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전남 담양의 아름다운 우리 정자 중 명옥헌을 갔다. “(정자) 왼쪽으로 시냇물이 흐르는데 조그마한 계곡인데도 물이 끊이지 않고 바위를 두드린다. 그 소리가 마치 구슬이 부딪히는 소리 같다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지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전남 담양의 별서정원 명옥헌 안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 [사진=강나리 기자]
전남 담양의 별서정원 명옥헌 안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 [사진=강나리 기자]

조선 중기 오희도(1583~1623)와 넷째아들 오이정(1619~1655)이 세운 정자가 ‘명옥헌’이고, 이를 둘러싼 정원이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으로 대표적인 한국의 별서정원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자를 일컫는 말은 ‘정, 각, 헌, 원’등 다양하다. 헌이 붙은 정자는 오죽헌, 명옥헌이 있다.

또한 원림苑林은 자연 속에 정자 또는 연못을 살짝 끼워 넣어 마치 인공의 시설물조차 하나의 자연인 듯 만든 정원이다.

명옥헌 진입로에서 바라본 모습. 나무들 한 가운데 지붕이 빼꼼 고개를 내민 모습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명옥헌 진입로에서 바라본 모습. 나무들 한 가운데 지붕이 빼꼼 고개를 내민 모습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2~3일간 폭우가 쏟아져 진입로가 진흙탕으로 바뀌었으나 이제 막 배롱나무에서 불긋불긋 꽃이 100일 간 피어오르는 명옥헌은 짙푸른 여름이 한창이었다. 가는 길 택시기사는 “지금 꽃이 핀 건 어린 나무들이고, 오래된 어른 나무는 좀 더 늦게 만개해 온통 붉은빛이 장관을 이룬다.”고 설명해주며, “9월 말 꼭 다시 와보라.”고 권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네모난 연못 한 가운데 동그란 섬이 떠있고, 그 섬을 장엄한 배롱나무 한 그루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이 담긴 상징이라고 한다.

명옥헌 앞에 조성된 네모난 연못 속 둥근 섬 가운데 배롱나무와 터널을 이룬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붉은 목백일홍꽃이 8월 10일경부터 100일 간 핀다. [사진=강나리 기자]
명옥헌 앞에 조성된 네모난 연못 속 둥근 섬 가운데 배롱나무와 터널을 이룬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붉은꽃이 8월 10일경부터 100일 간 핀다. [사진=강나리 기자]

지인은 “이곳에 ‘우리의 천지인 사상이 담겨 있다’고 들었다. ‘하늘과 땅 상징은 알겠는데 사람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졌다. 당연하다는 듯한 설명을 듣고는 한참 고민했다. 문득 알게 된 것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가 천지인의 한 축이더라.”고 했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명옥헌 연못 한켠 연꽃들. [사진=강나리 기자]
명옥헌 연못 한켠 연꽃들. [사진=강나리 기자]

연못 한 켠 심은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렸고, 이곳저곳 작고 화려한 꽃송이를 터트린 배롱나무가 터널을 이루었다. 매우 잘 발달된 근육 같기도 하고 수없이 늘이고 겹쳐 결이 생긴 엿가락처럼도 보이는 독특한 배롱나무는 매년 초여름이면 껍질이 터서 벗겨지고 매끈한 속살을 드러낸다. 다른 나무들이 겉껍질을 두텁게 쌓아갈 때 배롱나무는 매년 껍질을 벗는다.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부르고, 붉은 꽃을 자미화라고도 부르며 만개하면 꽃구름을 이룬다.

목백일홍 꽃이 피는 배롱나무는 매년 초여름 껍질을 벗는다. [사진=강나리 기자]
붉은 꽃이 피는 배롱나무는 매년 초여름 껍질을 벗는다. [사진=강나리 기자]

명옥헌에 다가가니 연못을 바라보는 쪽이 정면인 줄 알았는데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는 뒷면이라 놀라게 한다. 기둥마다 싯구가 걸려있고,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지은 ‘명옥헌’과 함께 ‘삼고三頋’라는 현판이 있다. 

연못에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명옥헌. 정면처럼 보이지만 다가가면 아궁이가 있는 뒷면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연못에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명옥헌. 정면처럼 보이지만 다가가면 아궁이가 있는 뒷면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명옥헌의 왼쪽을 돌아 정면으로 가면 동산을 마주하고 있다. 그곳에 무궁화와 목백일홍 몇 그루가 꽃을 피웠다. 명옥헌 댓돌을 밟고 올라서 정자 안에 마련된 소담한 방에 들어서면 사방의 문을 열어젖혀 제각기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 명옥헌에서 발견한 독특한 구조로는 활주活柱라는 기둥이다. 추녀 밑을 받치는 기둥으로 처마를 깊고 멋지게 버선코처럼 들어 올리면 하중의 중심이 기둥 밖에 있으면 처지기 쉽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보조기둥이다. 때론 처짐의 우려가 없어도 미학적으로 처마아래 공간을 인식시키기 위해 설치하기도 한다.

(시계방향으로) 연못에서 올라서서 본 아궁이, 명옥헌 현판, 처마 밑, 삼고 현판. [사지=강나리 기자]
(시계방향으로) 연못에서 올라서서 본 아궁이, 명옥헌 현판, 처마 밑, 삼고 현판. [사지=강나리 기자]

특히,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폭우가 매우 위험하게 내린 직후라 이곳 정자를 지을 때 이름의 이유가 되었던 ‘끊임없이 쏟아지는 계곡물 소리’를 무한정 들을 수 있었다. 힘찬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땀을 씻어 보자.

명옥헌 원림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8호이다. 

명옥헌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계곡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옥구슬 소리와 같다는 의미이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이라 명옥헌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진=강나리 기자]
명옥헌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계곡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옥구슬 소리와 같다는 의미이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이라 명옥헌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진=강나리 기자]

 

처마를 받쳐주는 보조기둥 활주. [사진=강나리 기자]
처마를 받쳐주는 보조기둥 활주. [사진=강나리 기자]