적 자료가 풍부한 요서 지역 상고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중국 측의 이상한 조치를 발견했다. 중국 측이 1999년 통화(通化) 만발발자(萬發撥子) 옛 제단의 발굴을 마지막으로 돌연 옛 제단 유적들을 은폐하고 관련 연구를 모두 폐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알게 되었다. 옛 제단이 어떤 곳인가? 1980년대에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이래 요서 지역은 중국문화의 발원지이자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발원지로서 변함없는 위상을 누려왔다. 중국 측은 1990년대에 10여 년에 걸쳐 요동 지역 특히 백두산 서편 통화 지역을 중심으로 맥족(한민족의 주족)의 옛 제단군을 조사ㆍ발굴했고,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의 시각에 따라 옛 제단군의 존재를 크게 부각하여  집중적으로 발굴조사를 하였다. 한국학계도 요서 지역에서 한국사 및 한국문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추세였다. 그런데 옛 제단 유적들을 은폐하고 관련 연구를 폐기하다니!

이에 정 교수는 중국 측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고 관련 자료와 유물들을 두루 조사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2015년 8월과 2018년 8월 총 2차에 걸쳐 통화 지역 옛 제단 유적지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연구는 2015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020년 현재까지 약 6년간 진행하였고 총 9편의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백두산 서편 통화 일대 맥족문화권에서 발견된 옛 제단군은 중국 측이 진행해온 동북공정이 허구임을 확인해주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향후 동아시아 상고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까지 제시해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 교수는 이 연구를 종합한 최종 연구 결과물로 논문 9편을 전체 흐름에 맞춰 총 8부와 부록으로 구성하여 롯데학술총서1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백두산 서편 옛 제단으로 고찰한 우리 역사》(만권당)를 펴냈다.

이 책을 보면 소수민족의 역사문화를 중원의 역사문화 속으로 끌어안으려는 중국이 동북 지역 역사공정 중에 왜 돌연 태도를 바꿔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을 은폐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것이 우리 상고ㆍ고대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백두산 서편 일대, 특히 통화 지역 옛 제단군 문제가 한국 상고ㆍ고대사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관건이며, 백두산 서편 일대에서 후기 신석기 이래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맥족의 오랜 제천문화의 실상을 확인함으로써 한국 상고ㆍ고대문화의 요체인 제천문화의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경희 교수는 ‘책머리에’서 “과거 요동·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동북아에서 펼쳐졌던 상고·고대문화는 저급한 ‘샤머니즘(巫)’이 아니라 고원한 생명사상과 적극적인 홍익실천을 특징으로 하는 ‘신선문화, 선도문화(仙)’로, 고대 동·서 문화 교류의 중심이었다. 동아시아문화의 원류로서 선도문화는 생명 존중과 공존·공영이라는 보편가치를 담고 있는 인류의 고귀한 문화자산으로 오늘날 지구화의 시대에 부합하는 대안가치이기도 하다. 한국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사의 출발점을 선도문화로 새롭게 서술해 갈 것”을 제안했다.

정경희 교수는 백두산 서편 일대, 특히 통화 지역 옛 제단군 문제가 한국 상고ㆍ고대사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관건이며, 백두산 서편 일대에서 후기 신석기 이래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맥족의 오랜 제천문화의 실상을 확인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정경희 교수는 백두산 서편 일대, 특히 통화 지역 옛 제단군 문제가 한국 상고ㆍ고대사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관건이며, 백두산 서편 일대에서 후기 신석기 이래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맥족의 오랜 제천문화의 실상을 확인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전 광주과학기술원 총장)은 발간사에서 “‘롯데학술총서1’ 정경희 교수의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은 우리 고유의 사유체계인 선도(仙道) 사상의 내용과 연원을 밝히고 이 사상이 어떻게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로 귀결되는지 풀어냈다. 특히 백두산 서쪽 신석기문화가 동아시아 상고문화원형으로 중원문화나 시베리아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들 문화의 발전을 이끌었음을 밝혔다. 이는 동아시아 문화의 시원이 우리 선도문화였음을 의미하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정경희 교수의 신간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1~8부의 구성을 살펴보자.

1부에서는 중국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의 내용과 허구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국 측은 ‘홍산문화(선상황제족-선상고국-예제문화) → 하가점하층문화 → 은상문화’라는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의 은상족(殷商族) 중심 역사인식에 따라, 명백한 선도문화이자 배달국문화인 홍산문화를 예제문화이자 선상문화로 왜곡하는 데서 시작하여 그 본류를 은상으로 연결시킨 후 다시 단군조선을 은상계 기자조선으로 왜곡했다. 이를 확장한 장백산문화론에 이르러서는 ‘[홍산문화(선상황제족-선상고국-예제문화) → 하가점하층문화 → 은상] → (연ㆍ)기자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 → 고구려ㆍ부여 → 발해’에 이른다고 보았다. 연과 기자조선을 은상계 국가로 강조할 뿐 아니라 후속 국가인 고구려ㆍ부여까지도 은상계 국가로 바라본 것이다. 이 모든 왜곡의 출발점에는 ‘홍산문화(맥족-배달국-선도문화)’를 ‘홍산문화(선상황제족-선상고국-예제문화)’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2부에서는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 특히 통화 만발발자 옛 제단의 1차 제천시설인 ‘3층원단(모자합장묘)ㆍ방대’를 다룬다. 중국 측은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에 따라 은상족이 요동 장백산 지구로 이주해 홍산문화를 전달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 중 가장 전형적인 홍산문화계 옛 제단으로 지목된 통화 만발발자 유적을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했다. 만발발자 유적은 서기전 4000년~서기 600년 무렵, 곧 배달국~고구려시기 한민족의 주족인 맥족계의 선도제천문화가 성립ㆍ변천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함축하는 더없이 귀중한 유적이다. 유적의 중심이 되는 제천시설 중 1차 제천시설인 ‘3층원단(모자합장묘)ㆍ방대’의 형태와 여기서 출토된 곰소조상은 요서 우하량 상층적석총 단계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3층원단ㆍ방대’ 형태가 요동 백두산 서편에서 요서 우하량 지역으로 전파한 것을 알게 했다.

3부에서는 만발발자 옛 제단의 2차 제천시설인 ‘선돌 2주ㆍ적석 방단ㆍ제천사’를 다룬다. 만발발자 2기 이후 3층원단 평대 위로 2차 제천시설인 선돌 2주가 들어섰고, 5기에는 다시 적석 방단ㆍ제천사가 들어서 선돌 2주와 함께 있었다. 이렇듯 만발발자의 1차 및 2차 제천시설은 서기전 4000년~서기 600년 무렵 요동ㆍ요서ㆍ한반도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ㆍ적석단ㆍ나무솟대ㆍ제천사ㆍ선돌ㆍ고인돌류)’ 계통으로 중원 지역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형태였다. 이러한 발굴 결과는 중국 측의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의 오류 차원을 넘어 동북아 상고문화의 기원과 계승 관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4부에서는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과 여명 옛 제단의 형태와 유형 및 요서ㆍ한반도에 나타난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를 다룬다.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은 산구릉 정상부에 자리하고, 3층원단이 많으며, 환호를 두른 경우가 많아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로 정리되었으며, 500년의 시차를 보이는 요서 우하량 유적의 상층적석총 단계에서는 몇 가지 변화를 보였다. 그 예로 3층 계단식이 나타났고, 원형 외에 방형이 나타났으며, 단총 주변으로 환호가 둘러져 ‘3층-원ㆍ방-환호’ 형식을 보였다. 이것은 시간이 흘러 한반도 남부 지역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ㆍ적석단ㆍ나무솟대ㆍ제천사ㆍ선돌ㆍ고인돌류)’ 형태로 이어졌다. 이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중심 제천시설의 차이를 보였지만 모두 동일 계통의 유적이다.

5부에서는 홍산문화 중기 무렵 요서 지역 서랍목륜하 및 대릉하 일대에서 부활한 적석묘 제도를 살펴보았다. 특히 대릉하 일대 우하량 적석총군은 홍산문화기 전체를 통틀어 최장 기간, 최대 규모, 최고 수준의 형식성과 부장품을 갖추었다. 대체로 3기로 나뉘는데, 1기는 하층유존 단계, 2기는 하층적석총 단계, 3기는 상층적석총 단계이며, 각 시기의 특징과 출토품을 살펴보았다. 또한 5지점과 호두구 적석총ㆍ동산취 적석단의 사례를 통해 흥릉와문화기 이래 구식 ‘석권’ 방식 위로 우하량 상층적석총 단계의 신식 ‘3층-원ㆍ방-환호’ 방식이 결합되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이러한 적석 단총제 형태를 통해 배달국 시기 맥족의 요서 진출 경로는 요동 백두산 서편 혼강 일대(배달국 천평문화) → 요서 대릉하 일대(배달국 청구문화) → 요서 서랍목륜하 일대(배달국 서랍목륜하문화)임을 알 수 있다.

6부에서는 배달국 이래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요동~요서 적석 단총제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았고 이를 통해 예맥족의 이동 흐름 및 분포 범위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배달국에서 고구려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맥족은 백두산 서편 혼강ㆍ압록강 천평 지역 → 대릉하 청구 지역 → 서랍목륜하 지역 → 송화강 지역 → 백두산 서편 혼강ㆍ압록강 천평 지역 → 일본열도로의 움직임, 곧 ‘맥족의 요서 진출ㆍ정착 및 요동 회귀’라는 순환적 흐름을 보이며 동북아 사회의 중심 종족이 되었고, 그들이 주도한 선도제천문화 역시 요동ㆍ요서ㆍ한반도를 중심 근거지로 하여 동아시아 사회는 물론 유라시아 사회로 전파되었다.

7부에서는 맥족의 적석 단총제에 반영된 주요 형태(象), 숫자(數) 상징인 ‘원ㆍ방ㆍ팔각형’ 상징 및 ‘3ㆍ5ㆍ7ㆍ9 계단수’ 상징의 선도적 의미를 살펴보고, 이러한 상징의 시기 및 지역적 변화상을 고찰하여 맥족의 선도제천문화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음을 확인했다. 백두산 서편ㆍ한반도 지역은 배달국 이래 적석 단총의 기본 형태소였던 원ㆍ방 상징을 기본으로 다변화된 모습을 보였고, 일본열도에서는 배달국의 구식에 백두산 서편ㆍ한반도의 신식, 일본식까지 더욱 다변화되었지만 모두 선도 삼원론 내에서의 변화였다. 또한 배달국 이래 3 계단수 상징이 고구려 적석 단총에 이르러 7ㆍ5ㆍ9 계단수 상징으로 변화된 면모가 열본열도로 고스란히 전달된 모습도 살펴보았다.

8부에서는 한민족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서기전 4000년경 환웅족은 백두산 천평 지역에 도읍을 조성한 후 요동 천평 지역과 요서 청구 지역을 배달국의 동ㆍ서 양대 중심으로 삼아 청구ㆍ천평ㆍ흑룡강 일대를 두루 경영했으며, 중심 도읍지인 신주 비서갑 일대에서 배달국의 주족(主族)인 맥족(환웅족+웅족)이 형성되었고, 백두산 일대 토착세력 중 예족(호족)은 배달국 주족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가 점차 선도제천문화를 수용함으로써 배달국 부족(副族)의 지위에 올랐다. 이렇게 형성된 배달국의 예맥족 또는 맥족은 선도제천문화를 공통분모로 했기에 선도제천문화의 요체인 ‘한ㆍ환’을 따와 한민족으로도 부를 수 있게 된다.

부록은 2019년 9월 발간된 만발발자 정식 발굴보고서인 『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通化萬發撥子遺址考古發掘報告)』를 바탕으로 집필한 내용으로, 앞서 내용들을 수정ㆍ보완하는 한편 중국 측의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의 왜곡된 시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롯데장학재단은 2020년부터 만권당과 손을 잡고 ‘롯데학술총서’ 발간 사업을 시작한다. 롯데학술총서는 철저한 고증과 명쾌한 분석으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우수한 저서를 발굴하여 학계의 연구활동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학(國學)과 관련된 분야에서 이룩한 탁월한 연구 성과이지만 당장은 대중성이 떨어져 책으로 내기가 어려운 경우에 지원한다. 이러한 연구는 국학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 고유 사상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며, 미래를 우리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선구적인 작업이다.

롯데장학재단은 "언젠가는 ‘롯데학술총서’가 우리 국민의 필독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